신사도적교회

[스크랩] 사도적 은사와 오늘날의 교회

어노인팅 2007. 1. 16. 12:49
사도적 은사와 오늘날의 교회





사실 오늘날 개신 교회에서 항존직으로 인정하는 목사, 장로는 칼빈이 세운 직분들이다. 당시 그는 천주교의 교황이나 신부란 직분을 배격하고 사도와 선지자 직분은 사도시대에 끝났다는 가정 하에 목사, 교사 및 장로 직분을 부활시켰다.


그러나 그 당시의 경우를 자세히 연구해보면 칼빈이 장로란 직분을 잘못 이해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시의회와의 타협으로 그들을 한시적으로 장로로 앉힌 것인데 그것이 개신교 교회 정치의 표준으로 잘못 굳어지고 만 것이다. 당시는 교회와 정치가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는 상황이어서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것이 마치 개신교 특히 장로교 정치의 잘못된 선례가 된 것은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성경에 의하면, 목사, 장로, 감독, 집사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전임목회자의 서로 다른 기능적인 명칭임을 알 수 있다. 한국 대부분의 장로교단의 정치에 기록되어 있는 "목사의 의의"를 보면 목자(렘 3:15; 벧전 5:2-4; 딤전 3:1), 집사(빌 1:1; 고전 4:1; 고후 3:6), 장로(벧전 5:1-3), 교사(딛 1:9; 딤전 2:7)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난 후 아무런 성경적 근거에 의한 설명 없이 평신도르 대상으로 한 장로, 집사란 직분이 또 다시 나온다.



칼빈 이후 교회는 성경에 몇 번밖에 나오지 않는-정확하게 말하면 3번이다- 목사란 명칭을 모든 전임 사역자에게 붙이게 되었고 전도자란 직분도 인정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종교개혁가들은 복음이 땅끝인 스페인까지 전해졌으므로 전도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미국 영적 대각성 운동 당시 찰스 피니가 대중 전도집회를 개최하면서 '전도자'란 명칭을 사용하자 이에 익숙치 못한 기존 목회자들이 상당히 반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피니 이후 미국에서는 D. L. 무디, 빌리 그래엄 등을 통해 대중 전도집회가 활기를 뛰자 이제는 거부감 없이 전도자란 명칭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예수님은 성도들의 훈련과 봉사를 통해 교회를 세우기 위해 5가지 직분을 주셨는데 교회는 칼빈이 목사, 교사직을 회복하기까지 약 1,500년, 전도자 직분을 회복하기까지 또 다시 약 200년, 사도와 선지자 직분을 회복하기까지 또 다시 약 200년이 걸린 셈이다.

 

참고로 신약에서 사도, 선지자, 전도자, 목사, 교사의 단어가 사용된 횟수는 다음과 같다.

 

-사도 : 74회

-선지자 : 8회

-전도자 : 3회

-목사 : 3회

-교사 : 14회

 

오늘날 사도와 선지자 직분의 회복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요점은 사도적 리더십과 선지자적 통찰력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역사적으로 유명한 지도자들, 예를 들어, 존 칼빈, 마틴 루터, 요한 웨슬레, 조다난 웨드워즈 등은 본인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사도적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적 은사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새로운 비전과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로운 사역을 주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조지 휫필드와 요한 웨슬레에 경우를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5중 사역 은사의 관점에서 볼 때 조지 휫필드는 전도자, 목사 및 교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뛰어난 설교가요 전도자였지만 사도적 리더십의 결여로 조직력도 없었고 성도들을 양육하고 훈련시킬 후계자들을 양육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웨슬레는 사도적 리더십을 발휘하여 속회를 통해 은혜 받은 성도들을 훈련시키고 후계자를 양육하여 감리교단을 설립했다.


사도적 은사가 있는 사람은 이런 일을 한다. 이들은 한 교회만 섬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교회를 설립하여, 바울이 디모데나 디도를 파송한 것처럼, 각 지역교회에 전임사역자(목사)를 파송하고 그들을 감독한다. 말하자면 사도적 은사를 가진 사람은 담임 목회는 물론 노회나 연회 또는 총회의 회장이 되어 "목사들의 목사"로 섬기는 사람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에도 이런 목사들이 많다. 이들은 섬기는 교회를 큰 교회로 성장시켜 휘하에 수많은 전임 목회자를 거느리고 있으며 그중 몇몇은 독립하여 지역교회를 설립한 후 이전의 모교회와 네크워크를 유지한다.

사도적 목사는 지지자들의 멘토이자 영적 아버지가 되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4:15).





신사도적 교회



사도적 교회의 네크워크는 기존의 교단과 같이 관료적, 기계적으로 얽혀있는 것이 아니라 사도적 은사를 가진 강력한 리더를 중심으로 관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칼빈이나 웨슬레는 생전에 독특한 비전과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고 한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초창기니까 그렇겠지만 웨슬레 시대에 감리교의 헌법이나 규정의 수가 얼마나 되었겠는가? 그러나 그 이후의 세대에 와서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의 후예들은 때를 따라 인도하시는 성령의 기름부음보다는 강력한 리더인 칼빈이나 웨슬레의 비전이나 가르침을 해석하고 전수하는 것을 제일의 사명으로 여겨, 인간적인 논리와 조직으로 전승해 온 결과, 나중에는 초기의 리더들의 비전을 오히려 퇴색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과거 강력한 리더의 비전이나 가르침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그때, 그곳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에 고정되면 오늘 이곳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오히려 배척하고 거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마치 모세의 가르침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새 시대에 새롭게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오히려 비판하고 거역한 바리새인들과 같은 경직적이고 과거지향적인 ". . .주의"(-ism)를 양산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 . .주의"에 매이는 분이 아니시다. 비록 하나님은 성경의 테두리 내에서 일하시지만 교리나 조문이 아니라 때에 맞게 그분의 백성과 관계적으로 일하신다는 사실이다. '관계적으로' 일하신다는 말은 어떤 한 현상에 대한 과거의 판례나 조문에 묶이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이나 형편에 따라 역사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오늘날 교회에 사도와 선지자를 회복시키시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전통적인 주류 교단은 교세가 지속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반면 사도나 선지자 직분의 회복을 외치고 또한 실제로 적용하고 있는 교회들은 급성장하고 있다.




피터 와그너 교수는 이런 교회를 신사도적 교회(New Apostolic Churches)라고 부르며 21세기는 신사도적 교회가 교회성장의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직 사도직의 회복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많은 한국인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급진적인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와그너 교수가 이런 명칭을 붙인 이유는, 이들 급성장하는 교회의 핵심에는 사도적 은사를 가진 리더가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성령의 기적행하는 은사를 통해 강력하게 인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는물론 미국에서 주류 교단인 루터교, 감리교, 장로교 및 성공회의 교세는 급감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신사도적인 교회들은 급성장하고 있다. 신사도적 교회로 불리는 이들 교회는 아프리카의 독립교회들, 중국의 가정교회들, 남미의 토착교회들 및 미국의 은사적 독립교회들이다.






한국적인 상황에서의 적용

 

오늘날 세상은 물론 교회에서도 리더십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이 거듭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리더으로서의 사도와 사도적 은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원리에 의한 리더십을 강조하지만 정작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도와 사도적 리더십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이는 하나님이 지금, 이곳에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사도와 사도적 은사의 회복은 성령이 주도하시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적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강력하게 이루어가는 리더십의 은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과연 교단 중심으로 운영되는 한국적인 상황에서 사도적 은사를 활용할 수 있을까?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교단적 배경 없이 독립 교회로 설립하는 교회의 경우에는 사도적 권세를 가진 강력한 리더를 중심으로 무리 없이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교단적인 교회라 할지라도 사도적 권세를 가진 사람의 리더십이 두드러지면 자연히 많은 지지자들이 따르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서서히 교단의 여러 모임을 서서히 개혁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노회, 지방회에 보면 많은 경우 자타가 인정하는 리더가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새로운 비전과 사역을 간구하면 하나님이 할 일을 하나하나 인도해 주실 줄로 믿는다. 문제는 이런 것의 심각성을 깨닫고 얼마나 개방적으로 받아들이고 대처하느냐 이다.

넷째 현재 많은 지도자들이 이런 저런 사정으로 교단에 묶여 있지만 초교파적으로 영적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긴밀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모임을 더욱 활성화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일들은 비공식적을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리더십들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사도와 사도적 은사에 대한 이해를 갖고 이를 활성화하면 많은 영적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도라는 직함의 사용

 

그러면 이런 사람들을 사도라고 부르는 일은 어떠한가? 오늘날 외국에서는 자칭, 타칭 사도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지만 과연 한국에도 이런 명칭이 통용될 수 있을까? "목사 OOO"아니라 "사도 OOO"라는 공식 직함이 통용될 수 있을까?

사도직의 회복을 강조하는 피터 와그너 교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이 사도적 은사를 발견한 후 처음에는 사람들의 오해와 생소한 개념 등으로 인해 최소 3년에서 5년이 지나서야 '사도'란 명칭을 사용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한 누가 ‘사도’로 인준해 주느냐 이다. 목사의 경우는 소정의 과정을 거친 후 소속 교파나 유관 단체에서 안수하여 직분을 부여하지만, 사도의 경우 과연 누가 그렇게 해주느냐이다. 현재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경우는 사도적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연합체를 형성하여 적합한 자격을 갖춘 사람을 사도로 인준해 주고 있다.



사도적 은사가 있는 사람에게는 목사들이 따른다. 그러므로 사도는 "목사들의 목사"(pastors' pastor)인 셈이다.

목자가 평신도 양을 먹이는 사람이라면 사도는 목사인 양을 먹이는 사람이다. 사도적 은사가 있는 사람은 목사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 생기고 그들이 은혜 받고 잘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생겨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이 형편을 살피게 되고 그들이 먹을 꼴에 항상 신경이 쓰여진다.

사도적 은사가 있는 사람은 이를 적극 개발하기를 바란다. 목사 한 명 제대로 서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가.




유의 사항

 

오늘날 사도적 은사의 회복으로 인해 이런 저런 통로로 "당신은 사도다," "당신은 여사도다"라는 예언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은 당장 자기에게 사도적 권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우쭐하고 교만해져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을 본다.

이런 예언이 설령 맞다고 하더라도 위대한 위인은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은사나 사명이 클수록 그와 비례하여 훈련이나 연단의 강도가 세고 기간이 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제 나는 사도적 은사를 받았으니 당신은 나에게 순복해야돼!"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사도적 권세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므로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실 때까지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



또한 . 빌립은 많은 표적과 능력을 행했지만 사도로 부름을 받지 못했고(행 8:1-13), 바나바는 표적과 기사를 행하지 않고 차분하고 조용하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였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행 11:24).

사도는 오래 참고 영적 부모로써 품는 자이며 성품의 열매를 맺는 자이다.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후 12:12).


또한 '사도들 중의 사도'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에게는 12제자가 있었지만 베르로, 안드레와 요한이 항상 '사도들 중의 사도'였으며 베드로는 사도의 대표였다. 사도 바울은 사도 바나바와 실라를 수행원으로 대동하면서 사역에 임했다.

그러므로 비록 자신에게 사도적 은사가 있더라도 자신을 양으로 양육하는 사도가 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권위에 대한 순복의 차원이다. 위에 있는 권세에 잘 굴복하지 못하는 사람이 자기 아래 사람에게 권세를 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자신이 사도적 은사를 가졌다고 해서 모든 사람의 사도는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찌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고전 9:2). 자신의 사도적 권세가 미치는 사역의 영역에 제한이 있다는 말이다.





사도적 리더



신사도적 교회를 이끄는 사도적 리더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성령의 기름부음이 강하게 역사하며 9가지 기적행하는 은사를 갖춘 경우가 많다.

-예수님을 본 사람들도 있다.

-리더십이 강하다. 이들 지도자는 거의 절대적인 귄위를 가진다.

-하나님이 이들에게 독특한 비전을 직접 주신다. 이들은 비전을 가진 리더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교회 개척을 통해 영혼 추수사역에 박차를 가한다.

-따르는 사람들이 이런 리더를 신뢰하면서 순복한다

-이들은 지자자들과 함께 다소 엉성하지만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교회연합을 형성한다. 이는 교단처럼 법과 규정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와 성령의 인도하심이 우선한다.

-이들은 지지자들에게 멘토 즉 영적 아버지 역할을 한다.

-이들은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나누어준다(행 8:17; 19:6; 롬 1:11 참조).

-이들은 기도를 많이 하고 금식 기도도 자주 한다.

-이들은 내부의 분쟁을 해결하고 해당자를 징계한다.

-이들은 지지자들을 영적으로 보호하는 영적 우산 역할을 한다.

-이들은 교회의 영적 전쟁을 주도한다.

-이들은 예언의 은사를 가진 예언 사역자(선지자)와 적극 동역한다.

-내부로부터는 적극적인 신뢰를 얻지만 외부로부터는 핍박을 받기도 한다.

-이들은 넓은 마음과 신앙 인격의 본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신사도적 교회 중에서도 비은사적인 교회로서는 윌로우크릭교회연합, 갈보리교회연합을 들 수 있는데 대부분의 신사도적 교회는 기적 행하는 은사를 인정하고 장려하는 은사적 교회들인에 이들은 대표 사도를 중심으로 수백 개에서 수천 개의 교회 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선교 단체인 예수 전도단의 로렌 커닝햄, 대학생선교회의 빌 브라이트 등은 오늘날의 사도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도적 은사는 이런 영적 거물은 물론 그들을 도우면서 일정 지역이나 사역을 담당하는 사람들도 사도적 은사자 또는 사도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여느 은사와 마찬가지로 양적인 정도 보다는 사역에서 사도적 특성이나 리더십이 있느냐의 여부로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도적 은사는 전임 목회자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 지도자에게도 주시는데 이를 '시장 사도,' '직장 사도,' 또는 '평신도 사도'(Marketplace Apostle)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늘날 이들이 사도적 리더십을 발휘하여 주어진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때 그들이 속한 직장이나사업장이 변화되고 나아가서 도시가 변화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

 

 

참고 서적들 :

 

▪ 피터 와그너, [21세기 교회성장의 지각변동](도서출판 이레서원)-Peter Wagenr, Churchquake (Regal, 1999).

▪ 피터 와그너, [신사도 교회들을 배우라](도서출판 서로사랑)-Peter Wagner, The New Apostolic Churches (Regal Books, 1998).

▪ 데이빗 캐니스트러시, [사도의 은사](도서출판 서로사랑, 1997)-David Cannistraci, The Gift of Apostle (Regal Books, 1996).

▪ 로저 셉, [다가오는 사도 시대](죠이선교회, 1998).

▪ John Eckhardt, Moving in the Apostles (Gospel Lights, 1999).

▪ Bill Hamon, Apostles, Prophets and the Coming Moves of God

(Christian Int'l, 1997).

▪ Jim Laffoon, A Divine Alliance (Wagner Pub., 2001).

▪ Bill Scheidler, Apostles: The Fathering Servant (CityBible Pub., 2001).

▪ Ed Silvoso, Anointed for Business (Regal, 2002).

▪ Hector Torres, The Restoration of the Apostles & Prophets

(Thomas Nelson, 2001).

▪ Peter Wagner, Apostle of the City (Wagner Pub., 2000).

▪ Peter Wagner, Apostles & Prophets (Wagner Pub., 2000).

▪ Peter Wagner, Spheres of Authority (Wagner Pub., 2002
출처 : 미션 셀 교회
글쓴이 : 황창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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