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도적교회

[스크랩] 신사도교회와 은사

어노인팅 2007. 1. 16. 12:48
사도와 사도적 은사



 


사도와 선지자 직분의 회복


 

오늘날에도 과연 사도와 선지자들이 있는가? 대부분의 기적종식론자들은 사도와 선지자 직분은 사도시대에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기적이 사도시대에 끝났다는 기적종식론과 맥을 같이 한다. 사도나 선지자들이 주로 한 일은 기적을 행하면서 성경을 기록하고 교회의 기초를 놓는 일인데, 성경은 이미 완성되었고 교회의 기초도 이미 세워졌으므로 당연히 한시적, 임시적 직분인 사도와 선지자 직분은 사라지고 목사, 교사, 장로 및 집사 직분만이 교회 시대 전체에 통용되는 항존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과연 이런 주장이 옳은 것일까? 오늘날 이런 주장에 도전하는 주장이 늘고 있다. 이들은 오늘날에도 사도와 선지자가 존재하며 사도와 선지자 직분의 회복을 통해 5중 사역은사가 완전하게 작동할 때 교회는 잃어버린 다른 한쪽 날개를 회복하여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교회가 비틀거리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사도와 선지자들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도란?

 

1. 성경이 말하는 사도

성경이 말하는 사도와 선지자란 어떤 사람들인가? 먼저 사도에 대해 살펴보자.
사도는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인데 문자적인 뜻은 "보내심을 받은 사람, 메신저"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특별한 사명을 띄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
예수님의 12제자가 곧 사도이다.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 . . 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마 10:1, 2). 또한 바울도 사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롬 1:1).


사도의 특징은 무엇인가?

가. 예수님의 공생애 중에 예수님과 함께 한 자들이다.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막 3:14).

나.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아 복음 전파, 치유 및 축사를 한 사람들이다(마 10:1-3; 행 9:5-6; 26:15-18).

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사람들이다.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행 1:22).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7-8: 9:1 참조).

라. 기사와 이적을 행했다(마 10:1-2; 고후 12:12).

마. 교회를 개척하고 돌보았다(엡 2:20).
특히 선교하면서 교회를 개척하고 돌본 사도 바울의 경우.

바. 직분자를 임명, 파송 및 감독할 권세를 가졌다(행 14:23; 17:15; 19:22; 고전 4:17; 빌 2:19 등).

사. 전도 대명령을 받은 사람들이다(마 28:18-20; 행 1:8).

아. 성도를 온전케 훈련시켜 봉사의 일을 하게하는 직분이다(엡 4:11-13).

자. 성경을 기록했다(마태, 바울, 베드로, 야고보).
그러나 사도가 아닌 자도 성경을 기록했다(누가, 마가 등).

이처럼 성경에 의할 때 사도가 한 일들은 성경을 기록하고, 기사와 이적을 행하고 교회를 설립한 외에도 여러 가지 일들을 했음을 알 수 있다.


2. 피터 와그너 박사가 말하는 오늘날의 사도, 사도적 은사

가. 정의

사도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 교육, 사명을 갖고 또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크리스천 리더인데, 그는 성령님이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 교회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필요한 일을 바로 잡음으로써, 주어진 사역 영역에서 교회의 기초적인 정치 형태를 설립할 권세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나. 그가 빠뜨린 것


와그너 박사는 (1) 기사와 이적을 행하는 것(고후 12;12), (2)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목격한 것(고전 9:1), (3) 교회를 개척한 것(고전 3:10)은 오늘날의 사도의 필수적 요건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3. 성경의 기타 사도들

그러면 예수님의 12제자와 사도 바울 만이 사도인가? 그렇지 않다.


가. 바나바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행 14:14; 행 13:43; 14:26을 참조하라).

나.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


바울은 야고보를 다른 사도들과 동격으로 취급했으며 베드로(게바)와 요한처럼 교회의 기둥이었고, 야고보는 예루살렘 공회의 의장이었으며 야고보서를 기록했다.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갈 1:19).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갈 2:9) 및 행 15:31-21을 보라.

다. 실라


바울이 말하는 다음 구절들의 "우리"는 실라를 포함하고 또한 그는 예루사렘 공회의 주요 멤버임을 볼 때 실라도 사도라고 웨인 그루뎀은 [신약이 말하는 예언의 은사]에서 말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 그러나 너희에게든지 다른 이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살전 2:6).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살전 3:1).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행 15:22).

라.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도 사도였는가? 또한 여자도 사도였는가?


어떤 사람은 그렇다고 주장한다.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롬 16:7).
한글 성경에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notable by the apostles)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헬라어 전치사 "엔"을 "그중에"(among)로 해석하여 "사도들 중의 일원으로 유명히 여김을 받고"(notable among the apostles)라는 뜻으로도 번역이 가능하다.

존 머레이는 [로마서 주석]에서 후자로 해석하여 이들도 사도라고 주장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도란 말은 "심부름꾼이나 사자"(messenger)로도 번역이 가능하지만(고후 8:23; 빌 2:25 참조), 바울은 이 단어를 아주 제한적인 의미로 사용하며, 이 사람들은 사도들에게 잘 알려져 있고, 그들의 믿음과 봉사가 뛰어났다고 할 수 있으며, 바울보다 먼저 회심했고, 유대 지방의 사도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임스 던도 [로마서 주석]에서 같은 주장을 한다. 유니아는 안드로니고의 아내로서, 이 부부는 바울보다 먼저 회심한 것으로 보아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곧 사도로 임명되었고 그들의 헌신으로 인해 사도들로부터 귀히 여김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존 스토트는 [로마서 주석]에서 상반된 견해를 제시한다. 먼저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의 성에 대해 스토트는, 헬라어 "유니안"은 남성인 유니아스나 여성인 유니아의 목적격인데 많은 주석가들은, 안드로니고란 이름이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유니아는 여성이며 이들은 부부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아포스톨로스란 단어도 그리스도의 사도와 교회의 사도 또는 사자(고후 8:23)란 두 가지 용법이 있는데, 후자는 빌립보 교회의 사자("너희 사자")인 에바브로디도(빌 2:25), 안디옥 교회의 바나바나 바울처럼(행 13:1 이하; 14:4, 14 살전 2:6 참조),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포함하는 '선교사'란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부부의 믿음은 뛰어나고 사도들에게 높이 인정 받는 사람들이었으므로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냥 교회의 사도들 즉 선교사들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다고 그는 결론 짓는다.
웨인 그루뎀도 [신약이 말하는 예언의 은사]에서 존 스토트의 견해와 같이 유니아는 여성이며 사도가 아니라 교회의 사자라고 해석한다.

이처럼 뛰어난 복음주의 주석가들도 이 두 사람이 좁은 의미의 사도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견해가 양분되고 있다. 한편 오늘날 여성 사역자로 두각을 나타내는 중보기도사역자인 신디 제이콥스는 유니아는 여성이자 사도라면서 오늘날 여성도 사도가 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성경이 말하는 사도는 예수님의 초기의 12제자, 바울, 야고보, 바나바 및 실라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바나바나 실라를 좁의 의미의 사도가 아니라 넓은 의미로 선교사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사도란 직분은 12제자나 사도 바울 및 사도 야고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바나바나 실라,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등에게도 주어진 직분임을 알 수 있다.


사도와 선지자 직분의 연속성


문제는 과연 오늘날에도 사도나 선지자 직분이 존속하는가이다. 실제로 많은 보수주의자들도 사도 직분은 인정하지 않지만 사도적 은사는 인정하고 있다. 즉 타 문화권이나 타 지역에서 교회를 설립하고 돌보는 선교사들이 바로 사도적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순전히 사도 바울이 교회를 설립하고 돌본 데서 나온 정의인 것 같다.


1. 거부하는 이유

그러나 사도 직분에 대해서는 수용이 쉽지 않다.

첫째 먼저 보수주의자들은 사도 직분에 대해 부정적이다.
로마 교황이 베드로의 사도적 정통성을 이어받은 자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사도 직분이 있다고 하면 금방 로마 교황을 생각하면서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둘째 오늘날도 사도 직분이 있다고 하면 금방 "그러면 그들도 성경을 기록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했단 말인가?"라고 대꾸한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모든 사도가 다 성경을 쓴 것은 아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사실에 대해서 살펴보면, 오늘날에도 환상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는 사람이 많다. 오히려 순진한 아이들이 환상을 통해 예수님을 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다고 이들 모두가 사도적 자질을 가진 것인가? 그렇지 않다.


2. 인정해야 하는 이유

그러나 오늘날에도 사도 직분이 계속된다는 주장은 성경적이다.

가. 첫째 사도나 선지자 직분이 사도시대 이후에 끝난다는 성경 구절이 없기 때문이다.

나. 둘째 에베소서 4:11-16이 사도나 선지자 직분의 연속성을 증거한다.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인데, 13 이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충만함에 이를 때까지 이다 14 그래서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된다. 15 그 대신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절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원문에 의해 일부 사역[私譯]한 것임).

헬라어 원문에 보면, 예수님이 교회에 선물(이때는 5가지 직분자가 곧 선물이다)을 주셨는데 이들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1) 첫째 이들이 하는 일은 성도들을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다.

 

5중 사역 은사자들의 일차적인 할 일은 성도들을 온전케 하여 봉사하게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다.
온전케 하다는 훈련시키다, 구비시키다는 뜻이며 그 결과 성도들이 봉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봉사함의 원어는 디아코이아인데 이 말은 봉사 또는 목회라는 뜻이다.
바꾸어 말하면 5중 사역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구비자, 훈련자이고, 봉사나 목회는 평신도들의 몫이라는 말이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몸이 제대로 세워질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평신도의 디아코니아라고 하면 어떤 부서에 소속되어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 봉사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디아코니아에는 봉사는 물론 목회라는 뜻도 있다. 목회란 목양이며 양 무리를 돌보고 훈련하는 것을 말한다. 봉사가 일 중심이라면 목회는 사람 중심이다.


이 구절에 의할 때 5중 사역 은사자들로부터 훈련 받은 평신도가 다른 평신도를 목회할 때 교회가 제대로 설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 "평신도 목회자를 해방시켜라"(release the lay ministers)란 주장과 부합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목회와 봉사를 구분하여 목회는 주로 전임목회자가 하고 평신도는 주로 봉사만 한다. 이것은 성경적인 역할 구분이 아니다. 훈련 받은 평신도가 평신도를 상대로 목회할 때 교회가 제대로 설 수 있다.
목회는 평신도가 하고 전임 사역자는 그들은 훈련시키고 구비시켜야 한다. 오늘날 기적행하는 은사와 더불어 5중 사역 은사를 강조하고 또한 셀 모임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마 9 :17). 새 포도주는 전통적인 교회 구조를 가진 헌 부대에 담을 수 없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기적행하는 은사와 5중 사역 은사가 새 포도주라면 셀 교회는 새 부대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2) 둘째 5중 사역 은사자들이 언제까지 성도들을 훈련시켜야 하는가?


한글 성경에는 빠졌지만 원문 13절은 ". . .때까지"(until)를 의미하는 "메크리" 이후에 나오는 절이다. 따라서 사도나 선지자 직분은 한시적인 것이 아니고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충만함에 이를 때까지 계속되는 직분임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충만에 이르러야 한다. 완전하신 충만의 구체적인 결과는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고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진리를 말하며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고,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의 완전하신 충만함에 이르렀는가? 성도들이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워졌는가? 이런 일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나 선지자 직분의 기능이 2천년 전의 사도시대에 끝났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3) 어떤 사람은 사도나 선지자 직분은 교회의 기초를 놓는 은사(또는 직분)인데 사도시대에 이들을 통해 교회의 기초가 이미 놓여졌고 이후 신자들이 하는 일은 사도들이 세운 기초 위에 상부 구조물을 세워나가는 것이므로, 기적도 필요 없고 사도나 선지자 직분도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0-22).

그러나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번 포이트레스 교수는 [기적]강의에서 초대 교회에 교회를 설립하기 위해 이런 은사나 직분이 필요했다면 오늘날 오지에서 교회를 설립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은사가 직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또한 교회의 기초를 놓는데 이런 은사 필요했다면 유지하는데 이런 은사가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창업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창업한 것을 유지하고 키워나가는 수성(守成)은 더 어렵다.

사도시대에 교회의 기초적 설립이 끝났기 때문에 오늘날 이런 은사나 직분이 필요 없다는 주장은 구속사적 성경 해석의 전형적인 오류하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걸핏하면 구속사의 과정에서 일어난 '독특하고 특별한 일들'이므로 오늘날의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는 주장을 늘어놓는다.
비록 당시의 사도들이 오늘날의 우리가 걸어가지 못한 독특한 길을 걸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독특성에 지나치게 치중하면,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오늘날 우리들의 인격과 사역의 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 그건 예수님이 하신 독특한 사역이야!" "아, 그건 사도들이 한 독특한 사역이야!"라면서 하나님이 주신 귀한 은사와 직분을 망각하는 것이 된다.

오늘날 개신교 내에서 서서히 불고 있는 사도나 선지자 직분의 회복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완성된 성경 기록에 무엇을 더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또한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도 사도 직분을 오늘날의 선교사로 이해한다.
선교사는 어떤 일을 하는가? 그들은 외지나 타 문화권에서 전도하고, 봉사하고, 여러 교회를 설립하고, 감독하고, 신학교를 세워 사명자를 양성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외지의 사역은 사도적 권세를 가진 선교사에게 일임하셨고 본국의 사역은 교단의 총회장이나 노회장을 통해서 하시는가?

사실 많은 교단들을 보면 외형적인 직분은 임기제로 되어 있기 때문에순서대로 돌아가면서 하지만 중요한 결정이나 문제 해결의 경우 해당 교단이나 노회에서 특별한 권위를 실질적으로 행하는 지도자들이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보면 이들이 바로 사도적 리더십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사도적 은사자 또는 사도라는 말만 하지 않을 뿐이지 실질적으로 사도적 은사나 직분의 일부를 감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출처 : 미션 셀 교회
글쓴이 : 황창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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