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적 재정관
Ⅰ, 序論
오늘날 교회에 대한 많은 염려들을 하고 있지만 특히 헌금과 관련된 염려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실지로 교회에서 설교자가ꡐ회개하십시오!’ 라든가ꡐ이런 죄들을 뉘우치십시오!’ 라고 하면 ‘아멘’ 하면서 은혜를 받는다. 하지만 강단에서 돈 문제나 헌금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면 듣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인다. 이것은 이 시대가 돈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돈을 영혼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게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죄의 문제나 생활의 문제, 경건의 문제는 다루어도 좋지만 돈 문제, 헌금, 재정문제는 교회가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나 목사님이 돈의 문제는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경건한 목회자는 돈 얘기를 안 하는 것이 좋은 것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영혼의 문제나 죄의 문제만 다루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조금만 깊이 살펴보면 성경 안에 너무나 많이 돈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다. 참고로 재정에 대한 책을 내신 얼 피츠의 연구에 의하면 성경 속에서
믿음에 관련된 구절은 215번 나오고,
구원과 관련된 구절은 218번 나오고,
재정 또는 돈과 관련된 구절은 2804번이나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구절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돈이 믿음이나 구원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성경이 많이 말씀하시는 것은 그만큼 돈과 재정에 관련해서 배워야 하고 훈련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DTS에서 배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3가지 내용을 삼각형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그려 볼 수 있다.
재정
사고방식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ꡒ인간은 세 가지 회심이 필요한데,
첫째는 가슴의 회심이요.
둘째는 정신(사고)의 회심이요.
셋째는 돈으로부터 회심이다.ꡓ고 했다.
[눅 14:33] ꡒ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ꡓ하셨다.
1) 돈(Money)이란 무엇인가?
돈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흥미로운 것이 많다. 옛날에는 교환의 매개물로 유리알, 납작한 돌을 돈처럼 썼다. 중국에서는 조가비나 포(布)를, 에티오피아에서는 소금, 남아프리카에선 가축, 시베리아에선 모피, 뉴펀들랜드에서는 말린 대구라는 생선을 돈으로 썼다고 한다. 사람들은 태초 이래 지불교환 저장의 수단이나 가치척도로 무언가를 찾아왔다. 그 결과 믿고 쓸만한 물건을 <돈>삼아 써왔던 것이다.
그 시대 그 세계에서 누구에게나 귀하고 쓰임새가 있는 물건이 곧 돈이 되었다. 금 은 쇠 구리가 통용되고 지폐가 찍히기 까지 <신용의 징표>를 정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인간사회를 지배하는 욕망은 교환수단으로서의 돈이란 누구라도 늘 믿고 쓸 수 있는 신용을 전제로 하는 물건인 것이다. 종이 은행권이 나온 18세기 이래 은행은 그야말로 신용의 제조창이었다.
①영어의 돈을 뜻하는 Money<머니>도 신용과 맺어져 있다. 돈을 나타내는 라틴어는 모네타(Moneta)인데, 이 모네타라는 말은 로마신하에 나오는 여신 주노(Juno)의 신전에서 비롯된 말이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제우스(Zeus)신을 주피터(Jupiter)라고 부르며 올림프스 산의 최고의 신으로 섬겼다. 그리고 이 주피터(Jupiter)의 아내 주노(Juno)여신을 섬기었는데 나라의 구원자일 뿐 아니라 인류의 재산분배를 감독하는 신으로 믿었다. 그래서 주노의 타이틀인 모네타라는 이름을 따서 높은 언덕위에 여신을 기리는 주노모네타(경고 자)라는 신전을 세웠다. 신성한 그 신전이 바로 로마의 조폐 국이 된다. 그리하여 화폐를 찍어내는 곳을 마네타이즈 (monetiz vt.화폐[통화]로 정하다; (금속을) 화폐로 주조하다.
㉺monetization ―n. U 화폐 주조; 통화 제정.)라고 불리고, 모네타의 보통명사를 돈이라는 단어로 <머니-Money>로 전화되어 불리게 된 것이다. 그럼으로 돈에는 모네타라는 경고의 의미가 들어 있다. 모네타라는 단어에서 또 하나 생겨난 것은 메가포온(Megaphone-비상시 사람들에게 알리는 장비)이다.
② 독일어 겔트(Gelt)
독일어로 돈을 겔트(Gelt)라고 하는데, 이 말은 승려나 수도승들에게 드린다는 의미이다. 한국말의 공양미와 비슷한 의미이다.
③ 라틴어 페큐니아(Pecunia)
라틴어의 돈을 뜻하는 단어는 페큐니아(Pecunia)이데, 이 단어는 엄밀한 뜻은 소(牛)를 가르킨다. 이것은 제단에 바치는 소와 꼭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선물이라는 말이다.
2) 돈의 역사
돈의 역사를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아주 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선사시대에 이미 돈과 같은 것이 어떤 징표들이 존재했는데 이것들은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신에게 사람들이 재물을 드릴 때 어떤 재물을 드린 후 신이 그것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재물을 드리고 제사장에게 재물에 해당하는 어떤 징표를 받게 되었다. 이것이 인간에게 객관적인 가치를 만들어 주게 되었고 가치의 징표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그 당시의 사람들은 가치의 기준은 신에게 드리는 것에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상호 신뢰의 기반이라고 믿었다. 호머(Homer)의 일리아드(Iliad)라는 서사시를 읽어 보면 그 책의 종교의식 가운데 이런 징표 가운데 하나인 조그만 칼이나 무기를 교환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그 당시에 문양이 생겨진 작은칼이나 무기를 차고 다니면 행운이 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행운의 부적이요. 수적인 힘의 표현인 작은 무기들을 교환했다.
그 후 철기시대를 지나면서 이 돈을 대신하는 징표를 특별히 금(金)에다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중세까지만 해도 금은 일반 사람들은 만지지도 못했다. 오직 군주들만이 사용했다. 일반인들은 왕과 군주는 신을 대신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왕과 군주들만이 금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것이 오늘까지 내려오면서 오늘날까지도 금은 돈의 신용징표(금본위제도)가 되고 있다. 금을 보유하지 않고는 돈은 종이에 불과하다.
그럼으로 돈의 시작은 처음부터 신과 관련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미국의 돈에는 ꡒIn God We Trust?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글이 쓰여 있다. 이것은 물론 기독교의 신앙에서 나온 것이지만, 역사를 거슬려 유래를 살펴보면 매우 흥미가 있다. 옛날에는 돈에다가 신의 초상을 그려 넣고 글도 써 넣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신의 대리자라고 믿었던 황제나 제왕의 얼굴과 글이 들어가기 시작했다.(로마시대에 많이 황제의 얼굴을 넣었다.) 그것이 흘러 흘러오다가 신에 대한 글은 거의 없어지고 대왕들의 초상만 남아 있게 되었다.
3) 돈의 용도
(1) 교환수단- 돈의 용도가 많이 있지만 한 마디로 말한다면 교환수단이다.
(2) 가치척도이다.- 돈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십 원짜리 동전을 하나 만드는 데는 30원 정도의 구리와 쇠가 들어간다. 그러나 사람들이 10원 이라는 가치만을 정해놓았다. 사람들은 10원을 가지고 30원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사람들이 정해놓은 가치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종이 수표 한 장을 가지고 1억의 가치를 느끼기도 한다.
(3) 저장수단이다.- 물물 교환하던 때에는 곡식이나 고기와 같이 부패하는 물건들은 저장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돈은 저장이 쉽다. 상하거나 부패하지도 않고 큰 창고도 필요 없다.
(4) 동적(움직인다)이다. 돈은 돌고 돈다는 말에서 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돈은 항상 움직인다. 내가 가지고 있고 싶지만 돈은 성격 자체가 움직임에 있다. 그래서 항상 소유하고 있을 수 없다. 오늘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이 몇 사람의 손을 거쳐 어디도 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5) 분배성이 있다. 큰돈은 작은 액수로 나눌 수 있게 만들어 져 있다. 물건은 나눌 수 없는 것이 많다. 예를 들면 소를 어떻게 나눌 수 있게는 가? 물론 소를 죽여서 나눌 수 있겠지만 가치가 떨어진다. 자신이 필요한 양을 가지기 위해서는 분배성이 있어야 한다.
(6) 식별하기 쉽다. 어느 나라의 돈이든지 처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태국에는 비닐로 만든 돈이 있다. 부탄의 돈은 영어가 한자도 없어서 어느 나라 돈인지 조차도 모른다. 그러나 돈을 누구나 보면 돈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7) 항상 필요보다 공급이 적다. 돈을 많이 찍어 내면 될까? 돈을 많이 찍어 내면 물건 값이 비싸지고 돈의 가치는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돈을 만든다고 해도 돈은 항상 필요보다 모자랄 것이다.
Ⅱ, 聖經의 物質觀
1)돈의 양면성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 다음으로 가장 많이 말씀하시고 가르쳐 주신 주제는 놀랍게도 돈(Money)이다. 예수님은 돈에 대해서 아주 특별하게 다루시면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의 이러한 관심과 더불어 성경전체를 통해서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는 돈에 대한 가르침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 큰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흐름이 매우 정 반대 되는 것이어서 매우 역설적으로 보인다.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정반대되는 개념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보면 하나님은 죄를 아주 철저하게 미워하신다. 그분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성경의 또 다른 부분은 죄인인 우리를 끝없이 용납하시며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까지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영적인 어떤 한 면만 보고, 오만과 극단적인 자기 아집에 빠져서 성경의 어떤 면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럼으로 우리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철저하게 두 가지 양면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진리위에 재물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가져야 한다.
(1) 돈의 부정적인 면; 돈은 영적인 힘(Powers)이 있다.
성경은 돈을 부정적으로 말씀하는 여러 구절들이 있다. 즉 돈의 어두운 면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돈에 대한 잘못된 생각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돈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그것은 쓰기 나름이라는 생각이다. 이 말은 돈은 非人格的이고 중립적인 것이어서 단순히 교환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용하라고 주신 돈을 잘 관리하고 잘 다스리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을 청지기로서 잘 관리하라고 가르친다. 물론 이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오늘 교회에서 대부분 재정에 대해서 가르치는 내용이 이런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간과하고 있는 큰 오류가 있다. 그것은 돈은 단순한 중립적인 교환수단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경에서는 돈은 자체적인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실질적인 힘(Powers)을 가지고 있는 영적인 실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것도 매우 악마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을 비 인격체로서 취급하고, 도덕적인 부분에서만 올바르게 사용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돈의 영적인 실체를 올바르게 발견하고 그것을 깨뜨려야 한다. 돈은 권세들(Powers)에 의해서 생겨났다. 그럼으로 돈을 정사와 권세들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 비로서 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엡6:12] ꡒ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ꡓ고 했다.
우리는 돈을 영적인 권세, 즉 힘(Powers)으로서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
[골1:16] ꡒ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ꡓ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 보이는 만물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인 실체들 즉, 보좌들, 주관하는 자들, 정사들, 권세들까지도 하나님에 의해서 선하게 창조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선한 피조물들이 하나님께 반역하고 불순종함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래서 영적으로 타락한 인간과 만물은 하나님께 대항하게 되었는데, 돈이라고 하는 것도 이 권세들(Powers)중에 하나이다. 돈은 단순한 구매력 정도의 힘이 아니다. 돈은 우리의 영혼을 지배하려고 하는 힘인 것이다.
다음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확인해 보라.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재물이란 무엇인가? 영어 NIV 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Money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헬라어의 원문에는 마모나(μαμωνα)로 되어 있다. 그럼 마모나라는 단어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단어는 아람어의 아멘(amen)이라는 단어에서 온 말로 신뢰하는 자, 경쟁하는 자라는 뜻을 가진 아람의 풍요와 재물의 신을 뜻한다. 이 단어를 영어로 가장 명확하게 표현하면 Mammon 이라는 재물의 神으로 번역할 수 있다. 황금만능주의자들을 우리는 ‘Mammonism’ 이라고 한다. 배금주의는 돈을 섬기는 자들이다.
메몬(Mammon)은 비인격적인 교환수단이 아니다. 아람의 신 메몬(재물)은 인격적이고 영적인 속성을 부여하고 있는 神인 것이다. 그것도 우리의 영혼을 지배하려고 하는 영적인 권세요. 힘(Powers)인 것이다. 돈 자체가 활동적인 행위자요. 법이요. 인간으로 하여금 돈을 숭배하고 헌신하도록 영감을 불어 넣을 수 있는 능력 있는 존재이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맘몬은 유혹하는 힘이다.
위의 말씀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시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하나님만을 중요하게 여기라고 말씀하신다. 아래의 도표에 O X 로 정직하게 당신의 마음을 표시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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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
재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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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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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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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
중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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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다. |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이 말씀을 보면 사람들이 ‘돈을 사랑ꡑ하고, ‘돈을 사모ꡑ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을 조금만 깊이 보아도 성경에서 돈을 인격체로 말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헬라어에 사랑이라는 단어는 agape, phileo, eros 등 여러 개의 단어가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비 인격체에게는 쓰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 인격체이신 하나님과 사람에게만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 타락한 인간들은 모든 것들은 사랑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8 통치 명령)는 명령을 주셨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개를 사랑하고, 꽃을 사랑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비 인격체에게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물론 Love가 아니라 Like는 쓸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은 인격체에게만 사용해야 한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과 사람 즉 인격체만을 사랑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돈을 사랑하고 사모하고 있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깊이 생각해 보라. 오늘날 사람들에게 돈은 인격체인가? 비 인격체인가? 사람들은 돈도 인격체로 생각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까지도 하나님과 사람만이 참된 인격체이고 우리가 믿고 섬겨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돈도 인격체가 되었고, 돈을 신으로 많은 사람들이 섬기고 있다.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하고 사모하고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럼 돈을 인격체로 믿고 사랑하게 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가? [딤전 6:10절]
① 우리는 미혹을 받게 된다.
②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
③ 항상 근심과 걱정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럼으로 오늘 많은 사람들에게 돈이 인격적인 신으로 섬김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우리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것은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맘몬을 섬길 것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맘몬을 미워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미워하고 맘몬을 사랑할 것인가?
선택을 해야 한다. 두 가지 모두를 선택할 수는 없다.
우리 모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조금 더 이 말씀을 살펴보자.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말씀의 문자적인 뜻은ꡐ돈이 모든 악을 만들어 낸다.ꡑ는 것이다. 이 말씀의 의미는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돈을 얻고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고 유지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다는 말이다. 오늘 우리들이 사는 이 시대는 돈이 우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버는 일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최고로 대우를 받는다. 그래서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 죄악도 서슴지 않는다. 돈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도 죽이고, 형제끼리 칼부림을 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좀도둑에서 대도까지 사기 공갈, 배임 횡령 강도 살인 탈세 장물범죄 부정수표 재삼 도피 공직자의 청렴성을 팔아 버리는 뇌물죄 상해 가정파괴에 까지 이른다. 의사는 돈 때문에 낙태살인을 자행하고, 성직자는 믿음까지 팔아버린다. 교회를 사고파는 사회. 그런가 하면 콩나물에 농약을 치는가 하면 두부에는 석회를 넣고 고추 가루에는 톱밥을 넣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범죄의 원인들이 무엇인가? 돈이다. 돈을 벌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데서 오는 것이다.
돈을 인격체 맘몬(μαμωνα)으로 보고 있는 또 다른 구절들도 있다.
[눅 16:9~13] (9절, 11절, 13절에서 3번 재물이 ‘μαμωνα’로 쓰고 있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돈을 비 인격체라고 말하면서도 전능하신 하나님 대신에 전능한 돈을 만들고 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이 전능하시다고 머리로만 믿고 실제적인 삶으로는 돈이 전능하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돈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生命을 연장하는 것도 하나님이 아니라 돈이라고 생각한다.
재판에 이기는 것도 법이나 정의가 아니라 돈이라고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돈이 지배를 하고 있다.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도 돈이다.
사람을 평가하고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도 돈이다.
사람의 신분과 지위를 정하는 것도 오늘날은 돈이다.
눈을 크게 뜨고 오늘 이 시대에 무엇이 지배하고 있는 지를 보라.
=전능하신 하나님인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흉내 내고 있는 돈인가?
[요 2:13~22] 에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첫 번째로 예루살렘에 올라 가셔서 하신 일이 무엇인가? 성전을 정결케 하신 일이다. 성전을 정결케 하시는 일이 왜 그렇에 중요하셨을까?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굴혈과 장사하는 집(16V)으로 만들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제사 드리는 것 같지만 실상은 맘몬을 섬기고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을 정결케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채찍을 만들어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으시며, 그 모든 것들을 성전에서 쫓아 내셨다.
[요 2:17]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교회는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다. 그런데 우리도 모르게 가만히 들어온 맘몬은 없는가? 혹시 우리교회는 하나님보다 맘몬을 더 섬기고 있지 않는가?
[눅 19:1~10] * 변화된 삭개오 *
삭개오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삭개오는 세리였다. 예수님 당시에 세리는 인간취급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을 비하 할 때 ‘세리와 창녀, 죄인의 친구’라고 불렀다. 세리는 로마 제국을 앞잡이로 돈 때문에 민족과 자신의 존재를 팔아 버린 사람들이었다. 돈을 위해서 수치와 조롱을 겪으면서 삭개오는 세리의 일들을 오랫동안 해 왔다. 그 결과로 그는 이제 부자도 되었고 세리의 장도 되었다(2절).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충격적인 소식일 들려졌다. 예수라는 사람이 세리 마태를 자신의 제자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는 예수님의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훌륭한 분이 세리를 자신의 제자로 삼았다니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리를 제자로 삼았다는 것은 유대인들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인간이기를 포기하며 살아가던 삭개오에게 예수님의 소문은 새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자신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이 있었던 것이다.
삭개오의 이름은 부끄럽게도 순결이라는 뜻이다. 순결하게 살기를 원했던 그의 삶이 완전히 순결과는 반대되는 저주의 삶을 살아 온 것이다. 그래서 그는 더욱 예수님을 사모하며 예수님을 기다렸을 것이다. 삭개오는 돈을 전부로 알고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돈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유대인으로 태어났지만 유대인의 신분도 버려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돈으로도 채울 수없었던 삭개오의 영혼의 목마름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달려가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는 많은 사람들로 인해 예수님께 다가 갈수가 없었다. 사실 삭개오가 죄인이 아니었다면 몇 명의 사람들이 길을 조금 내어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죄인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키가 작은 삭개오에게 전혀 길을 내어 주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의 방해도 삭개오의 목마름과 예수님을 향한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삭개오는 길옆에 있던 뽕나무에 올라갔다. 어른으로서 부끄러움과 세리 장으로서 체면을 다 내려놓고 그는 오직 예수님을 한번 보기 위해 뽕 나무에 올라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나무 밑을 지나가시다가 삭개오의 이름을 불러 주셨다. 5절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예수님께서 죄인과 인사만 해도 죄인 취급을 하였다.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고 해서 죄인의 친구라고 비방했다. 그런데 죄인의 집에 유하겠다고 하시는 것은 죄인과 동격이 되시는 것이다. 그때 삭개오는 변화되었다. 그리고 그 예수그리스도를 자기 집에 모시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삭개오는 그의 섬김과 사랑의 대상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8절] ꡒ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 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ꡓ
하나님보다 돈을 주인으로 섬기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맘몬의 신을 깨뜨리고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정하는 순간이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9절~10절] ꡒ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 로다. 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ꡓ
구원은 어떤 자에게 주어지는가? 참된 신! 참된 주인! 참 하나님을 사랑할 때 주어지는 것이다. 맘몬을 섬기면서 구원을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돈의 노예가 되어 돈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면서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눈을 뜨라. 맘몬이 지금 우리 속에서, 우리 가정 안에서 역사하고 있다. 그리고 사단은 우리 교회 안에서, 국가들 속에서도 역사하고 있다.
삭개오 안에 어떻게 변화가 일어났는가?. 그는 재산의 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다고 했다. 남에 것을 토색한 것은 4배나 갚겠다고 했다. 삭개오가 돈을 위해 살아온 모든 것들을 포기할 때 그는 진정한 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삭개오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참된 주인과 참된 사랑의 대상을 찾고 진리 안에서 온전히 자유케 되어진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현존 앞에서 자신을 볼 수 있어야 진정 내가 누구를 섬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나님과 맘몬을 겸해서 섬길 수 없다. 우리도 삭개오처럼 참된 신, 참된 섬김의 대상을 찾을 때 우리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히13:5] ꡒ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ꡓ
예수님의 제자들은 돈에 대하여 명확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내가 누구를 신뢰하고 살아 갈 것인가? 통장에 돈이 있고 적금에 들어 있기 때문에 안심하며 살수 있는가? 아니면 정말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며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돈은 있으나 없으나 감사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떠나지 않을 것을 믿기 때문이다.
[빌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 눅 18:18~23 부자 관원 *
본문에 이 사람에 대한 평가는 관원이요(18절). 큰 부자였다(23절). 이 사람이 관원이라는 것은 회당의 지도자였거나 산헤드린의 일원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들은 대체로 큰 부자들이었다. 그는 사회적으로 상류층의 사람으로서 율법도 어려서부터 잘 준수하는 신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님께 찾아 와서 선한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당신에 유대인들은 랍비들에게 이런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선한이라는 말은 오직 하나님께만 사용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선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네가 왜 나를 선한 선생이라고 부르느냐?”고 질문하셨다. 그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아주 싫어했다. 그래서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금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니고데모처럼 밤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께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질문을 하였다. 그는 진정 용기 있고 진실한 사람이었다.
그른 계명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지만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영적인 갈급함이 있었다.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의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구원을 위해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더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복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더 하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복음은 우리에게 더 하라고 말씀하지 않고 버리라고 말씀 하신다. 주님은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신다. 너의 가진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그의 중심을 꿰뚫는 질문을 하고 계신다. 그는 모든 것을 다 지켰지만 한 가지가 부족했다. 99% 순종했지만 아직 1%가 남아 있었다. 세상:하나님. 재산:영생 두 가지 모두를 소유 할 수는 없다. 오늘 주님이 당신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신다면 당신을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당신에게 부자는 아니지만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시면 당신은 예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당신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무엇을 포기했는가? 영생을 모든 사람들이 얻기를 원한다. 또한 많은 재산도 사람들은 얻기를 원한다. 그러나 문제는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부자 관원은 두 가치관이 충돌하고 있다. 주님의 Test 부자 관원을 엄청나게 고민을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선택하지 못하였다.
[눅 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 눅 16:19~31 부자와 나사로 *
부자는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운 잔치를 열었다. 그는 6명의 형제가 다복하게 잘 살았다. 최상류 층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을 다 누리면 산 것이다. 그는 한번도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해보지 않았다. 죽음 이후의 일들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세상에서 너무나 행복했고 즐겁게 살았다.
그에 비해서 나사로는 거지였다. 집도 없었고 매일 먹을 음식을 걱정해야 했다. 부자 집 대문 앞에서 앉아 있지도 못해서 누워 지내면서(20절), 부자가 먹고 남은 음식을 주워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한번도 배불리 먹지를 못했다(21절 “배불리려고 하매”). 왜냐하면 늘 개들이 와서 그의 음식을 빼앗아 먹었다. 그리고 먹을 것이 없으면 개들이 그의 몸을 핥았다. 건강도 나빠서 헌데(부스럼)가 온 몸에 생기고 약을 바른 것이 아니라 개들이 와서 그 상처를 핥았지만 개조차 쫓을 힘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22절 “이에”=이때에 라는 말로 이해가 가능하다. 영어 성경은 죽음의 시간이 왔다고 번역되어 왔다. 땅의 시간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 시간은 언젠가 끝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부자나 나사로 모두 이 시간을 맞이한다. 그런데 나사로는 죽어서 장사 지내줄 사람도 없었고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품으로 데릭 갔다. 그런데 부자는 장사를 지내 주었다. 세상에서 멋지고 화려한 장사를 지내 주었을 것이다. 큰 무덤에 호화롭게 장식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을 어떻게 이생의 사람들이 알았겠는가? 그는 타지 않는 불 못에 있었다. 모세가 호렙산 불꽃에 타지 않는 가시나무를 본 것 같이 지옥의 불은 태우지도 않으면서 계속 뜨겁게 타 오르고 있었다.
누가 불쌍한 사람인가? 이 세상의 모습을 보면 나사로는 진짜 불쌍한 사람이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커튼을 열어젖히고, 영원한 시간으로 살펴보자. 영원한 지옥과 영원한 천국을 생각해 보자. 짧은 인생에 조금 더 갖고 조금 덜 갖는 것을 영원한 것과 바꿀 수 있는가?
사람들은 과거는 아주 가깝게 느끼면서도 미래는 아주 멀리 느껴진다. 저는 마음은 소년인데, 몸은 벌써 40대이다. 과거를 생각해 보면 참 빨리 지나갔다. 살아 온 날보다 죽을 날이 이제는 훨씬 가까워 졌다. 미래는 닥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멀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보이는 것으로 만 판단한다. 그러나 미래 또한 과거처럼 우리에게 빨리 달려 올 것이다. 하나님 주신 福音은 이 땅에 잠깐 누릴 것이 아니다. 영원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영원한 것을 주시기 원하신다.
잠언은 대부분 솔로몬이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잠언 30장은 아굴이라는 사람에 의해 쓰여 졌다. 솔로몬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부유했다. 그러나 재물과 권력에 덫에 빠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이방여인과 결혼을 통해 정치적 안정과 재물의 풍요는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재물을 계속 늘리고 또 늘리고 또 늘려 갔다. 그러나 재물은 늘어 났지만 우상도 늘어 갔다. 이방여인들이 늘어 나는 만큼 우상의 신전도 늘어 갔다. 산당들로 예루살렘은 넘쳐 났다. 이렇게 해서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우상숭배로 빠뜨렸을 뿐만 아니라 나라을 두개로 나누게 했으며 자신의 인생도 망치고 말았다. 이런 솔로몬은 말한다.
[잠 11:28]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잠 23:4-5]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찌어다 5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이런 솔로몬의 모습을 보았던 아굴은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잠 30:8-9]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아굴의 기도가 무엇인가? 그는 많은 재물을 구하였는가? 그는 많은 재물이 자신을 타락시키고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재물이 너무 적다면 죄를 지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돈 때문에 아간은 이스라엘 군대를 패배하게 했고, 자신과 가족이 죽임을 당했다.
돈 때문에 발람은 죄를 짓고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려고 했다.
돈 때문에 들린라는 삼손을 배신하고 수천인명의 사람을 죽게 했다.
돈 때문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을 속이고 죽임을 당했다.
돈 때문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았고 피 값을 받았다.
돈 때문에, 돈 때문에, 돈을 사랑하게 될때
[막 4:19]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세상에 돈에 대한 염려, 재물과 이익, 재물의 기만적인 유혹이 말씀을 막고 결실을 못하게 한다.
초대 교회 사도들이나 성도들을 생각해 보면 어떤 복을 받았는가? 우리의 가치 기준과 오늘 성도들이 바라는 복을 생각해 본다면 아무것도 받지 못한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고백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다고 말했다.”(행 3:6)
하나님은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여기라고 하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돈에 안정감을 두고 돈이 없이는 살수 없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이성까지 잃어버리게 된다. 돈 뒤에는 영적인 힘, 권세가 있다. 돈 뒤에 사단의 간교한 전략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사단이 맘몬을 통해 사람들을 사로잡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람들을 조정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마 6:19-21 |
마 6:22-23 |
마 6:24 |
진정한 보물 |
진정한 가치 |
진정한 주인 |
하늘의 보물; 땅의 보물 |
선한 눈; 나쁜 눈 |
하나님; 맘몬 |
마음의 문제 |
눈의 문제 |
섬김의 문제 |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에 따라 누구를 사랑하느냐가 결정된다. 인간의 마음은 두 곳에 있을 수 없다.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있다 |
눈이 밝으면 사물을 적절하게 분별할 수 있다. 눈이 돈에 의해 흐려지면 바른 선택을 못하게 된다. 진정한 눈이 무엇인가? 진정한 보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
나의 삶에 주인이 누구인가? 나는 진정으로 누구를 섬기고 있는가?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섬기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
[딤후 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계 13:16-17]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마지막 시대가 되면 사람들이 모두 짐승의 표를 받게 된다고 한다. 왜 사람들이 짐승의 표를 받는가?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사고 팔수가 없게 된다. 경제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에 지금 우리가 돈도 사용하지 못하고 카드도 없다면 어떻게 살아 갈수 있을까? 지금 우리들에게 이런 경제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게 한다면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우리 모두가 짐승의 표를 받아야 하는가?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한 가지 방법뿐이다. 사고파는 경제행위가 아니라 주고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사고파는 경제행위로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주고받는 성경의 원칙대로 살아야 한다고 하신다. 주고받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한다.
“부는 사용하기 위한 도구이지 숭배를 위한 신(神)이 아니다.” 콜리지(영국시인)
* 맘몬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력들 *
1) 근심과 걱정
성경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나 맘몬을 우리에게 계속 걱정하고 근심하게 만든다. 그래서 돈이 없으면 불안하게 만든다. 그래서 통장이나 주머니에 돈을 넣고 다니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걱정하고 염려한다고 해서 해결되어 지는 것은 아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들판에 들꽃 한 송이도 돌보시며 입히시는 하나님이시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참새 한 마리도 먹이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먹이시고 입히신 분이 누구신가?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러나 맘몬은 우리에게 계속 근심하고 걱정 속에 살아가게 만든다.
[마 6:24-33]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 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2) 충동구매
맘몬은 우리 속에 돈을 계획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충동적인 구매를 하게 만든다. 특별히 백화점의 세일기간이 되면 지금 물건을 사지 않으며 손해를 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물건을 충동구매하게 만든다. 어떤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쇼핑하는 것이 아니라. Shaping을 너무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충돌 구매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도시 중에도 특별한 곳들이 있어서 우리들에게 충동구매를 부추긴다. 예를 들면 홍콩이나 이태원과 같은 곳은 맘몬이 강하게 역사하는 곳이다. 이런 곳을 들리게 되면 나도 모르게 충동구매를 하기 쉽다.
3) 불만족
맘몬을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만족하며 감사하지 못하게 하고 늘 불평하며 불만족속에서 살아가게 만든다. 전 세계 행복지수를 조사했는데 1위가 방글라데시 사람들이었다. 인간은 행복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맘몬은 끝임 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나의 가진 것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 불만하게 만든다. 가끔 핸드폰이나 컴퓨터에 중독 된 사람들이 있다. 새로운 모델이 나오면 바꾸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그 깊은 내면에는 만족이 없는 것이다. 이런 것은 맘몬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자족하며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빌 4:11~13] ꡒ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4) 인색함
인색함은 남에게 주거나 나누지 못하고 혼자 가지려는 마음이다. 물론 이것이 모든 사람들 안에 있지만 특별히 너무나 인색하여 돈을 사용하지 못하고 움켜잡으려고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스쿠루지 이야기나 자린고비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너무 인색하여 나누거나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맘몬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력이다.
5) 탐욕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아놓고 하나님께 부유하지 못했던 부자와 같은 자를 말한다(6눅12:16-18). 끝없는 욕심으로 계속 물건들이나 돈을 지나치게 가지려고 하는 마음이다.
[골 3:5] ꡒ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ꡓ
[살전2:5] ꡒ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느니라.ꡓ
6) 돈의 중요성을 과장되게 표현함.
사람들에게 너무 지나치게 돈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① 소극적으로 돈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한 다고 늘 말한다.
② 적극적으로는 돈이 전부인 것처럼 인식하고 늘 과장되게 돈 얘기를 한다.
(2) 돈의 긍정적인 면 (밝은 면)
지금까지 돈의 어두운 면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돈이 어두운 면만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돈을 버리면 된다. 그리고 돈을 쓰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돈의 어두운 면뿐만 아니라 밝은 면에 대해서도 성경은 증거하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는 돈을 다루는 법을 훈련해야만 한다. 성경말씀과 교회의 전통 안에서는 재물은 하나님의 은총을 나타내는 수단 중 하나였다. 그리고 하나님과 관계를 향상시키는 도구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돈은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한 귀한 도구이다. 그렇다면 돈의 긍정적인 면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1) 하나님이 모든 재물과 부의 주인이시다.
[시24:1] ꡒ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골1:16] ꡒ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ꡓ
만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그럼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을 위해 만들어 졌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해 그중 일부분이 사단의 권세에 속하게 되었지만 그러나 모든 만물의 실질적인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학2:8] ꡒ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ꡓ
[욥 41:11] ꡒ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갚게 하였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ꡓ
마25장의 달란트의 비유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달란트 비유에서 소유주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각각의 필요만큼 채워주시고 그것을 반드시 회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재물과 부를 얻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신다.
[신8:17~18] ꡒ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ꡓ
성경 전체를 통해 인간의 삶을 적절하게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물질을 공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대부분의 것들이 우리의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노력하고 애를 써서 재물과 부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라. 재물은 나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지 않으시면 우리가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할지라도 되지 않는다. 인간이 노력하기만 하면 모두 성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넘어 질수 밖에 없다. 재물과 부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예화> 지금 우리나라가 소득 일만 불 시대에 살고 있다. 동방에서 아주 가난하고 자원도 만치 않았던 한국이 어떻게 이렇게 잘 살수 있는 나라가 되었는가? 새마을 운동 때문인가? 우리나라의 지도자들과 경제를 잘 운영하고,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 했기 때문인가? 물론 그런 면이 없지는 않겠지만 오늘의 우리가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은 하나님이 축복이다. 구약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부자가 되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함으로 갑부가 되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재물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기도 하다. 사람은 다 이해 할 수 없지만 선물이기에 이의를 달수가 없다.
[대상29:11~16]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 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 이다. 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13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14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 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 이다. 15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16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 이다.ꡓ
성경은 우리의 삶에 3가지 축복이 있다고 가르쳐 주신다.
① 1차적 축복; 일반적 축복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자연적 질서를 따라 주어 진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ꡓ
노아의 홍수 후에도 하나님은 동일한 말씀을 사람들에게 주셨다.
[창9:1~7]ꡒ1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2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었음이라 3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ꡓ
하나님의 일차적인 축복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시는 은혜이다. 하나님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악인이나 선인이나 구별이 없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신다.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주시는 은혜가 일차적인 축복이다.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면 일한 대가로 주시는 축복이다. 이것은 일차적인 축복이다.
② 이차적인 축복; 섭리 적 축복
이차적인 축복은 구하며 기도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적인 축복이다.
[막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우리의 구하는 것을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가르쳐 주신다.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일 3: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구하라고 하셨다 그리하면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이것이 이차적인 축복이다. 구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적인 축복이다.
③ 삼차적인 축복: 덤으로 주시는 축복
1차적인 축복과 2차적인 축복을 포기할 때 하나님께서 덤으로 주시는 축복이다.
[마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예를 들어 모면 솔로몬 왕이 일천번제를 드린 후 주셨던 하나님의 축복을 말 할 수 있다.
[왕상3:4~15] ꡒ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10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13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부와 영광을 덤으로 주심
3) 돈은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사용된다.
눅22:35~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둘씩 각동 각처로 파송하실 때 두 벌 옷이나 전대를 가지고 가지 못하게 했지만 예수님의 죽으심을 앞두고 전대를 가지라고 하신다. 오히려 겉옷을 팔아 칼을 가라고 하셨다. 이것은 영적인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씀이지만, 또한 이제는 제물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용하라는 말씀이셨다. 돈은 한 가지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지는데 사용되어야 한다.
[눅 22:35~36] ꡒ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나이다.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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