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1> 1. 기독교: 지루하고 거짓말같고 나와 상관없다?
(Christianity: Boring, Untrue and Irrelevant?)
요한복음 14:6
홍만조 목사
여는 말
(알파 교육과정)
Anyone can come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다)
Learning and laughter (웃으면서 배운다)
Pasta (애찬을 나누면서 공부한다)
Helping one another (서로 돕고 섬긴다)
Ask anything (무엇이든지 질문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지 않고 또 믿는 자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기독교가 지루하고, 거짓말 같고, 자신과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기독교는 재미있고, 진실되며, 우리의 삶과 상관이 있다. 주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 14:6)고 말씀하셨다.
푸는 말
1. 예수님은 잃어버린 세계로 가는 길이다 (Direction for a lost world)
"내가 길이요"
1)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2) 그 관계를 모르면 내가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죄가 많아서 지옥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계를 거부하기 때문에 지옥가는 것입니다. 이 잃어버린 관계를 찾아가는 유일한 길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기독교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국가는 길을 찾아도록 돕는 종교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시는 길이다
안테나가 없으면 화면이 선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틀린 것도 옳은 것처럼 착각하기도 합니다. 선명하게 삽시다.
“예수님은 길이십니다”
2. 예수님은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서의 실재이다
(Reality in a confused world)
"내가 진리요"
1) 진리에 대한 믿음이 인생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신심은 무당들이 더 강합니다. 새벽에 목욕제계하고 접신을 준비합니다. 이스람은 신앙과 생활이 하나이기 때문에 무서운 것입니다. 회회교라고도 하는 이유는 언젠가는 신앙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마음을 가지고 산다고 스스로 붙인 이름일 만큼 영성이 강합니다. 그들은 전쟁을 하다가 나라를 위하여 죽으면 천국 가장 좋은 곳에 간다고 믿기에, 폭력도 정당화하고 덤벼서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진리를 믿느냐는 것입니다. 진리가 아닌 것을 맹종하는 것은 무지 보다 더 큰 불행을 가져옵니다. 아프리카에 에이즈 확산이 걷잡을 수 없는 이유는, 처녀와 성관계를 가지면 치유된다는 잘못된 속설을 믿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 기독교는 공인된 진리입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상대가 아니라 절대입니다. 지리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현대는 정보가 바다처럼 많지만, 진실되고 가치있는 정보를 만나야 유익하지, 무익한 정보는 오히려 해악이 됩니다. 좋은 정보는 성경에 모두 있을 뿐입니다. 만일 그것이 어느 한 사람에게 진리라면 그것은 모두에게 진리가 된다
3) 진리에는 이해되는 진리와 체험되는 진리가 있습니다.
지적인 진리는 이상일 뿐입니다. 예수님을 진리라고 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고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와 하나님을 모셔들인다는 것은 별개의 것입니다. 내가 결혼 전의 아내를 책을 통해서 아는 것은 정보일 뿐입니다. 25년 살아보고 아는 것은 다릅니다. 종합적으로, 총체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어두운 세계 속에서의 생명이다 (Life in a dark world)
"내가 생명이다"
1)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손상되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본질을 회복하고 송상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므로 생명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됩니다.
죄로 인하여 타락하여 어두움에 빠짐으로 빗나간 것이 죄입니다. 화살이 과녘에서 빗나간 것이 죄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조금은 남아 있어서 불신자 중에도 착한 사람을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착한 일을 많이 하므로 죄로 인하여 입은 유전적인 손상(Damege)가 치료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나는 도둑질 한 적이 없기에, 거짓말 한 적이 없기에, 죄인이 아니며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 비하여서는 괜찮을 수 있는지는 몰라도 예수님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비추어서는 큰 죄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죄입니다.
C. S. 루이스는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다’라고 합니다. 우리의 용서는 예수 안에서, 십자가의 대속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1941년 6월 아우슈비츠 형무소에서 있었던 일화입니다.
Sorry!! Welcome!! 이렇게 영접하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2) 인간의 죄성은 예수님에 비출 때 확실하게 드러난다
3) 예수님의 용서를 받아드릴 때 영생을 얻는다 (요 17:3)
닫는 말
폴 틸리히는 인간이 항상 세 가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무의미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죄책에 대한 두려움이다.
예수님은 이 두려움과 정면으로 맞서셨다.
기독교는 풍성한 삶을 사는 방법이요, 유일한 진리요, 삶 전체를 바꾸어 놓는다.
충청도 사람을 만나서 충청도 사람은 천당도, 죽는 것도 천천히 가겠다고 좋겠다고 그랬더니 그분이 절대로 그렇지 않대요. 죽음에 관한한 충청도 말이 제일 급하답니다. 사실 표준어로 “돌아가셨습니다.”이렇게 말을 하는데 아마 경상도 사람은 “운명하셨다 아입니꺼?” 전라도 사람은 ”이 세상 버렸어라우ꡓ 버렸당께,
그런데 충청도가 제일 급하대요 “갔시유“
여러분! 우리는 지금 삶의 방향을 잃어 가고 있어요. key를 잃어 버렸습니다. 삶의 가치관을 잃어 버렸고, 사랑의 능력을 잃어 버렸습니다. 형제끼리도 용서가 안 돼요. 용서하고 싶은데 그게 안 돼요. 사랑의 기능이 마비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동정도 잘 안 되고, 인내도 잘 안 되고... 왜 그럴까? 지루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사랑과 평화의 고향집을 잃어 버렸습니다. 삶의 겉모습은 풍요로운 것 같은데, 정신적인 내면은 너무 황폐해 버렸습니다.
기독교는 1) 지루하고 -------------- 재미있고
2) 거짓말 같고 ------------------- 진실되며
3) 나와 상관이 없는가? ------------ 나와 상관이 있는 종교입니다.
푸는 말
1. 잃어버린 세계로 가는 길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과 관계 안에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 관계가 없어서 허전하고 공허함에 삽니다.
어느 목사님이 울먹이면서 "목사님 세상에 이럴 수 있는 거예요?"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데 내용인즉 이렇습니다. 그 목사님의 처남 가족이 영등포에 살고 있는데 부부가 모두 학교 선생님이래요. 아들만 둘이 있는데 국민학교 5학년, 3학년이랍니다. 얼마나 머리가 좋은지 전학년에서 둘이 다 수석입니다. 어느날 4식구가 저녁을 먹은 다음 둘러앉아 이야기하다가 아빠가 "얘들아, 엄마 아빠 늙으면 누가 모실래?" 갑론을박 하다가 결론이 안 나니 아빠가 "한국적인 전통과 풍습에 따라 맏이가 모셔라." 그랬다는 겁니다. 그랬더니 둘째가 벌떡 일어나더니만 "수지 맞았다. 수지 맞았다." 소리지르더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첫째가 일그러진 얼굴로 "김샜군, 김샜어" 거기까진 그래도 듣겠는데 "아빠, 빨리 생명보험 들어둬요. 나 책임 안 질래!!" 그러더라는 겁니다. 이러한 가정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역사가 이루어지겠는가? 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세계가 만들어지겠는가? 어떻게 이러한 분위기를 가지고 21세기의 험악한 역사의 언덕마루를 오를 수가 있습니까? 가슴이 아파요. 아찔한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푸는 말
이러한 대변혁에도 불구하고 달라지는 것이 없는 세상이 지루하기만 합니다.
삶의 목적도 없이 세월을 허송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되든 자기이익만을 추구하는 축재에 눈이 붉은 사람들, 향락의 추구자, 좌절감, 열등 의식에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어떠한 사람이든 지금은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될 시대가 되었습니다. 시류를 이기고 세태를 극복하면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변화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은 <만남>에 의하여 그 인생이 변화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좋은 스승, 좋은 친구, 좋은 사람과의 <만남>에 의하여 그 인생이 좋은 방향으로 변화된다면 우리는 그러한 사람과 <만남>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오랜 세계 역사 속에 지금까지 가장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그들의 생애를 변화시켜 주신 분을 생각한다면 단연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작은 유대 나라에 탄생하셨으나 그 감화, 그 구원의 능력은 오늘도 전세계에 미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1. 오직 예수만이 길
"내가 곧 길이요."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즉 하나님께 가는 많은 길들 중 하나일 수는 있으나 그가 유일한 길은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연법, 도덕법, 양심법 등의 길들을 통하여 하나님께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혹자는 말하기를 "원래 산꼭대기는 하나인 것이고, 그 산 정상에 오르는 등산같은 여러 갈래가 있다. 동쪽 등산로는 불교라고 할 수 있고, 서쪽 등산로는 기독교라고 할 수 있으며, 중동에는 이슬람교라는 등산로도 있고 한국만도 여러 신흥 종교가 나타나 길을 닦았고 수 많은 등산로가 개설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산꼭대기를 향하여 올라가는 등산로라는 이름의 종교는 산정 즉 유일성과 등산로 즉 다양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하여 어느 종교가 참다운 종교냐 하는 것을 알려면 먼저 그 윤리성을 보아야 합니다. 윤리성이 없는 종교는 결코 인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에게 복을 달라고 하는 기복성만 있지 착한 일을 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등의 윤리성은 없는 종교들을 봅니다. 이런 종교는 결국 인간에게 해독을 끼치고 그래서 수명도 짧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샤머니즘이나 범신 사상을 가진 소위 다신론입니다. 자연을 숭배하는 다신론을 가지고서는 과학의 발달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자연을 분석하고 활용하려는 생각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만이 하나님이 만들어 사람에게 주신 자연 만물을 쪼개고 이용해 볼 수 있고 그러다보니 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종교입니다.
그것은 그렇고 인간 내면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 인생은 미혹이 많은 존재입니다. 옛날 중국의 공자는 "40이 넘으면 미혹을 받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것은 공자 같은 사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생동안 미혹이 연속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생동안 미혹이 연속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학교 선택에 미혹되고 취직과 결혼에 방황합니다. 중년이 되어서도 고령이 여러가지 미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따를 때 미혹 받는 일이 적게 되고 어떠한 고난과 역경의 때에도 길이 열려 안심과 평안의 생활을 보낼 수 있습니다.
요 8: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의 좋은 가이더(guider. 안내자)시요, 좋은 카운셀러 (상담자)이십니다.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후회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2. 오직 예수만이 진리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계시하고 인생의 사는 방법, 사후의 생활, 영원한 운명 등을 바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이 하나 제시되어 있는 바 그것은 곧 하나님 자신이 인간이 되는 길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씀에서 우리는 이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삶과 그 사역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임마누엘의 행위에서 하나님의 성품으로서의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십자가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의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십자가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의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은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를 바라볼 때 그리스도의 구원의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모르고는 하나님에 대한 어떠한 진리도 터득할 수가 없습니다.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알면 진리 자체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들의 주위에는 거짓말이 많고 거짓과 가짜가 판을 칩니다. 그것들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보이나 실은 신기루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언제나 우리들에게 <이것이 바른 길이다> <이것이 인생의 나아갈 길이다>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사물의 흑백의 판단, 정의와 불의의 구별을 명백하게 가르쳐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고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 진실, 온유, 겸손, 성결, 용기, 인내에 대해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만이 그의 말씀 그의 성품 그의 생활로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인을 불쌍히 여겼고 회개와 죄사함의 진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만이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죄를 대신 속해 주시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는 그 마음이 매일 어둡고 불안하고 공포 속에 헤매입니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믿게 되면 마음에 빛이 오고 희망과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언제나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3. 오직 예수만이 생명
"생명이니."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부활의 생명을 허락해 주십니다. 쓸쓸한 마음에 희망을, 약한 마음에 새 힘을 허락해 주십니다. 또한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되어 영원한 희망과 생의 기쁨을 넘치게 해 주십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인간이 변화됩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인간이 변화됩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우리들을 <새롭게 태어나도록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일본에 호지유태랑이란 죄수가 있었습니다. 18세 때 동경 어느 상점 점원으로 있으면서 그 상점 여주인을 죽이고 그 집에 불을 질러 태우고 도망했습니다. 그는 붙잡혀 북해도 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자포자기한 그는 몇번이고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결국 무기징역을 언도받았습니다. 한번은 같은 감방의 죄수들이 한 장의 그림엽서를 보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 그림은 바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림이었습니다.
호지유태랑이 그 그림을 보고서 이해를 못하여 "십자가에 처형되다니 참으로 극악인이었구나!"고 말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무슨 말이오, 이 분은 극악인이 아니고 인류를 구원하신 주라 부르는 예수 그리스도요."라고 했습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혔는가?" 그가 물었습니다. "당신 아무 것도 모르고 있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신 것이오."
이 대답을 들은 호지 유태랑은 놀람과 함께 그리스도에 관한 일을 알기 위하여 간수에게 부탁하여 성경을 구입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고 보니 이어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그의 생활태도는 완전히 변했습니다. 드디어 모범수가 되어 환자들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때 결핵 환자를 돌보게 되었는데 그 환자의 담이 목을 메어 질식 상태가 된 바 자기 입을 그의 입에 대고 빨아내어 그 환자를 살린 때도 있었습니다. 그는 사면되어 사회에 복귀하였으나 후에 전국 형무소에 강사로 초청되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만이 영원한 생명이 되십니다. 생명의 근원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산 것이 산 것을 낳습니다. 죽은 것이 산 것을 낳지 못합니다. 이 우주의 생명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온 것입니다. 무기물이 유기물을 만들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보면 예수님이 장례식을 행하신 적이 없습니다. 죽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반드시 살려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이십니다. 그리스도와 접촉하면 그냥 죽어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라하리."고 했습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에게 어떤 청년이 "선생님은 얼마나 사실 것같습니까?" 하고 물으니, 이상재 선생이 얼른 "그거야 다 사는 법을 몰라 그렇지, 나는 영원히 살거야."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삽니다.
부흥사 무디 선생은 말하기를 "오래지 않아 여러분은 나에 대한 소문을 들을 것입니다. 즉 이 무디가 죽었다 하는 소문을 들을 것입니다. 내가 미리 부탁하는 것은 그런 소문 곧이 듣지 마시오. 나는 영원히 살 것입니다. 내가 이 육신을 벗어 놓을 때는 지금보다 더 분명히, 더 똑똑히, 더 깨끗이, 더 풍족하게, 더 행복하게 영원히 살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요 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생명을 풍부히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 결론으로
오직 예수만이 길입니다. 미혹되지 않습니다(방황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진리입니다. 빛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오직 예수만이 생명입니다. 달라지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
♠ 잘못 탄 버스
어떤 사람이 고향에 가기 위하여 고속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고속터미널이라고 쓰여있는 시내버스를 올라 탔습니다. 이젠 다와 가겠지 하고 옆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고속 터미널이 아직 멀었나요? 아니요. 이 차는 고속 터미널로 가지 않는데요. 거기서 나오는 차입니다.
이 사람은 차를 잘 못 탄 것입니다. 고속 터미널로 가는 차를 탄 것이 아니라 고속 터미널에서 나오는 차를 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 차에서 내리는 것일 것입니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서 길을 건넌 다음에 다시 고속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갈아 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디를 가기 위해서는 길을 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길을 잘 몰라서 결국은 고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 인생의 길
그런데 이러한 길 말고 다른 한 종류의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의 길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무엇이 되고자 하는데로 하나의 길을 찾아 갑니다. 그 길을 잘 찾아 가는 사람도 있고, 또 잘 못 찾아서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참아가며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공부는 못했지만 자기의 소질을 잘 살려서 열심히 사는 훌륭한 사람도 있습니다. 잘 살지는 못하지만 나쁜짓 않하고, 착하게 사는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기의 길을 잘 찾아서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조금 더 잘 살려고 남의 것을 ᄈ앗는 강도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길을 잘못든 사람들인 것입니다. 강도질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이런 사람들은 결국 후회를 하게 됩니다. 후회하면서 하는 말은 다 똑같습니다. 내가 어릴 때 길을 잘못 들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친구를 잘 못 만나고, 잘못된 길로 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도 버스를 잘못 탔을 때 처럼 자기가 가던 길을 버리고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늦었을 지라도 나쁜 길에서 돌아서야만 하는 것입니다. 돌아서서 바른 길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 생명의 길
이 두 개의 길 말고 또 하나의 길이 오늘 읽은 본문 말씀 가운데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느니라. "
이 길은 생명의 길이요..진리의 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길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버스를 잘 못 탄 사람이 다시 버스를 바꾸어 타 듯이. 인생의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야 되듯이 누구든지 천국에 가고자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지 않고는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생의 길은 사람이 죽을 때 까지 가는 길이라면 이 예수의 길은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가 가야할 길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천국에 가고자 한다면, 잠깐 멈추어 서야 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에 예수님이 있는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내 발이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 가고 있는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 길이 예수님의 길이 아니면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옮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38선으로 남과 북이 나뉘었을 때의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북에서 자유를 찾아 남으로 내려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길을 잘 모르기 때문에 꼭 안내하는 사람을 따라 다녀야 했습니다. 안내하는 사람은 말합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 손을 놓지 마시오. 내 손을 놓으면 죽은 거나 다름 없어요. 캄캄한 밤이 되자. 드디어 안내하는 사람을 따라 한 사람이 남으로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내려 오는데 그만 철길을 지나다 자갈을 밟는 소리에 들키고 말았습니다. 공산군은 소리를 듣고 총을 쏘아대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그만 그 사람은 안내원의 손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너무 놀라서 혼자 도망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고 혼자 숨어 있는데, 어디선가 자기를 부르는 조그마한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안내원이었습니다. 안내원은 그 사람에게 혼을 내었습니다. 왜 내 손을 놓고 멋대로 도망갔느냐고 꾸중을 합니다. 그 사람은 안내원을 만나서 살게 되었고 남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분은 바로 예수님 한 분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손을 놓는다면 천국으로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 우리가 커서 무엇이 될지 아직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 한가지만은 우리 마음 속에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디를 가든지 예수님의 손만은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예수님만을 따라 살기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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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4:6
지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국이 오늘날 후진성을 면치 못한 이유는, 그 넓은 땅에 길을 내지 않고, 그 대신에 만리장성 같은 성벽을 쌓아, 오히려 서로 교통할 수 있는 길을 차단시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강원도가 다른 지방에 비하여 다소 낙후가 되었습니다. 이것 역시 높은 산들로 인하여 길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영,호남간의 지역 감정의 골이 깊은 것은 정치적인 이유라기보다, 이것 역시 길 때문이라고 합니다. 삼국시대 이때도 동서간 서로 왕래할 수있는 길이 뚫어지지 않아 오랜 세월 동안 교통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소백산맥이 경상도와 전라도를 막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작 88고속도로 같은 길이 동서로 뚫어졌었더라면 영,호남의 지역 감정은 처음부터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여러분! 이토록 길이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결정적을 중요합니다. 앞 길이 훤히 트이면 성공하고 길이 막히면 실패를 합니다. 만사형통이란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들이 막히지 않고 잘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는 일마다 그 길이 막히지 않고, 답답한 일이 생기지 않고 일이 잘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길이 막히지 않아야 모든 일이 잘됩니다.
지난 70,80년대의 고도의 경제 성장을 하는데 있어서, 경부고속도로가 큰 몫을 담당했다는 것은 ,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입니다.이토록 길은 중요합니다. 최근에, 포항 지역의 매스컴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서, 2,000년대의 포항 개발에 대한 청사진을 보도한바 있습니다. 이 청사진은 그 동안 여러 차례의 심포지움을 통해서 이야기된 것들입니다. 앞으로 냉전 시대는 지나가고 환태평양 시대가 도래하게 되는데, 그때를 대비해서 포항을 환태평양의 중심 도시로 개발한다는 청사진입니다. 즉 포항을 일본과 이북, 중국과 소련을 연결하는 국제도시로 개발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포항에 그만한 것을 건설할 땅이 없기 때문에 포항 앞바다를 메워서 "인공성"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포항이 국제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포항을 중심 해서 반경50km까지 확장 개발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포항을 중심 해서 50km반경이 어디까지냐 하면, 북쪽으로 홍해와 청하을 지나 영덕까지이며, 서북쪽으로는 기계와 죽장을 포함하여 청송까지 이며, 서쪽으로는 안강과 염천까지이며, 서남쪽으로는 경주까지, 그리고 남쪽으로 구룡포와 양포를 지나 김포까지입니다. 저는 이같은 거대한 포항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보면서 이와 같은 포항의 개발과 함께 포항을 중심 해서 뻗어 나가게 될 길에 대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포항이 이토록 확장 개발 되려면 먼저 넓은 길이 뚫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1. 부채꼴 모습으로 육지로 뻗어 나가는 육로입니다. 이 길은, 영덕 울진을 지나서 저 이북 원산까지 연결되는 동해안 관광 도로에 대한 환상입니다. 또 하나 길은 청송,안동,원주를 지나 서울과 평양으로 가는 통일로입니다. 또 하나의 길은 서쪽으로 안강,영천,경산,대구를 통과해서 전라도 광주로 가는 동서 화합의 길입니다. 그 다음의 길은 경주, 부산, 마산, 순천, 여수로 가는 남해 고속도로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구룡포, 양포, 함포를 지나 울산, 부산으로 이어지는 동해안 산업 고속도로입니다. 이 길들을 환상으로 본 것입니다. 그 다음에 본 길은 해로와 항공로입니다. 포항국제신항에서 일본과 소련, 이북과 중국의 항구도시로 연결되는 수많은 뱃길들과, 포항 국제공항에서 출발해서 지구촌 어디에나 날아가는 거미줄 같은 항공로에 대한 환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같은 포항을 중심 해서 육지로, 바다로, 하늘로 뻗어지는 수많은 길들에 대한 환상은 바로 거대한 국제도시로서 포항에 대한 환상이기도 합니다. 이 환상은 고도로 발전된 산업, 과학, 기술의 도시로서 포항! 모든
분야의 전문 고급 인력이 집중되고, 모든 정보와 경제가 집중되는 거대한 국제도시로서 포항에 대한 환상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너무나 황당한 꿈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같은 거대한 포항에 대한 꿈은 우리 포항 시민이면 누구나 한번쯤 가질 수 있는 꿈이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포항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우리 포항이 참으로 이같은 거대한 국제도시가 되기를 원합니다. 포항에 대한 이 찬란한 꿈이 빨리 실현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포항이 고도의 산업, 과학기술의 도시, 테크노 폴리스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발전하여 참으로 살기 좋은 포항, 풍성한 포항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길만이 우리 포항이 잘사는 길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난 기독교회의 한 목사로서 포항에 대한 또 다른 제3의 환상!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이 꿈은 세속 도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하나님께서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도성으로서 포항에 대한 꿈입니다. 포항에 대한 새로운 꿈!
저는 앞으로 계속해서 이 꿈에 대한 이야기를 포항 시민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 교회가 포항 시민 도성의 날을 정하고 내건 표어가 "포항을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 포항이 거대한 국제도시가 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모든 산업의 중심 도시가 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경제적으로 불황이 없는 도시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잘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 우리가 결코 잘 살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경제발전만이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포항이 진실로 잘 살수 있는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포항이 하나님의 도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성이란 하나님이 지배하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도성이란 의미입니다.
이 도성이 하나님의 도성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포항 시민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함 하나님의 도성으로 가는 길,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길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사람이 가는 길에는 크게 두 종류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교통 수단으로서의 길이고 또 다른 길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며 걸어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이 길을 한문으로는 "길도"라고 합니다. 이 도는 사람이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이며, 사람이 사람으로서 걸어가야 할 길을 말합니다. 사람이 다른 짐승과 다른 것은 하는 짓과 걷는 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는 짓과 걷는 길이 도리에 어긋나고 바르게 걷지 못할 때, 그 사람을 가리켜 짐승만도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답게 사는 길! 참으로 사는 길! 생명의 길! 이 길은 있으며 만약에 있다면 이 길은 우리가 어떻게 가야 하는 것인가? 우리 함께 풀어야 할 질문입니다. 예로부터 인생을 나그네라 했습니다. 나그네란 누구입니까? 고향을 떠난 사람이 어딘가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을 나그네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 나그네로 와서 길을 가는 자들입니다. 사람답게 살다가 이 길을 가야 하겠는데, 이 길을 어떻게 가야 하나? 이 길을 가는 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명의 길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첫째로 목적지를 정해야 합니다. 여행길을 떠나는 자가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무작정 길을 떠난다면, 그 사람은 정신나간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고 한 평생을 방황하며 살다가 세상을 끝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흙으로 사람을 만들어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으므로 평생 살다가 결국 호흡이 끊어지면, 하나님로 돌아가도록 사람을 지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우리 인간들이 이 세상에 나그네로 왔다가 가야 할 본향은 하나님이 계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이 가야 할 목적지를 분명히 정하고, 그 길을 잘 가야야 합니다. 교도소에 갇혀 있는 죄수들과 상담을 해보면, 한결같이 하는 말이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걷고 있는 길은 어떤 길입니까? 지금 여러분들이 정하고 가는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둘째로 나그네의 길을 가는 우리에게 안내자가 필요합니다.
해외 여행을 해보신 분들은 잘 아시는 일입니다만, 여행을 잘하려면 좋은 안내자를 만나야 합니다. 도무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로 길을 떠나는 자에게는 안내자가 꼭 필요합니다. 안내자는 여행자를 실족하지 않도록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길을 잘 인도하고, 또한 길을 동행해 줍니다. "어떤 날 하얀 백사장을 두 사람이 나란히 걷고 있었습니다. 한 분은 예수님이 였고, 또한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 이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길을 걷던 그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무한한 기쁨을 가지고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얼마후 예수님과 그 사람은 높은 산 언덕 위에 올라가 두 사람이 걸었던 발자취를 내려다보게 되었습니다. 하얀 백사장에 두 사람의 발자국이 그림자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시밭길, 비탈길, 같은 길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을 바라본 그 사람은 예수님께 불평스런 어투로 말했습니다. "주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평탄한 길에선 주님께서 내 곁에서 같이 걸으셨는데, 험한 길에선 어디로 가시고 저만 홀로 길을 걷게 했습니까?" 그때 예수님은 "자세히 보아라, 험한 길에 남아 있는 한 사람의 발자국은 너의 발자국이 아니라, 나의 발자국이니라. 그것은 위태로운 길에선 나는 너를 부둥켜안고 걸었기 때문에 나의 발자국만 남아 있었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곁에 누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의 안내를 누구에게 맡기고 나그네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내가 사업이 잘되고 승진하고, 건강하고, 형편이 좋을 때는 나와 함께 술을 기우리고 음식을 함께 할 친구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내가 사업에 실패하고 병들고,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내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끝까지 내 옆에 있어 줄 친구는 별로 없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의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입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으로 잔잔한 물가로 인도해 주십니다. 비록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해 주십니다"라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안내자이십니다. 예수님은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동행해 주실 진실한 안내자입니다. 여러분, 누구에게 안내를 부탁하시렵니까?
셋째로 보호자가 필요합니다. 여행 길에는 항상 예기치 않는 일들이 발생합니다. 특히 해외 여행은 더욱 그러합니다. 해외에서 긴급 사태나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대사관이나 영사관을 찾습니다. 그것은 도움이나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그네로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여행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험이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우리를 위험해서 지켜 주고 보호해 줄 보호자가 절대로 필요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보호자를 하나님이라 가르쳐 줍니다. 시편46편 1절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시며,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시인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 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아멘
여러분들의 나그네 길! 위험하기 그지없는 나그네 길을 보호해 줄 분을 누구를 택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하겠다"(요14:1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시지 않으시고, 어떤 경우에도 우리와 함께 있어서 보호해 주시는 영원한 보호자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영원한 안내자이시며, 우리의 보호자이신 우리 주님은 위대한 선언을 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초청을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오늘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생명의 길로!
(Christianity: Boring, Untrue and Irrelevant?)
요한복음 14:6
홍만조 목사
여는 말
(알파 교육과정)
Anyone can come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다)
Learning and laughter (웃으면서 배운다)
Pasta (애찬을 나누면서 공부한다)
Helping one another (서로 돕고 섬긴다)
Ask anything (무엇이든지 질문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지 않고 또 믿는 자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기독교가 지루하고, 거짓말 같고, 자신과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기독교는 재미있고, 진실되며, 우리의 삶과 상관이 있다. 주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 14:6)고 말씀하셨다.
푸는 말
1. 예수님은 잃어버린 세계로 가는 길이다 (Direction for a lost world)
"내가 길이요"
1)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2) 그 관계를 모르면 내가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죄가 많아서 지옥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계를 거부하기 때문에 지옥가는 것입니다. 이 잃어버린 관계를 찾아가는 유일한 길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기독교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국가는 길을 찾아도록 돕는 종교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시는 길이다
안테나가 없으면 화면이 선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틀린 것도 옳은 것처럼 착각하기도 합니다. 선명하게 삽시다.
“예수님은 길이십니다”
2. 예수님은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서의 실재이다
(Reality in a confused world)
"내가 진리요"
1) 진리에 대한 믿음이 인생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신심은 무당들이 더 강합니다. 새벽에 목욕제계하고 접신을 준비합니다. 이스람은 신앙과 생활이 하나이기 때문에 무서운 것입니다. 회회교라고도 하는 이유는 언젠가는 신앙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마음을 가지고 산다고 스스로 붙인 이름일 만큼 영성이 강합니다. 그들은 전쟁을 하다가 나라를 위하여 죽으면 천국 가장 좋은 곳에 간다고 믿기에, 폭력도 정당화하고 덤벼서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진리를 믿느냐는 것입니다. 진리가 아닌 것을 맹종하는 것은 무지 보다 더 큰 불행을 가져옵니다. 아프리카에 에이즈 확산이 걷잡을 수 없는 이유는, 처녀와 성관계를 가지면 치유된다는 잘못된 속설을 믿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 기독교는 공인된 진리입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상대가 아니라 절대입니다. 지리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현대는 정보가 바다처럼 많지만, 진실되고 가치있는 정보를 만나야 유익하지, 무익한 정보는 오히려 해악이 됩니다. 좋은 정보는 성경에 모두 있을 뿐입니다. 만일 그것이 어느 한 사람에게 진리라면 그것은 모두에게 진리가 된다
3) 진리에는 이해되는 진리와 체험되는 진리가 있습니다.
지적인 진리는 이상일 뿐입니다. 예수님을 진리라고 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고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와 하나님을 모셔들인다는 것은 별개의 것입니다. 내가 결혼 전의 아내를 책을 통해서 아는 것은 정보일 뿐입니다. 25년 살아보고 아는 것은 다릅니다. 종합적으로, 총체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어두운 세계 속에서의 생명이다 (Life in a dark world)
"내가 생명이다"
1)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손상되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본질을 회복하고 송상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므로 생명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됩니다.
죄로 인하여 타락하여 어두움에 빠짐으로 빗나간 것이 죄입니다. 화살이 과녘에서 빗나간 것이 죄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조금은 남아 있어서 불신자 중에도 착한 사람을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착한 일을 많이 하므로 죄로 인하여 입은 유전적인 손상(Damege)가 치료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나는 도둑질 한 적이 없기에, 거짓말 한 적이 없기에, 죄인이 아니며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 비하여서는 괜찮을 수 있는지는 몰라도 예수님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비추어서는 큰 죄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죄입니다.
C. S. 루이스는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다’라고 합니다. 우리의 용서는 예수 안에서, 십자가의 대속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1941년 6월 아우슈비츠 형무소에서 있었던 일화입니다.
Sorry!! Welcome!! 이렇게 영접하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2) 인간의 죄성은 예수님에 비출 때 확실하게 드러난다
3) 예수님의 용서를 받아드릴 때 영생을 얻는다 (요 17:3)
닫는 말
폴 틸리히는 인간이 항상 세 가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무의미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죄책에 대한 두려움이다.
예수님은 이 두려움과 정면으로 맞서셨다.
기독교는 풍성한 삶을 사는 방법이요, 유일한 진리요, 삶 전체를 바꾸어 놓는다.
충청도 사람을 만나서 충청도 사람은 천당도, 죽는 것도 천천히 가겠다고 좋겠다고 그랬더니 그분이 절대로 그렇지 않대요. 죽음에 관한한 충청도 말이 제일 급하답니다. 사실 표준어로 “돌아가셨습니다.”이렇게 말을 하는데 아마 경상도 사람은 “운명하셨다 아입니꺼?” 전라도 사람은 ”이 세상 버렸어라우ꡓ 버렸당께,
그런데 충청도가 제일 급하대요 “갔시유“
여러분! 우리는 지금 삶의 방향을 잃어 가고 있어요. key를 잃어 버렸습니다. 삶의 가치관을 잃어 버렸고, 사랑의 능력을 잃어 버렸습니다. 형제끼리도 용서가 안 돼요. 용서하고 싶은데 그게 안 돼요. 사랑의 기능이 마비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동정도 잘 안 되고, 인내도 잘 안 되고... 왜 그럴까? 지루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사랑과 평화의 고향집을 잃어 버렸습니다. 삶의 겉모습은 풍요로운 것 같은데, 정신적인 내면은 너무 황폐해 버렸습니다.
기독교는 1) 지루하고 -------------- 재미있고
2) 거짓말 같고 ------------------- 진실되며
3) 나와 상관이 없는가? ------------ 나와 상관이 있는 종교입니다.
푸는 말
1. 잃어버린 세계로 가는 길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과 관계 안에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 관계가 없어서 허전하고 공허함에 삽니다.
어느 목사님이 울먹이면서 "목사님 세상에 이럴 수 있는 거예요?"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데 내용인즉 이렇습니다. 그 목사님의 처남 가족이 영등포에 살고 있는데 부부가 모두 학교 선생님이래요. 아들만 둘이 있는데 국민학교 5학년, 3학년이랍니다. 얼마나 머리가 좋은지 전학년에서 둘이 다 수석입니다. 어느날 4식구가 저녁을 먹은 다음 둘러앉아 이야기하다가 아빠가 "얘들아, 엄마 아빠 늙으면 누가 모실래?" 갑론을박 하다가 결론이 안 나니 아빠가 "한국적인 전통과 풍습에 따라 맏이가 모셔라." 그랬다는 겁니다. 그랬더니 둘째가 벌떡 일어나더니만 "수지 맞았다. 수지 맞았다." 소리지르더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첫째가 일그러진 얼굴로 "김샜군, 김샜어" 거기까진 그래도 듣겠는데 "아빠, 빨리 생명보험 들어둬요. 나 책임 안 질래!!" 그러더라는 겁니다. 이러한 가정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역사가 이루어지겠는가? 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세계가 만들어지겠는가? 어떻게 이러한 분위기를 가지고 21세기의 험악한 역사의 언덕마루를 오를 수가 있습니까? 가슴이 아파요. 아찔한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푸는 말
이러한 대변혁에도 불구하고 달라지는 것이 없는 세상이 지루하기만 합니다.
삶의 목적도 없이 세월을 허송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되든 자기이익만을 추구하는 축재에 눈이 붉은 사람들, 향락의 추구자, 좌절감, 열등 의식에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어떠한 사람이든 지금은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될 시대가 되었습니다. 시류를 이기고 세태를 극복하면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변화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은 <만남>에 의하여 그 인생이 변화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좋은 스승, 좋은 친구, 좋은 사람과의 <만남>에 의하여 그 인생이 좋은 방향으로 변화된다면 우리는 그러한 사람과 <만남>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오랜 세계 역사 속에 지금까지 가장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그들의 생애를 변화시켜 주신 분을 생각한다면 단연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작은 유대 나라에 탄생하셨으나 그 감화, 그 구원의 능력은 오늘도 전세계에 미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1. 오직 예수만이 길
"내가 곧 길이요."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즉 하나님께 가는 많은 길들 중 하나일 수는 있으나 그가 유일한 길은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연법, 도덕법, 양심법 등의 길들을 통하여 하나님께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혹자는 말하기를 "원래 산꼭대기는 하나인 것이고, 그 산 정상에 오르는 등산같은 여러 갈래가 있다. 동쪽 등산로는 불교라고 할 수 있고, 서쪽 등산로는 기독교라고 할 수 있으며, 중동에는 이슬람교라는 등산로도 있고 한국만도 여러 신흥 종교가 나타나 길을 닦았고 수 많은 등산로가 개설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산꼭대기를 향하여 올라가는 등산로라는 이름의 종교는 산정 즉 유일성과 등산로 즉 다양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하여 어느 종교가 참다운 종교냐 하는 것을 알려면 먼저 그 윤리성을 보아야 합니다. 윤리성이 없는 종교는 결코 인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에게 복을 달라고 하는 기복성만 있지 착한 일을 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등의 윤리성은 없는 종교들을 봅니다. 이런 종교는 결국 인간에게 해독을 끼치고 그래서 수명도 짧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샤머니즘이나 범신 사상을 가진 소위 다신론입니다. 자연을 숭배하는 다신론을 가지고서는 과학의 발달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자연을 분석하고 활용하려는 생각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만이 하나님이 만들어 사람에게 주신 자연 만물을 쪼개고 이용해 볼 수 있고 그러다보니 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종교입니다.
그것은 그렇고 인간 내면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 인생은 미혹이 많은 존재입니다. 옛날 중국의 공자는 "40이 넘으면 미혹을 받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것은 공자 같은 사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생동안 미혹이 연속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생동안 미혹이 연속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학교 선택에 미혹되고 취직과 결혼에 방황합니다. 중년이 되어서도 고령이 여러가지 미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따를 때 미혹 받는 일이 적게 되고 어떠한 고난과 역경의 때에도 길이 열려 안심과 평안의 생활을 보낼 수 있습니다.
요 8: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의 좋은 가이더(guider. 안내자)시요, 좋은 카운셀러 (상담자)이십니다.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후회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2. 오직 예수만이 진리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계시하고 인생의 사는 방법, 사후의 생활, 영원한 운명 등을 바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이 하나 제시되어 있는 바 그것은 곧 하나님 자신이 인간이 되는 길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씀에서 우리는 이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삶과 그 사역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임마누엘의 행위에서 하나님의 성품으로서의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십자가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의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십자가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의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은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를 바라볼 때 그리스도의 구원의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모르고는 하나님에 대한 어떠한 진리도 터득할 수가 없습니다.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알면 진리 자체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들의 주위에는 거짓말이 많고 거짓과 가짜가 판을 칩니다. 그것들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보이나 실은 신기루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언제나 우리들에게 <이것이 바른 길이다> <이것이 인생의 나아갈 길이다>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사물의 흑백의 판단, 정의와 불의의 구별을 명백하게 가르쳐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고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 진실, 온유, 겸손, 성결, 용기, 인내에 대해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만이 그의 말씀 그의 성품 그의 생활로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인을 불쌍히 여겼고 회개와 죄사함의 진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만이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죄를 대신 속해 주시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는 그 마음이 매일 어둡고 불안하고 공포 속에 헤매입니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믿게 되면 마음에 빛이 오고 희망과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언제나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3. 오직 예수만이 생명
"생명이니."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부활의 생명을 허락해 주십니다. 쓸쓸한 마음에 희망을, 약한 마음에 새 힘을 허락해 주십니다. 또한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되어 영원한 희망과 생의 기쁨을 넘치게 해 주십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인간이 변화됩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인간이 변화됩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우리들을 <새롭게 태어나도록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일본에 호지유태랑이란 죄수가 있었습니다. 18세 때 동경 어느 상점 점원으로 있으면서 그 상점 여주인을 죽이고 그 집에 불을 질러 태우고 도망했습니다. 그는 붙잡혀 북해도 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자포자기한 그는 몇번이고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결국 무기징역을 언도받았습니다. 한번은 같은 감방의 죄수들이 한 장의 그림엽서를 보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 그림은 바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림이었습니다.
호지유태랑이 그 그림을 보고서 이해를 못하여 "십자가에 처형되다니 참으로 극악인이었구나!"고 말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무슨 말이오, 이 분은 극악인이 아니고 인류를 구원하신 주라 부르는 예수 그리스도요."라고 했습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혔는가?" 그가 물었습니다. "당신 아무 것도 모르고 있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신 것이오."
이 대답을 들은 호지 유태랑은 놀람과 함께 그리스도에 관한 일을 알기 위하여 간수에게 부탁하여 성경을 구입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고 보니 이어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그의 생활태도는 완전히 변했습니다. 드디어 모범수가 되어 환자들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때 결핵 환자를 돌보게 되었는데 그 환자의 담이 목을 메어 질식 상태가 된 바 자기 입을 그의 입에 대고 빨아내어 그 환자를 살린 때도 있었습니다. 그는 사면되어 사회에 복귀하였으나 후에 전국 형무소에 강사로 초청되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만이 영원한 생명이 되십니다. 생명의 근원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산 것이 산 것을 낳습니다. 죽은 것이 산 것을 낳지 못합니다. 이 우주의 생명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온 것입니다. 무기물이 유기물을 만들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보면 예수님이 장례식을 행하신 적이 없습니다. 죽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반드시 살려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이십니다. 그리스도와 접촉하면 그냥 죽어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라하리."고 했습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에게 어떤 청년이 "선생님은 얼마나 사실 것같습니까?" 하고 물으니, 이상재 선생이 얼른 "그거야 다 사는 법을 몰라 그렇지, 나는 영원히 살거야."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삽니다.
부흥사 무디 선생은 말하기를 "오래지 않아 여러분은 나에 대한 소문을 들을 것입니다. 즉 이 무디가 죽었다 하는 소문을 들을 것입니다. 내가 미리 부탁하는 것은 그런 소문 곧이 듣지 마시오. 나는 영원히 살 것입니다. 내가 이 육신을 벗어 놓을 때는 지금보다 더 분명히, 더 똑똑히, 더 깨끗이, 더 풍족하게, 더 행복하게 영원히 살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요 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생명을 풍부히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 결론으로
오직 예수만이 길입니다. 미혹되지 않습니다(방황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진리입니다. 빛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오직 예수만이 생명입니다. 달라지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
♠ 잘못 탄 버스
어떤 사람이 고향에 가기 위하여 고속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고속터미널이라고 쓰여있는 시내버스를 올라 탔습니다. 이젠 다와 가겠지 하고 옆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고속 터미널이 아직 멀었나요? 아니요. 이 차는 고속 터미널로 가지 않는데요. 거기서 나오는 차입니다.
이 사람은 차를 잘 못 탄 것입니다. 고속 터미널로 가는 차를 탄 것이 아니라 고속 터미널에서 나오는 차를 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 차에서 내리는 것일 것입니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서 길을 건넌 다음에 다시 고속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갈아 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디를 가기 위해서는 길을 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길을 잘 몰라서 결국은 고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 인생의 길
그런데 이러한 길 말고 다른 한 종류의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의 길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무엇이 되고자 하는데로 하나의 길을 찾아 갑니다. 그 길을 잘 찾아 가는 사람도 있고, 또 잘 못 찾아서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참아가며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공부는 못했지만 자기의 소질을 잘 살려서 열심히 사는 훌륭한 사람도 있습니다. 잘 살지는 못하지만 나쁜짓 않하고, 착하게 사는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기의 길을 잘 찾아서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조금 더 잘 살려고 남의 것을 ᄈ앗는 강도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길을 잘못든 사람들인 것입니다. 강도질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이런 사람들은 결국 후회를 하게 됩니다. 후회하면서 하는 말은 다 똑같습니다. 내가 어릴 때 길을 잘못 들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친구를 잘 못 만나고, 잘못된 길로 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도 버스를 잘못 탔을 때 처럼 자기가 가던 길을 버리고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늦었을 지라도 나쁜 길에서 돌아서야만 하는 것입니다. 돌아서서 바른 길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 생명의 길
이 두 개의 길 말고 또 하나의 길이 오늘 읽은 본문 말씀 가운데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느니라. "
이 길은 생명의 길이요..진리의 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길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버스를 잘 못 탄 사람이 다시 버스를 바꾸어 타 듯이. 인생의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야 되듯이 누구든지 천국에 가고자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지 않고는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생의 길은 사람이 죽을 때 까지 가는 길이라면 이 예수의 길은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가 가야할 길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천국에 가고자 한다면, 잠깐 멈추어 서야 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에 예수님이 있는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내 발이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 가고 있는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 길이 예수님의 길이 아니면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옮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38선으로 남과 북이 나뉘었을 때의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북에서 자유를 찾아 남으로 내려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길을 잘 모르기 때문에 꼭 안내하는 사람을 따라 다녀야 했습니다. 안내하는 사람은 말합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 손을 놓지 마시오. 내 손을 놓으면 죽은 거나 다름 없어요. 캄캄한 밤이 되자. 드디어 안내하는 사람을 따라 한 사람이 남으로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내려 오는데 그만 철길을 지나다 자갈을 밟는 소리에 들키고 말았습니다. 공산군은 소리를 듣고 총을 쏘아대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그만 그 사람은 안내원의 손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너무 놀라서 혼자 도망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고 혼자 숨어 있는데, 어디선가 자기를 부르는 조그마한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안내원이었습니다. 안내원은 그 사람에게 혼을 내었습니다. 왜 내 손을 놓고 멋대로 도망갔느냐고 꾸중을 합니다. 그 사람은 안내원을 만나서 살게 되었고 남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분은 바로 예수님 한 분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손을 놓는다면 천국으로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 우리가 커서 무엇이 될지 아직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 한가지만은 우리 마음 속에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디를 가든지 예수님의 손만은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예수님만을 따라 살기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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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4:6
지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국이 오늘날 후진성을 면치 못한 이유는, 그 넓은 땅에 길을 내지 않고, 그 대신에 만리장성 같은 성벽을 쌓아, 오히려 서로 교통할 수 있는 길을 차단시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강원도가 다른 지방에 비하여 다소 낙후가 되었습니다. 이것 역시 높은 산들로 인하여 길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영,호남간의 지역 감정의 골이 깊은 것은 정치적인 이유라기보다, 이것 역시 길 때문이라고 합니다. 삼국시대 이때도 동서간 서로 왕래할 수있는 길이 뚫어지지 않아 오랜 세월 동안 교통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소백산맥이 경상도와 전라도를 막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작 88고속도로 같은 길이 동서로 뚫어졌었더라면 영,호남의 지역 감정은 처음부터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여러분! 이토록 길이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결정적을 중요합니다. 앞 길이 훤히 트이면 성공하고 길이 막히면 실패를 합니다. 만사형통이란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들이 막히지 않고 잘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는 일마다 그 길이 막히지 않고, 답답한 일이 생기지 않고 일이 잘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길이 막히지 않아야 모든 일이 잘됩니다.
지난 70,80년대의 고도의 경제 성장을 하는데 있어서, 경부고속도로가 큰 몫을 담당했다는 것은 ,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입니다.이토록 길은 중요합니다. 최근에, 포항 지역의 매스컴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서, 2,000년대의 포항 개발에 대한 청사진을 보도한바 있습니다. 이 청사진은 그 동안 여러 차례의 심포지움을 통해서 이야기된 것들입니다. 앞으로 냉전 시대는 지나가고 환태평양 시대가 도래하게 되는데, 그때를 대비해서 포항을 환태평양의 중심 도시로 개발한다는 청사진입니다. 즉 포항을 일본과 이북, 중국과 소련을 연결하는 국제도시로 개발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포항에 그만한 것을 건설할 땅이 없기 때문에 포항 앞바다를 메워서 "인공성"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포항이 국제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포항을 중심 해서 반경50km까지 확장 개발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포항을 중심 해서 50km반경이 어디까지냐 하면, 북쪽으로 홍해와 청하을 지나 영덕까지이며, 서북쪽으로는 기계와 죽장을 포함하여 청송까지 이며, 서쪽으로는 안강과 염천까지이며, 서남쪽으로는 경주까지, 그리고 남쪽으로 구룡포와 양포를 지나 김포까지입니다. 저는 이같은 거대한 포항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보면서 이와 같은 포항의 개발과 함께 포항을 중심 해서 뻗어 나가게 될 길에 대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포항이 이토록 확장 개발 되려면 먼저 넓은 길이 뚫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1. 부채꼴 모습으로 육지로 뻗어 나가는 육로입니다. 이 길은, 영덕 울진을 지나서 저 이북 원산까지 연결되는 동해안 관광 도로에 대한 환상입니다. 또 하나 길은 청송,안동,원주를 지나 서울과 평양으로 가는 통일로입니다. 또 하나의 길은 서쪽으로 안강,영천,경산,대구를 통과해서 전라도 광주로 가는 동서 화합의 길입니다. 그 다음의 길은 경주, 부산, 마산, 순천, 여수로 가는 남해 고속도로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구룡포, 양포, 함포를 지나 울산, 부산으로 이어지는 동해안 산업 고속도로입니다. 이 길들을 환상으로 본 것입니다. 그 다음에 본 길은 해로와 항공로입니다. 포항국제신항에서 일본과 소련, 이북과 중국의 항구도시로 연결되는 수많은 뱃길들과, 포항 국제공항에서 출발해서 지구촌 어디에나 날아가는 거미줄 같은 항공로에 대한 환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같은 포항을 중심 해서 육지로, 바다로, 하늘로 뻗어지는 수많은 길들에 대한 환상은 바로 거대한 국제도시로서 포항에 대한 환상이기도 합니다. 이 환상은 고도로 발전된 산업, 과학, 기술의 도시로서 포항! 모든
분야의 전문 고급 인력이 집중되고, 모든 정보와 경제가 집중되는 거대한 국제도시로서 포항에 대한 환상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너무나 황당한 꿈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같은 거대한 포항에 대한 꿈은 우리 포항 시민이면 누구나 한번쯤 가질 수 있는 꿈이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포항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우리 포항이 참으로 이같은 거대한 국제도시가 되기를 원합니다. 포항에 대한 이 찬란한 꿈이 빨리 실현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포항이 고도의 산업, 과학기술의 도시, 테크노 폴리스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발전하여 참으로 살기 좋은 포항, 풍성한 포항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길만이 우리 포항이 잘사는 길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난 기독교회의 한 목사로서 포항에 대한 또 다른 제3의 환상!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이 꿈은 세속 도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하나님께서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도성으로서 포항에 대한 꿈입니다. 포항에 대한 새로운 꿈!
저는 앞으로 계속해서 이 꿈에 대한 이야기를 포항 시민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 교회가 포항 시민 도성의 날을 정하고 내건 표어가 "포항을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 포항이 거대한 국제도시가 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모든 산업의 중심 도시가 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경제적으로 불황이 없는 도시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잘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 우리가 결코 잘 살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경제발전만이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포항이 진실로 잘 살수 있는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포항이 하나님의 도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성이란 하나님이 지배하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도성이란 의미입니다.
이 도성이 하나님의 도성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포항 시민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함 하나님의 도성으로 가는 길,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길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사람이 가는 길에는 크게 두 종류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교통 수단으로서의 길이고 또 다른 길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며 걸어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이 길을 한문으로는 "길도"라고 합니다. 이 도는 사람이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이며, 사람이 사람으로서 걸어가야 할 길을 말합니다. 사람이 다른 짐승과 다른 것은 하는 짓과 걷는 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는 짓과 걷는 길이 도리에 어긋나고 바르게 걷지 못할 때, 그 사람을 가리켜 짐승만도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답게 사는 길! 참으로 사는 길! 생명의 길! 이 길은 있으며 만약에 있다면 이 길은 우리가 어떻게 가야 하는 것인가? 우리 함께 풀어야 할 질문입니다. 예로부터 인생을 나그네라 했습니다. 나그네란 누구입니까? 고향을 떠난 사람이 어딘가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을 나그네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 나그네로 와서 길을 가는 자들입니다. 사람답게 살다가 이 길을 가야 하겠는데, 이 길을 어떻게 가야 하나? 이 길을 가는 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명의 길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첫째로 목적지를 정해야 합니다. 여행길을 떠나는 자가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무작정 길을 떠난다면, 그 사람은 정신나간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고 한 평생을 방황하며 살다가 세상을 끝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흙으로 사람을 만들어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으므로 평생 살다가 결국 호흡이 끊어지면, 하나님로 돌아가도록 사람을 지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우리 인간들이 이 세상에 나그네로 왔다가 가야 할 본향은 하나님이 계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이 가야 할 목적지를 분명히 정하고, 그 길을 잘 가야야 합니다. 교도소에 갇혀 있는 죄수들과 상담을 해보면, 한결같이 하는 말이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걷고 있는 길은 어떤 길입니까? 지금 여러분들이 정하고 가는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둘째로 나그네의 길을 가는 우리에게 안내자가 필요합니다.
해외 여행을 해보신 분들은 잘 아시는 일입니다만, 여행을 잘하려면 좋은 안내자를 만나야 합니다. 도무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로 길을 떠나는 자에게는 안내자가 꼭 필요합니다. 안내자는 여행자를 실족하지 않도록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길을 잘 인도하고, 또한 길을 동행해 줍니다. "어떤 날 하얀 백사장을 두 사람이 나란히 걷고 있었습니다. 한 분은 예수님이 였고, 또한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 이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길을 걷던 그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무한한 기쁨을 가지고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얼마후 예수님과 그 사람은 높은 산 언덕 위에 올라가 두 사람이 걸었던 발자취를 내려다보게 되었습니다. 하얀 백사장에 두 사람의 발자국이 그림자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시밭길, 비탈길, 같은 길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을 바라본 그 사람은 예수님께 불평스런 어투로 말했습니다. "주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평탄한 길에선 주님께서 내 곁에서 같이 걸으셨는데, 험한 길에선 어디로 가시고 저만 홀로 길을 걷게 했습니까?" 그때 예수님은 "자세히 보아라, 험한 길에 남아 있는 한 사람의 발자국은 너의 발자국이 아니라, 나의 발자국이니라. 그것은 위태로운 길에선 나는 너를 부둥켜안고 걸었기 때문에 나의 발자국만 남아 있었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곁에 누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의 안내를 누구에게 맡기고 나그네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내가 사업이 잘되고 승진하고, 건강하고, 형편이 좋을 때는 나와 함께 술을 기우리고 음식을 함께 할 친구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내가 사업에 실패하고 병들고,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내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끝까지 내 옆에 있어 줄 친구는 별로 없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의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입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으로 잔잔한 물가로 인도해 주십니다. 비록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해 주십니다"라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안내자이십니다. 예수님은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동행해 주실 진실한 안내자입니다. 여러분, 누구에게 안내를 부탁하시렵니까?
셋째로 보호자가 필요합니다. 여행 길에는 항상 예기치 않는 일들이 발생합니다. 특히 해외 여행은 더욱 그러합니다. 해외에서 긴급 사태나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대사관이나 영사관을 찾습니다. 그것은 도움이나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그네로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여행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험이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우리를 위험해서 지켜 주고 보호해 줄 보호자가 절대로 필요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보호자를 하나님이라 가르쳐 줍니다. 시편46편 1절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시며,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시인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 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아멘
여러분들의 나그네 길! 위험하기 그지없는 나그네 길을 보호해 줄 분을 누구를 택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하겠다"(요14:1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시지 않으시고, 어떤 경우에도 우리와 함께 있어서 보호해 주시는 영원한 보호자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영원한 안내자이시며, 우리의 보호자이신 우리 주님은 위대한 선언을 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초청을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오늘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생명의 길로!
출처 : 행 복 충 전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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