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치유

[스크랩] 내 안의 상수리 나무 - 정태기 한신대 교수님

어노인팅 2007. 1. 2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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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6 : 2004년 겨울호 / 제32호



 

가 한 때 살았던 집은 담도, 울타리도 없는 학교 사택이었습니다.

그곳은 아름드리 상수리 나무로 둘러 싸여 있었고 이 상수리 나무에서 가을이면 몇 자루에

나눠 담을 만큼 많은 열매들이 떨어지곤 합니다. 저는 가끔 그 큰 상수리 나무들을 바라보

며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저렇게 커다란 나무가 이 조금마한 상수리 열매에서 비롯되었다니…참 생

명의 신비를 느끼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상수리나무가 여린 싹을 파들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 무심

코 그 싹을 밟아버렸다면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나’라는 상수리 나무가 주(主)안에서 잘 자라나는 것입니다.

나무에 착 붙어 있어 한 가마니고, 두 가마니이고 잘 익은 열매를 땅위로 쏟아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싹을 틔우지도 못하는 나무가 있습니다. 싹을 틔웠다가 금세 말라버리는,

혹은 다 자랐는데도 결실이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 안에 있는 상수리 나무는 크지 못하는 것일까요?

영성수련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기도하고 싶으나 ‘아버지’라는 말만해도 입이 막히니 교회 다니는 것조차 고통스러웠습니다.
더욱이 오랫동안 열등감과 좌절감에 시달려 왔고 자살까지 생각하던 터였습니다.
그는 외가의 도움으로 좋은 직장을 몇 군데나 들어갔지만 한달을 못 채우고 나오곤 했습니다.
직장 상사의 가벼운 꾸중에도 격한 분노를 터트리는 그를 용납해줄 직장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깊은 원한이 뿌리박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유난히 좋지 않은 성적을

받아 온 그에게 아버지는 식구들의 밥상머리에서 베개를 들고 서 있게 했습니다. 배가 고픈 것도 힘

든 일이었지만 동생들 앞에서 형으로의 큰 수치를 느낀 그 일이 그의 자아상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

었음은 물론입니다. 그 후로도 성적표를 받아 오는 날이면 매번 똑같은 일을 겪어야 했던 그로서는

점점 아버지가 두려워졌습니다. 아버지 앞에만 서면 숨이 막혀오고 점차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주

눅이 들어갔습니다. 무슨 일을 시작하려면 ‘너 같은 놈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하는 소리가 들려 왔

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엄한 직장상사가 아버지 모습으로 비춰지기 시작하면서 윗사람을 병적으로

무서워하고 적대시합니다.

영성수련 과정에서 그는 어린시절로 되돌려졌습니다. 가족의 식탁에서 격리된 채로 서 있던 유년의

자리로 가, 아버지의 표정, 식구들의 표정을 일일이 느껴보라고 하였습니다. 고통을 요구하는 작업

이었으나 치유를 위해서는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기도 했습니다. 이젠 그가 아버지와 대화를 시도했

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뜬 아버지였지만 상상 속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저도 잘하고 싶었는데…왜…” 원망섞인 울음을 울고 우는 그에게 그동안 맺힌 것을 토설하

게 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눈을 감고 예수님을 그의 상상의 방에 초대하라고 했습니다.

방으로 들어오신 예수님이 무엇을 하고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들어보라 했습니다.

한참이 지난 뒤 그가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방에 들어온 예수님이 그가 들고 있던 베개를 내려 놓으

며 가슴 깊이 그를 안아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이 아팠니?”위로하시며 아버지를 향

해 조용히 타이르셨답니다.

“어떻게 아이의 마음에 이같은 응어리를 심어 줄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순간 그는 오랜 세월 가슴을 막고 있던 어떤 응어리가 풀려지면서 온전한 평화를 맛보았다합니

다. 이 만남 후 그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그토록 두려워하며 한번도 하지

못했던 수요 예배의 대표기도를 자청하고 나선 일입니다.

땅에 묻힌 바위는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흙 속에 묻혀 있는 한 씨앗이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어린시절 어른들을 도와 산을

일구어 밭을 만드는 일을 할 적이면, 제일 먼저 한 일은 땅 속에 박혀있는 돌들을 골라내는 일이었습

니다. 골라내고 골라내고 또 골라내고, 그래서 돌짝 밭을 옥토로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마음 밭도 같습니다. 어린시절 받았던 상처가 깊은 상흔의 바위로 남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의식 속에 이런 바위가 차지하고 있으면 결실을 맺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닌 정서적 문제의 많은 부분은 과거에 기인한 방어반응으로, 지나치게 남을 공격하는 여성

은 자신을 학대하며 구속하였던 아버지와의 다툼에서 시작되었을 수 있습니다. 혹은 늘 우울함을 느

끼는 어떤 사람은 매일 일어나는 부모의 싸움을 보면서 느꼈던 슬픔이 지금도 지속되는 것일지도 모

릅니다. 혹은 겨울이란 계절을 유독 싫어하는 어떤 이는 추운겨울 발가벗기운 채 동네를 돌았던 수

치스러웠던 감정의 덫을 다시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어린 시절의 고통스런 경험들은

상처입은 내적아이를 가슴에 품은 채로 겉만 성장한 성인아이인 사람들의 삶을 따라 다니며 두려움

과 분노, 부적절함, 고독, 절망과 같은 감정들에 사로잡혀 살게 합니다.

그렇기에 성인아이의 치유에는 오늘의 나를 만들고 나의 삶을 힘들게 하는 바위를 찾아내고, 부수

고, 골라내는 일이 우선적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왜 그렇게 힘든지 전혀 자각하

지 못한 채 살고 있습니다. 어두운 그림자의 근원을 모르는 사람들이 자주 쓰는 용어가 팔자나 운명

입니다. 그러나 팔자와 운명을 만드는 것이 바로 내가 삶을 이끌어나가는 방식입니다. 거미가 자신

의 입에서 나오는 거미줄에 얽혀 자신의 삶을 지탱하듯이 우리 또한 내가 이끌어가는 삶의 항로에

따라 삶을 이끌어갑니다.

 

그러기에 내 삶의 항로를 아는 것, 내가 원치않는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부정적인 삶의 양상을 발견

하는 것이 치유의 가장 중요한 걸음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정서적 반응에 대해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어떤 사건에 대해, 혹은

어떤 감정에 대해 왜 그런 식으로 느끼는가를 아는 것은 사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역전을 의미합니

다.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자신을 계속 숨기면 숨기려 할수록 누르면 누를수록 자신의 존재를 표출하

려 하기에 이 내면아이의 인정받지 못한 슬픔을 끌어안고 동참해야 합니다. 또한 자신이 지금 느끼

고 있는 감정의 대부분이 어려운 상황에 임하는 어린시절의 반응에서 유발되었다는 것을 거듭 상기

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는 어릴 적에는 할 수 없었던 반응들을 성숙하게 다룰 수 있도록 노력해

야 합니다.

그러나 과거가 주는 영향을 알게 되면서 시작되는 성인아이의 치유 작업은 참으로 어떤 이들에게 있

어서는 평생에 걸친 작업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어떤 습관들은 매우 깊숙이 자리잡고 있고, 성인아

이가 된 것이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듯이 치유 또한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질 것이 아니

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매년 밭고랑을 갈아 엎는 땀을 흘리듯 우리도 깊이 묻힌 바위를 찾아내고 들어내고, 또한 자

잘한 돌들을 골라내는 수고를 간단없이 할 때, 내 안의 상수리 나무는 뿌리를 깊이 내릴 좋은 땅을

만나겠지요.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나, 그러나 이 일은 막막하기만 한 외로운 작업만은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

는 그 누군가와 함께 하는, 무엇보다 우리의 하늘 아바와 함께 하는 날로날로 새로운 일이기도 합니

다.

어찌보면 우리 모두는 ‘커져버린 작은 어린아이들’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내면에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필요로 하는 작은 아이’가 있습니다. 이 어린 아이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분이 자신을

내어주며 우리의 아직 끝나지 않은 치유여행에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삶 가운데 여

전히 고통스러워하는 모든 부분을 만지시고 고치시며 회복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소식이 올 한해도 별 수확 없는 상수리나무와 같아 마음이 아련한 우리 인생들이, 내일을 기약하

며 걸어볼 위로이자 희망이지 않을까 합니다.

 

출처 : 천국은 확실히 있다
글쓴이 : Heave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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