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전쟁

[스크랩] 영적전이

어노인팅 2011. 11. 5. 10:42
'전이'라는 것은 글자 그대로 옮겨진다, 어떤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어떤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진다는 뜻입니다.

십 여년 전의 일입니다. 어떤 30대의 여자 분을 상담하게 되었는데, 당시 이 분은 남편에게 구타를 당해 뇌혈관이 터졌고, 이혼을 당한 상태였습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문제의 시작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 여자분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었는데, 어느날 여호와의 증인이 자기 집으로 전도를 왔고, 별 생각 없이 전도 나온 남자를 집에 들여놓았다고 합니다.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성경을 펴놓고 그 남자가 이단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하는데 그 남자의 눈과 자신의 눈이 딱 마주쳤고, 그 순간 뭔가 영적인 변화가 자기 속에서 일어났음을 느꼈다고 합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접촉을 통해 이 남자 안에 있던 이단의 악한 영이 예수 믿는 이 여자 속으로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 후, 이 여자 분은 정신없이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일이 많아지게 되었고, 어느 날에는 정신없이 돌아다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점치는데 와서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여자의 삶이 허물어지기 시작하고, 어둠의 영에 눌려 교회도 팽개치고, 가정도 등한히 하게 되었고, 그래서 남편에게 구타를 당하고, 이혼까지 당하게 된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자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 아내가 함께 가서 이 여자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 때는 예수 믿는 사람의 권세, 즉, 질병과 어둠의 영들을 향해 직접 명하는 권세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기도만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약2시간정도 방언으로 기도한 후에,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사용하셔서 여자의 뇌의 혈관들을 거의 치료하셨습니다.

얼마 전에 TV에서 JMS(애천교회, 낙성대교회 등의 이름으로 주로 대학가에서 활동하는 기독교 계통의 이단)에 대해 보도한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그 프로그램의 장면 중 제일 인상깊고 웃겼던 것은 축구경기를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교주 정명석이 공을 몰고 들어가면 주위 사람들이 다 피하고, 스코어는 19:0, 20:0이 되고, 정명석 혼자 공을 몰고 다니면서 그것을 경기라고 하던 모습 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JMS의 회원중 대다수가 대학생들과 소위 엘리트라고 불려지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도 안되는, 우습기 조차한,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단에게 지성인들이 왜 그렇게 심취하는지... 여기에는 단순히 사람의 이성과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영적인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JMS에 빠지면 꿈, 감동 등을 통해 정명석이 메시야라는 계시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성과 논리를 초월하는 영적인 체험을 하고 나면, 상식이하의 행동을 해도 그런 것까지도 의심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의 교리인 '원리강론'의 실제적인 집필자인 박보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문선명은 사실 공부를 많이 하거나, 머리가 좋은 사람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학식이 있는 박보희가 왜 그렇게 문선명에게 심취해서, 그의 오른팔 역할을 하게 되었을까요? 박보희가 문선명을 처음 만났을 당시 문선명이 메시야라는 내용의 꿈을 자주 꾸었다고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박보희는 문선명을 참 아버지로 믿게 되었고, 통일교의 교리까지도 만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모든 관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만, 특히 논리로 설명되지 않고 감정으로도 잘 설명되지 않는 영적 영향력이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가는 것을 '영적 전이(Spiritual Transfer)'라고 합니다.

어둠의 영들이 역사하고 있는 영역에서 영적 전이에 사로잡히게 되면 논리가 전혀 맞지 않는 것조차도 그대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통일교, 여호와의 증인, JMS 등과 같은 이단의 가르침들이 상식으로 전혀 맞지 않는데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을 영적 전이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런 영적 전이가 일어나게 되는 데는 몇가지 통로가 있으며, 이러한 통로를 거치지 않고는 영적전이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영적전이가 이루어지는 첫 번째 통로는 '감정' 입니다.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볼 때 어떤 사람에 대해 그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맞지 않고, 문제가 있으며, 도덕적으로 부도덕한 사람이라는 분명한 판단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단 그 사람에 대해 감정적으로 열리게 되고, 호감을 느낀다든지, 우정을 갖게 되거나, 연인 사이로 사랑에 빠지게 되면 그 사람의 도덕성, 행동, 가치 등을 다 받아들이게 됩니다. 일단 감정이 개입되면 영적 전이가 쉽게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3절은 "속지말라. 악한 동무는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동무란 무엇입니까? 친구입니다. 친구사이에 존재하는 좋은 감정을 우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우정이라는 감정이 통로가 되어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정이 존재하지 않으면 악한 영향력에 영향받을 이유가 없는데, 우정이라는 감정이 통로가 되기 시작하여 객관적 판단을 잃게 되고, 상대가 가진 어떤 도덕, 가치, 신앙이든 받아들이게 됩니다. 즉, 영적 전이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이 있습니다. 같은 종류, 같은 유형의 사람끼리 만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와 비슷한 성향을 지닌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모든 인간관계의 보편적인 원리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 사람들은 '저 사람은 나와 마음이 통한다' 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에 주의해야 할 영적인 원리가 한가지 있습니다. 영적 침체에 빠졌을 때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적 침체에 빠졌을 때 만나는 사람은 거의 같은 성향의 침체된, 부정적이고, 어두운 사람이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서로 마음이 통한다고 느끼게 되고, 둘 사이에는 우정이라는 감정이 자라게 됩니다. 다행히 본인이 침체로부터 벗어나더라도, 친구로부터 영적인 전이는 계속될 것입니다. 그 사람과 친구로서의 우정이란 감정이 남아 있기에 친구의 어둡고, 부정적이고, 침체된 성향이 회복된 자신에게까지 계속 전이되어 다시 침체로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크리스챤에게 있어 친구를 잘 사귀는 것은 너무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우정과 신앙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우정은 사람과의 관계이기 때문에 우정이 신앙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정이 통로가 되어, 영적인 영역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코 우정과 신앙, 우정과 영적인 가치가 따로 가는 법은 없습니다.

연예계 스타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스타 매니아들을 보면 그들의 생활 가운데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청소년들과 대화해 보면 그들은 "단지 누구누구의 노래가 좋은 것 뿐이예요. 다른 영향은 받지 않아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누군가의 노래를 좋아하면, 그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되고, 호감을 느끼면 그 사람과 관련된 기사들을 읽고 모으게 되고, 그의 브로마이드을 방에 붙이고, 팬 클럽에도 가입하게 되고 하면서, 결코 노래만으로 그치지 않고, 그의 삶의 철학, 가치관 등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감정을 통해 영적 전이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우정을 기초로 한 친구관계 뿐 아니라, 이성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처음에는 상대가 크리스챤이 아니고,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단지 상대의 외모 또는 이성적 매력에 끌려 교제를 시작하게 되고, 일단 그 사람에 대해 좋아하는 감정을 갖게 되면 이 감정이 통로가 되어, 그 사람의 가치관, 영적인 부분까지 영향을 받게 됩니다. 감정을 통해 영적 전이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1장 1,2 절은 영적전이가 이루어지고 있는 한 예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국민에게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와 서로 통하지 말며 저희도 너희와 서로 통하게 말라. 저희가 정녕코 너희의 마음을 돌이켜 저희의 신들을 좇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저희를 연애하였더라."

솔로몬이 이방여인들을 사랑하였고, 그 결과 사랑이라는 감정이 통로가 되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십시오.
"왕은 후비가 칠백 인이요, 빈장이 삼백 인이라.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왕상11:3)."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사람, 그 지혜로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던 위대한 왕이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방여인들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 통로가 되어, 우상숭배의 영이 솔로몬에게 전이되는 영적전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결코 사랑의 감정과 신앙이 별개로 가는 법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건한 사람과 교제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신앙도 함께 자라갈 수 있습니다. 반면, 영적으로 죽어있거나 불경건한 사람과 교제하면서, 성령충만하고, 영적으로 자라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영적전이는 어떤 경우든지 계속해서 이루어집니다.
이런 이유로 크리스챤은 친구나 이성을 사귀는 문제에 있어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지금 영적인 부분에서 자라야하거나, 또는 복음을 들어야 하는 경우라면, 그를 배척하고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일단 감정에 빠지면, 비 신앙적인 가치, 윤리 등이 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복음을 전한다거나, 영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실제적으로 어렵게 됩니다. 단순히 복음을 전하고, 지도하는 것과 감정에 빠지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단순히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기 위한 만남이라면 영적인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일단 감정에 빠지면 영향을 주기보다는 감정이 통로가 되어 부정적인 영향을 받기가 쉽습니다.

영적전이의 두 번째 중요한 요소는 '누가 관계의 주도권을 갖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내가 주도권을 갖고 끌고 가는가, 상대에게 끌려가는가에 따라 상황이 전혀 달라집니다.

요한이서 7절에는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미혹하는 자는 한마디로 이단 또는 이단적인 가르침을 주는 사람을 말하며, 그들은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이단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요한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9,10절)."

요한은 그런 사람들을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을까요? 이 말씀이 이단에 속한 사람은 구원받지 못할 사람이니까 배척하라는 뜻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마땅히 기회가 되는대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올바른 성경의 가르침으로 그들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인사조차도 하지 말라고 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주도권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이단에 빠진 사람에게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바른 신앙과 복음을 전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집에 이단에 속한 사람이 찾아와서 이단의 가르침을 이야기한다면, 이때는 그가 주도권을 가진 상태이기 쉽습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이 주도권을 가지고 이야기할 때 자기에게 이단에 속한 악한 영의 영적 전이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주도권을 갖느냐가 중요한 이유는 주도권을 가진 사람이 상대에게 영적으로 전이시킬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3장 25절-29절에 영적전이에 있어 주도권을 갖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예가 나와 있습니다.
"사십 일 동안에 땅을 탐지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회보하고 그 땅 실과를 보이고,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가에 거하더이다."

열 두 명의 사람이 가나안을 정탐하기 위해 보내졌고, 그들 중 열 사람이 먼저 주도권을 잡고 그 땅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말하고 있습니다. 땅은 좋은 땅이지만 그 땅의 사람들은 장대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땅을 얻는 것이 어렵겠다는 것입니다. 열명의 사람들이 먼저 주도권을 잡고 말하자마자, 영적으로 어둡고 부정적인 영향력이 사람들에게 미치기 시작합니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30절)"
사람들은 이미 부정적인 말에 영향을 받아 요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믿음의 사람 갈렙이 그들을 안돈시키며 믿음으로 바라보는 그의 긍정적인 견해를 말합니다. 그러나 먼저 주도권을 갖고 부정적으로 말하던 열명의 정탐군은 가나안 땅에 대해 악평하기를 계속합니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31-33절)."
믿음의 사람 갈렙이 저지하려 했으나, 먼저 주도권을 쥐고 말한 열명의 정탐군의 영향을 받아서 사람들은 부정적인 말을 쏟아 놓고 있습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민14:1-3)."

사람들과의 관계와 대화, 교제에 있어서 누가 주도권을 갖는가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과 신앙인인 내가 만났을 때, 내가 주도권을 가지면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신앙이 없는 상대가 주도권을 쥐면 그 사람의 불신앙과 부정적인 것에 영향받을 수 있습니다.

크리스챤이 불신앙인과 결혼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안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믿는 여자와 안믿는 남자가 결혼한 경우와 믿는 남자가 안믿는 여자와 결혼 한 두 경우를 비교해 본다면, 상황은 믿는 여자가 안믿는 남자와 결혼한 경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남녀관계에 있어서 주도권은 남자가 쥐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믿는 아내를 통해 남편이 신앙인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거나 매우 드물고, 오히려 믿는 여자가 신앙을 잃게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신앙인인 내가 주도권을 쥐지 않는 불신앙인과의 관계 가운데 있다면, 이것은 매우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난 주 지방에 강의가 있었습니다. 3시간 반이나 되는 시간을 그것도 초행길을 운전해서 갔기 때문에 저는 매우 피곤해 있었습니다. 집회 전에 저에게 식사대접을 하는 책임을 맡은전도사님 한 분과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현재 서울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데, 고향교회에서 연합집회를 하기에 고향에 내려와서 행사를 돕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식당을 가기 위해 예배당을 나서는 순간부터 그는 저에게 그 교회는 강대상이 너무 크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교회에 대한 험담과 그 지역은 너무 연합이 안된다는 등 계속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쏟아 놓았습니다. 저는 너무 피곤해서 눈도 못뜨고 있는데 말입니다. 식사 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목사님들에 대해, 연합이 안되는 이유에 대해, 그 지역은 이단이 많다는 이야기 등 험담을 쏟아놓고 있었습니다.
안되겠다 싶어서 "전도사님, 그럼 이 지역에는 좋은 점은 하나도 없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쯤하면 알아들어야 되는데 이분은 잠시 생각하더니 "아, 있지요. 이쪽 지역은 성도들은 목사님을 참 잘 섬겨요."라고 대답하더니, 다시 부정적인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분한테 영향을 받아서 안되겠다 싶어서 저는 속으로 제가 부정적인 영향력을 받지 않도록 기도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목사였고, 강의를 하러 온 강사였고, 그분이 전도사였기에, 즉 제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다행이지 만일 상황이 반대였다면 저는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누가 주도권을 쥐고 있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단이 집에 방문해 왔을 때는 그쪽이 주도권을 쥐고 있습니다.
또한, 믿는 자매가 안믿는 남자와 교제를 하고 있다면 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영향을 받기 쉽습니다. 몇 달, 몇 년을 이런 교제를 하다보면, 그렇게나 헌신적이고 열정적이던 자매의 신앙은 간데 없고, 영적으로 거의 바닥에 이르게 됩니다.

스펄젼 목사님에게 한 자매가 자신이 교제하는 남자에 대해 상담하고 있었습니다. 자매는 자신이 교제하는 남자가 성격도 좋고, 경제적인 능력도 있고, 위트와 재치가 있으며, 책임감과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등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이라고 말하고는, 맨 끝에 가서 딱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신앙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자매를 테이블 위로 올라가게 하고 테이블 위에서 목사님의 손을 잡아 끌어 올려 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힘을 써도 불가능했습니다. 그 후, 목사님은 자매의 손을 확 잡아서 순식간에 자매를 바닥으로 끌어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지금 자매가 하려는 결혼이 이런 것이다"라고 말해 주었다고 합니다. 끌어올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끌어내리기는 너무 쉽습니다. 남녀 관계에 있어 남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관계를 끌어가기 때문에 믿지 않는 남자와 교제하는 믿는 자매의 어려움이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전이의 관계에서 누가 주도권을 갖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면 조심해야 합니다.

영적전이의 통로중 가장 확실한 통로가 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확실한 일치와 전이를 갖게 하는 통로입니다. 이 통로는 바로 성관계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5절에서 18절까지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창조원리에 의하면 두 사람이 합법적인 부부이든 아니던 성관계를 통해 두 사람 사이에는 영적인 일치와 전이가 일어나도록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혼에 대해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창2:24)이며, 그 관계는 사람이 나눌 수 없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성적인 관계를 갖게 될 때 그들 사이에는 사람이 나눌 수 없는 깊은 영적인 일치와 전이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치와 전이는 부부관계가 아닌 성관계에서도 이루어집니다. 창녀와의 관계든, 결혼 한 남편이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갖는 성관계이든 간에 이러한 현상이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아내와도 영적으로 한 몸을 이루며, 동시에 다른 여자와도 한 몸을 이루는 것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그런 사람은 심한 영적 결박과 혼돈스러운 일치와 전이가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잘못된 성관계를 갖게 되면, 자기의 의지만으로 이런 관계를 쉽게 청산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데, 그 이유는 성관계라는 것이 단순한 육체의 하나됨이 아닌 영적인 결박과 전이가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Freedom in Christ Ministry의 닐 앤더슨(Neil Anderson)이 이미 수백명과 성관계를 가진 프리섹스에 중독된 한 여자와 상담을 했습니다. 닐 앤더슨 목사님이 그녀에게 예수그리스도를 소개했고 그녀는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목사님은 그녀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으므로, 그동안 성관계를 가졌던 수백명과의 영적인 관계를 끊어버려야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녀는 기억을 더듬어 처음 관계를 가진 남자부터 최근까지 관계를 맺었던 사람까지 한 사람 한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과 사탄과 천사들 앞에서 이제 그들과 자신은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에 걸쳐 그녀가 기억하는 모든 관계에 대해 선포한 후에, 그녀는 자신이 눈을 감는 순간 수백명의 시커먼 그림자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으며, 믿음으로 첫남자의 이름을 부르며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 관계 없음을 선언했을 때 시커먼 그림자 하나 쓰러지고, 이렇게 계속반복하며 모든 사람에 대해 자유함을 선포했을 때 모든 것이 쓰러지고 진정한 자유함을 맛보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성적인 관계는 매춘부와의 하룻밤으로 끝났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깊은 영적 전이와 결박 이 존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보혈의 권세로 그 결박을 끊지 않으면 10년 전의 하룻밤의 일일지라도 계속적으로 영적인 영향력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내적치유 사역자인 죤 샌드포드(John Sandford)는 이런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한 여인이 한 남자의 아내가 되도록 만드셨는데, 만일 한 여자가 여러 사람과 성관계를 맺으면 그녀는 그녀가 관계를 가진 여러 사람을 그리워하고, 찾게 되고, 그녀의 영은 여러 갈래로 찢겨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한 남자는 한 여자를 복주며, 돌보고, 그녀의 필요를 공급하며, 그리워하도록 창조되었는데, 한 남자가 여러명의 여자와 관계를 갖게 될 때, 그의 몸과 마음과 영이 나뉘며, 여러 여자를 찾게 되고, 혼란 스러운 영적 전이와 결박이 가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대의 풍조가 젊은 시절 적당히 즐기기 위해 하룻밤 자고 헤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풍조가 되어가고 있지만 여기에는 분명히 심각한 영적 일치와 결박, 그리고 전이가 존재합니다.

더 나아가 동성애의 문제는 여타 다른 문제보다 벗어나기가 어려운 문제들 중 하나입니다. 물론 동성애를 죄로 인정하고 진정으로 치유받기 원한다면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많은 경우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동성애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어린 시절 또는 청소년 시절에 주변의 동성으로부터 성적으로 희롱 또는 유린을 당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분명히 자신이 원했던 것도 아니고, 그 상황을 좋아했던 것도 아닌데, 일단 그렇게 성적 유린을 당하면 성인이 되어 자신도 동성애의 파트너를 찾게 됩니다. 그것은 영적 전이가 이루어져서 자신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동성애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게린 그린월드(Gary Greenwald)는 최근 한 여자와 상담하는 가운데 이러한 경우를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삼촌은 10살때 자신의 친형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합니다. 성인이 된 그는 결혼을 했고, 보통 사람들과 같이 이성애의 삶을 살려고 노력했으나 그것이 불가능했습니다. 마침내 그와 아내는 똑같이 동성애의 영에 짓눌렸으며, 그의 아내에게까지 동성애의 영이 전이되어 결국 결혼생활 14년만에 그들은 이혼을 했으며. 아내는 다른 여자에게로, 남편은 다른 남자에게로 갔습니다. 또한 남자는 최근 그의 조카딸을 성희롱했으며, 그의 연인인 남자는 친척의 7살짜리 남자아이를 성희롱했다고 합니다. 동성애의 영이 다음 세대로 가계를 통해 전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영향을 받는 것은 단지 분위기나 태도 등 간헐적으로만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전이가 이루어집니다. 믿지 않는 사람, 불경건한 사람, 부정적인 사람으로부터 받는 영적 전이를 통해 나도 똑같이 그렇게 되어져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기쁨의 해답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와 조상으로부터 혈통적으로 안좋은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의 권세 아래 있고, 또 그 권세를 적절히 사용할 때, 우리는 조상으로부터 유전된 영적전이나 잘못된 성관계로 인한 영적전이로부터 자유할 수 있습니다(벧전 1:18).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는 악한 동무들과의 전이관계를 끊고,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인간관계를 잘 검토 해봅시다. 친구, 이성, 직장상사 등 여러 관계속에서 나의 신앙이, 영적인 것이, 좋은 것으로 상대에게로 흘러가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의 악한 것이 내게로 흘러 들어오는가, 즉 누가 주도권을 갖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만일 내가 상대를 함께 초대해가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으로 끌려 가고 있다면 그 관계를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상대를 외면하고,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주도권을 가진 상태에서 도울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안 좋은 영적 전이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며(딤후2:22), 모이기를 힘쓰고(히10:24), 경건의 훈련을 사모하고, 성경의 가치관 속의 신실한 교제 안에서 자신의 삶을 추구해 가는 것입니다.

<예수촌 교회 손종태 목사>
출처 : 이병천카페 [성령전인치유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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