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스크랩] 응급 사례 1. (남자 교수의 사례) - 가족심리치료사(family therapist) 최성애 박사

어노인팅 2007. 4. 24. 13:54

  교수라는 직책 하나로 사회로부터 존경받고 대우받는 시절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강의에 충실하던지 연구에 몰두하던지 대인관계를 다지는 일에 저녁 시간을 투자하던지, 교수님께서는 사회(집밖) 생활에서 보람을 느끼고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교수란 9시부터 6까지 일하는 "직업"이면서, 그 나머지 시간 내내 붙어 다니는 "계급"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교수님께서 온갖 평가에 시달리고 개혁의 대상으로 몰리고, "교수노조"라는 것까지 등장하여 교수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교수"에는 앞으로 "직업"만이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이제 "교수"라는 직책 이외에서 인생의 뜻과 가치와 만족을 느껴야 할 시대가 왔습니다.

 

  특히 가족(집안) 생활을 외면할 수 없겠습니다.  앞으로 "가족심리치료사(family therapist)" 인 최성애 박사가 교수님들의 자기 관리 중 가족과 인간 관계와 관련된 문제해결에 대해서 사례위주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응급 사례 1. (남자 교수의 사례)

 

 

1.
  P교수는 50회 생일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줄기에 찬바람이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3년 전 그 날 아침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갈 준비를 바쁘게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 9시 강의, 11시 과 회의, 2시부터 대학원생 졸업 논문 심사...등등을 머리 속으로 챙기며 와이셔츠를 갈아입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집이 조용하다는 느낌이 얼핏 들었습니다. 부엌 식탁에는 보통 때처럼 있어야 할 조반이 차려져 있지 않았고, 아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식탁에는 아내의 필적이 적힌 노란 메모지 한 장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제껏 많이 참아 왔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생활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2주 후에 이혼장이 도착할 테니 그 때까지 저한테 연락하지 말기 바랍니다."


'오늘이 만우절도 아닌데?' P교수는 엉뚱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참, 내 생일이지. 난데없이 왜 이런 유치한 짓을 하지?'


  그러고 보니 지난 며칠 동안 아내가 별 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기계적으로, 사무적으로 대해주던 것을 그냥 갱년기 증후겠지~ 하고 무심히 지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날 떠나기로 작정...?' 문득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가슴이 바위로 내리쳐지는 것 같고 맥박이 빨라졌습니다. '설마...아니야...그럴 리가 없어...주제에 감히 나를 버린다고? 내가 뭘 잘못했기에? 난 남들 놀 때도 안 놀고 열심히 연구하고, 인정받고, 보직까지 맡고, 소위 잘 나가는 교수 아닌가?'


  머리 속을 막 휘젓는 생각 속에서도 행여나 하며 이 방, 저 방, 화장실까지도 열어 봅니다. 그러나 아내의 옷장은 빈 채로 말끔히 정돈되어 있고, 신발도 없습니다.


  이 날부터 법적으로 완전히 남남이 되기까지 15개월 동안 P 교수는 "지옥 같은" 날들을 보냈습니다. 부정도 하고, 분노도 하고, 애원도 하고, 다짐도 했지만 다 소용없었습니다. 아내는 이런 결심을 한 지가 10년이 넘었다고 하는데 할말을 잃었습니다. 아이들이 미국 가서 자리잡을 때까지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이제서야 왜 그렇게 아이들 유학을 졸라댔는지 "감"이 든 자기가 얼마나 집안 분위기를 모르고 지냈는지 아찔하기만 합니다.


"자기만 아는 인간, 자기가 최고인 인간, 아내와 자식을 눈꼽만큼도 배려해 주지 않는 인간!"이라는 차가운 말들을 아내의 입에서 듣고서야 그동안 자기가 "자랑거리"로 여겼던 교수로서, 학자로서의 자부심이 가족에게는 "상처뿐인 허울"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남들 이목이나 집안 친척들한테 체면을 잃는 것쯤은 이제 초연해졌습니다. 학교에서 승진 심사용 연구 논문 쓰기나 업적 올리기도 무의미하게 여겨졌습니다. 미국에서 학교 다니는 아이들한테 전화하는 것도 이제는 부담되고 같은 말 반복하기도 귀찮아졌습니다. 사는 게 재미없고 아무 목표도 방향도 없는 것 같습니다.

 

 

2.

  P교수가 상담치료자를 찾은 때는 법적으로 이혼이 완결된 후였습니다. 처음에는 불면증, 잦은 두통, 소화기능 장애, 무기력증 등으로 병원에 갔으나 의사마다 신경성이라고 진단을 내리자 오랜 망설임 끝에 결국 심리치료를 받기로 한 것입니다.


  P교수가 처음 가족치료자를 만나러 왔을 때만 해도 P교수의 마음은 억울함과 비통함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첫 상담 내내 전처의 잘못과 성격적 결함을 늘어놓았습니다. 마치 모든 잘못이 전처에게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자신의 "무죄"를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치료자는 몇 가지 초기 진단 후에 P 교수의 인식, 판단, 심적 자원 상태 등이 그렇게 절망적이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치료 방향을 정하기로 하였습니다.


  당시 P교수의 심적 상태는 "내부의 적"(전처, 처가 가족, 변호사 등)과 투쟁 중이었습니다. 아드레날린이 지속적으로 분비되고, 근육은 긴장되었으며, 식욕감퇴와 수면장애 등 모두 전투태세의 심신 상태였던 것입니다. 이런 상태가 두 해 가까이 되는 동안 상당한 에너지가 "적"에 대한 (내적) 공격에 소모되느라 우울증, 불면증, 집중력 감퇴 등의 증상이 나온 것입니다. 더 지속되었다면 고혈압, 당뇨, 간 기능 저하, 암 등과 같이 심각한 신체적 병으로까지 발전될 가능성이 아주 높았습니다. 하지만 P 교수는 자기 회복을 하고자 하는 동기가 강했습니다. 우선 혼란스러운 마음을 정돈하고 싶어했고, 신체적 고통에서도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어했습니다. 따라서 치료의 방향을 심신 에너지를 긍정적인 자기치유 쪽으로 모으는 데 역점 두었습니다. 그 첫 관문이 "자기는 피해자일 뿐"이라는 방어 기제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쉽지는 않았지만 치료 과정에서 그는 자기가 그 동안 굉장히 자기 중심적이었고, 일과 성취 외에는 가족이나 다른 일에 가치를 두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부인과 자녀의 욕구 표현을 거부하거나 묵살하는 행동 양식은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대하던 태도 그대로 답습하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릴 때 뇌성마비로 부모의 짐이 되던 큰형을 대신하여 혼자 서울로 "유학" 와서 공부하는 것만이 집안을 살리는 길이고 효도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었던 성장과정의 스크립트(인생 대본)가 현재의 가정 생활이 삭막하게 된 원인과 직접 관련되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고등학교부터 대학 마칠 때까지 희노애락의 감정 표현을 할 곳도 없었고, 특히 어려울 때 절대로 부모님한테 알리지 않았던 성장기를 지나면서 목석같은 사람이 되지 않았나 등등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치료 과정에서 슬픔, 외로움, 성공에 대한 열망과 두려움, 지방 출신이라는 데에 대한 열등감 등 묻어 두기만 했던 여러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부인과 자녀들의 표현을 묵살하던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보고 미안함, 연민, 그리움, 슬픔 등 부드러운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P교수는 불행의 책임이 전적으로 남에게 있다는 생각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이혼과 그에 따른 여러 문제에 본인 책임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 되면 P교수는 자기회복의 출발점에 도달한 것입니다. 남의 잘못으로 힘든 일을 당한다고 믿는 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지금 같은 심적 고통은 계속될 것이지만,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인정하면 문제를 풀 사람도 자기라는 것을 수용(accept)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P교수의 사례에서 보듯이 일반적으로 자기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단계까지가 문제 해결의 첫 30%입니다. 과거와의 연결 고리를 찾으면 20% 정도 더 자기 회복에 다가갑니다. 나머지 50%는 무의식적으로 해오던 행동과 인식 패턴을 바꾸어 적응력 높은 인간 관계로 바꾸는 재결정 과정 (Redecision)입니다.


 

3.
  P교수가 이혼이라는 현재 사건과 자신의 성장기에 누적되었던 복합적인 심층 연결 고리들을 발견한 뒤 재결정 과정 치료를 받는데 약 5개월 걸렸습니다. 치료과정에서 P교수는 가정 생활에 가장 큰 걸림돌이 자신의 성장기에 무의식적으로 받아 들였던 "공부=출세"라는 스크립트 (인생 대본)를 중년이 되도록 재조정 없이 너무 오래 지속해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P교수 집안의 특수한 사정과 1960-70년대 학력 제일주의, 그리고 1980-90년대의 고속 대학 팽창 등 사회적 상황이 서로 맞물려 이러한 인생 대본에 약간의 회의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부, 부모, 자녀 등 가족과 인간 관계는 마치 생명체(living organism)처럼 관심, 대화, 애정표현, 양보, 웃음, 따스함, 걱정, 배려...등을 주고받는(give and take) 체제입니다. P 교수처럼 아내와 아이들이 뭐라고 불평을 하든, 반발을 하든 독단적으로 자기방식만 따르라고 억압해 버리면 생명의 흐름이 막혀 버리게 됩니다. 결과는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것이며 아내와 자녀들은 변화에 대한 희망을 점점 잃게 되는 반면 불쾌감과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이 커지게 됩니다. 따라서 대화는 메말라갔고, 자녀들은 멀어졌으며, 아내의 마음엔 소외감과 원망이 가득 차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십여 년 지속되는 동안에도 P교수는 가족에게 생활비와 사회적 지위만 유지해 주는 역할로 자기 임무는 충분하다고 착각한 점이 이혼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몰고 온 것입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스크립트에 대한 선택입니다. 가족을 대할 때 따스함, 정직, 배려, 양방향 대화 등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은 알게 되었지만 아직도 그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되기까지 여러 마음의 "잠금창치"(break, stopper)를 풀어야 했습니다. 마음 속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게 되기까지 게슈탈트 방식, 인지 정서 요법, 현실 요법 등으로 연습을 하여 아내나 아들에게 말을 꺼내려면 얼굴 근육이 경직되고 목이 조여드는 것 같은 행동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의 "잠금 장치"를 푼 뒤에 P교수는 여러 대화 채널을 놓고 고민하다가 초기에는 결국 편지 쓰기를 택했습니다. 아내와 아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글로 전하며 성장기에 대한 얘기도 미화 없이 담담하게 쓰고 현재 느끼는 미안함과 애정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아버지의 변화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겠지요.


  P교수는 자신이 변화해야 된다는 필요성을 절감하기까지 너무 많은 대가를 치렀다고 후회했습니다. 변화를 요구하는 무수한 경고 사인(warning sign)이 있었음에도 공부와 출세 스크립트에 집착하느라 다른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다 끄고 살았던 대가를 인생 중반에 겪으며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까지 도달하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고 합니다.


  P교수의 사례처럼 큰 대가를 치르기 전에 어떤 경고 사인이 있고, 어떤 예방책이 있을까요?


  우선 경고 사인을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가족 사이에 시선을 피하는 것은 가장 분명한 경고 사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자녀들이 부모와 가능한 단 둘이 있는 것을 피하려고 하거나 말할 때 시선을 다른 곳에 두는 것은 냉소, 무관심, 회피, 절망, 싫어함 등의 표시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사춘기 때 어쩌다 한 두 번이 아니라 매번 그럴 때를 뜻합니다.)


  둘째, 대화가 단답형으로 "네", "아니오"로 아주 짧고 억양이 단조롭다는 것도 가능한 '나를 혼자 내버려 달라'라는 무언의 신호입니다. 말해도 소용이 없다는 단절감이지요.


  셋째, 야단 맞지 않을 정도의 의례적인 행동만 할 뿐 표정이 없다는 것도 좋지 않은 사인입니다.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와 구박받고 구석에 쪼그린 개 차이를 상상하시면 됩니다. 인사는 해도 반기는 기색이 없다던가 말없이 무뚝뚝한 행동을 한다던가 하는 속에는 원망, 소외감, 경원 등의 억압된 감정이 누적되어 있을 수 있는데, 문제는 이렇게 행동하는 당사자도 대개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왜 행동이 퉁명스러우냐?!"고 다그쳐 봐야 더 멀어지기만 할 뿐 관계 개선에 도움이 안 됩니다.


  이 밖에도 가출, 파괴적 행동, 자살 시도 등 더 심각한 수준의 경고 사인도 있지만 대개 위에 나열한 아주 보편적인 경고 사인에 비하면 말다툼, 투정, 불평, 애원, (말로 하는) 협박 등은 오히려 아직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건강한 표시로 볼 수 있습니다. (보다 "건강한" 대화 방식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경고 사인을 발견하시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 가지 중의 하나를 선택하셔야 합니다. 지금 무시하고 나중에 큰 대가를 치를 것인가, 아니면 지금 당장 문제가 무엇인지 찾는 노력을 시작하여 예방에 힘쓸 것인가?


  문제를 찾는 지름길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존심, 주도권 대결, 은폐, 억압, 거짓, 변명, 뇌물 공세, 미봉책 등은 결과적으로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할 뿐입니다.

 

"Sweet Surrender" 라는 표현처럼 기꺼이 자발적으로 문제를 인정하고, 자신이 그 문제에 얼마큼 "기여했는가"도 솔직하게 받아들이며, 어떻게 건설적으로 "문제"를 풀지 가족이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너 글렀다" 식으로 "사람"을 공격하면 문제가 돌이킬 수 없게 비약, 확대됩니다. "사람"은 두고 고쳐나갈 수 있는 "문제"에 초점을 두시기 바랍니다.

 

 

출처 : 청소년 고민상담★사주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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