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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1세기 신사도적 개혁운동(1) - 선교 기획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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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7. 10. 22:06
21세기 신사도적 개혁운동(1) - 선교 기획팀 -
현재 세계 도처에서 신사도적 교회(New Aporstolic Church)가 교회부흥을 주도하고 있다. 신사도적 교회는 사도적 리더십과 팀 사역, 평신도 은사활용과 셀 그룹 배가(倍加) 등으로 성장하는 교회이다. 지난 9월 3일부터 6일까지 4일간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는 피터 와그너(Peter Wagner)박사 초청 "21세기 신사도적 교회 부흥세미나"가 열렸다. 이 세미나는 21세기 교회에 새로운 도전과 부흥의 신모델을 제시해 주었다. 피너 와그너 박사의 주제강의 내용을 요약하여 2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1. 신사도적 개혁 운동(New Apostlic Reformation Movement)이란?
신사도적 개혁운동은 20세기말과 21세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이다. 이 역사는 놀랄만한 규모로 세계 도처에 있는 개신교의 형태를 바꾸어 놓고 있다. 지난 500년간 교회들은 전통적인 교단 구조 안에서 주된 기능을 해왔지만,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교회의 교회체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역 교회들관의 관계, 교회 행정, 평신도 지도자 선발과 훈련, 역동적인 예배, 초자연적인 능력과 교회 생활 등 다양한 면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 가운데 일부는 교단 안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대부분은 연합된 조직구조의 사도 네트워크의 형태를 띄고 있다. 그렇다면 신사도적 개혁운동이란 무엇인가?
'사도'(Apostle)는 헬라어 '아포스톨로스'(Apostolos)에서 유래된 말이다. 아포스톨로스는 명사이며, 이 원어에서 파생된 동사는 '보내다'를 뜻하는 '아포스텔로'이다. '보내다'를 뜻하는 또 다른 성경적인 용어로 '펨포'(pempo)가 있는데, 이 두 용어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펨포'는 단순히 보낸다는 사실을 강조한 반면, '아포스텔로'는 특별한 목적이나 구체적인 파송을 행하는 자로부터 '사명을 받고서 보냄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어는 때로 신적인 권의를 부여받고, '파송 받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아포스텔로'를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사도'는 '하나님 나라의 진리와 질서 안에서 사람들을 복음화시켜 제자로 만들기 위해 소명을 받고 파송받는 자'이다.
'신사도적'이라는 의미는 A.D.이후 300년간 교회의 사도적 특성을 새롭게 살린다는 의미이다. 1995년 9월 4일 발간된 「넷 팩스」(Net Fax) 지는 교회 역사의 범주를 세 가지 패러다임으로 구분하였다. 초대교회부터 3세기까지를 '사도적 패러다임'(Apdstolic paradigm)이라 하였으며, 4세기에서 19세기 중엽까지를 '기독교 왕국 패러다임'(Christianity Kingdom Paradigm)이라 불렀고, 20세기에서 21세기초까지를 '신사도적 패러다임'(New Apostolic Paradigm)이라 칭하였다. '새로운'(New)이란 의미는 '옛' 사도운동, 즉 초대교회 이후 300년간 지속된 사도적 패러다임과는 구분된다는 뜻이다.
도널드 밀러는 "기독교가 새 천년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두 번째 개혁을 증거하고 있다" 고 말했다. 여기서 '개혁'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개혁은 16세기 종교 개혁을 의미한다. 이것은 주로 신학적인 변화였다. 그러나 현재의 개혁, 즉 두 번째, 개혁은 신앙의 개혁(faith reformation)이 아니라 실천의 개혁(praxis reformation)이다. 중요한 차이는 16세기 개혁은 부패와 배교적인 교회에 대한 반동으로 발행했다면, 현재의 개혁은 비상관성에 대한 반대이다. 이처럼 신사도적 개혁운동은 단순히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과거 지향적인 회귀운동(past-oriented movement)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정신을 살려 실천해나가는 미래지향적인 비전운동(future-oriented movement)이다.
2. 신사도적 교회의 9가지 특징(The nine characteristics of new apostlic church)
매번 예수님께서는 역사 전반에 걸쳐 새로운 방식으로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셨고, 새로운 부대들을 마련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이 점에 대해 강조하셨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마 9:17) 본문에서 옛 가죽부대는 세례 요한을 지칭한다. 여기서 구약과 신약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세례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대표자를 의미하며, 예수 그리스도는 신약의 첫 대표자로 나타난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을 옛 가죽부대의 상징으로 말씀하셨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부어질 것이다. 이것은 교회사에서 거듭 일어났던 사례이다. 하나님께서는 지난 2천년간 교회에 새로운 역사를 일으킬 때마다 새 부대를 사용하셨다. 그러면 20세기의 새 부대는 무엇인가?
1970년대 초기에는 오순절교회가 새 부대였다. 1980년대에는 카리스마적 표적기사 운동이 새롭게 부각되었으며, 1990년대에 이르러 새로운 부대는 다음의 4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첫 번째는 아프리카 독립교회이다. 이 교회는 기존의 서구선교사가 세운 교회로부터 독립된 교회이다. 새롭게 태어난 아프리카 세대는 새로운 부대가 필요했다. 이렇게 세워진 아프리카 독립교회는 한 세기에 걸쳐 놀라운 교회성장을 이루었으며, 이는 전통교회의 성장속도를 훨씬 능가했다.
두 번째는 중국 가정교회이다. 1975년 문화혁명이후 세워진 가정교회는 지금 중국 전대륙에 걸쳐 세워지고 있으며, 중국 정부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교회성장을 이루었다. 현재 교인 수는 6천만명에서 1억 5천만명정도까지 추산되고 있다.
세 번째는 라틴 아메리카 민중 교회이다. 지난 20년간 라틴 아메리카 대도시 지경에서 시작된 대형 교회들은 주로 외국인 선교사들이나 선교부에서 주도하는 기관과는 무관한 개개인에 의해 목양되는 교회들이다. 이들 목회자들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유학한 자들이 아니며, 외국인 선교사들과는 거의 접촉이 없었던 자들로서 자국 문화권에서 성장한 자들이다. 그들 중 기업가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며 1960년대부터 민중교회 운동의 주역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부대들이 신사도적 운동의 근간이다.
또 미국의 독립적인 은사주의 운동도 마찬가지이다. 이 운동은 대다수 미국 교회로부터 무시당하고 있지만, 이전의 오순절 교회의 성장속도를 능가하고 있다.
이들 네 가지 운동의 공통적인 특징은 다음의 9가지로 요약 할 수 있다. 21세기의 새 부대는 이러한 특징을 가진 사도적 운동에 속해 있다.
첫 번째는 새로운 이름(A New Name)이다.
'신사도적 개혁운동'이라는 이름은 새로운 개념이다. 이 새로운 이름은 일반적 의미와 특수한 의미를 가진다.
그들은 '개혁'이라는 이름을 쓴다. 이말은 5백년전 개신교 종교개혁의 가죽부대보다 더 혁신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종교개혁 이래로 가장 근본적이고도 본질적인 교회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종교 개혁보다 더 위대한 개혁을 경험하고 있다. 이것은 신학적인 개혁이 아니라 신학을 교회에 적용하는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이다.
가장 근본적인 변혁가운데 하나는 사도직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이다. '신 사도적'이라는 말은 사도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의미한다. "사도"라는 말을 붙인 것은 신사도적 교회들이 전도의 중요성과 사도적 사역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New) 이란 단어의 의미는 이전에 사도적(apostolic)이란 단어를 사용했던 교회에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현재 북미에서만도 '사도적'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교회수가 30개를 넘어서고 있지만 그 교회들은 옛 가죽부대에 속한다. 위와 같은 이유로 이 새로운 교회들은 '신 사도적 개혁운동'으로 이름을 정하였다.
특수한 의미에서 신(新) 사도적 교회는 기존의 장로교회, 감리교회와는 달리 다양한 개성적인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교회의 이름을 사용하는데 무한대의 창조성을 지닌다. '수정교회'와 '기쁨의 공동체 교회'(Community Church of Joy)는 미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러한 새로운 교회들 가운데 하나이다. 영국의 '익투스교회', 필리핀의 '따뜻한 몸의 예수교회', 아르헨티나의 '사랑과 평화의 물결'(Waves of Love and Peace), 짐바브웨의 '마귀를 물리치고 천국으로 직행하는 교회'(Dodge the Devil and Go Straight to Heaven Church)등의 예를 들 수 있다.
두 번째는 새로운 권위 구조(New Authority Structure)이다.
새로운 권위 구조는 신 사도적 교회의 9가지 특징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 지난 4백년동안 교회는 교단이라는 구조 속에서 발전해 왔으나 신사도적 교회는 교단운동과는 구별된다. 새로운 권위 구조는 '성령이 각 개인에서 부여하신 영적 권위의 양'(the amount of spiritual authority delegated by the Holy Spirit to individual)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두가지 중요한 단어가 나온다. '권위'(Authority)와 '개인'(individual)이라는 단어이다. 옛 가죽 부대에는 개인보다는 집단에 권위가 있었다. 기존 교회에서 중요한 결정은 집사, 제직회, 당회, 이사회, 각 단체, 회중위원, 교구, 일반 회중 등과 같은 교회내 집단에 의해 이루어졌다. 반면에 신 사도적 교회는 하나님께서 영적 권위를 개인에게 부여하심을 인정한다. 관료적 권위에서 개인적 권위로, 법률적인 구조에서 관계적인 구조로, 지배구조에서 조정구조로 옮기게 된다. 아울러 기존교회의 합리적 지도력보다는 카리스마적 지도력에 의해 운영된다. 이 경우 카리스마는 신학적 혹은 은사적 의미가 아니라 사회학적이고, 일반적 의미에서의 지도력을 말한다(예-빈 라덴).
개교회 차원에서 볼 때 신사도적 교회에서 목회자는 지도자이지 고용자가 아니다. 목회자는 사람들에게 비전을제시하며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준다. 위원회에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 개인에 의해 비전이 제시된다. 의사결정은 위원회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인 목회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신사도적 교회는 담임 목회자를 절대적으로 신임한다. 담임 목회자와 성도간에 강한 신뢰감을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지역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사례이다.
보편적인 교회차원에서 목회자는 사도적인 은사가 사용되는 사람이다. 사도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 중 일부에게 주신 특별한 능력이다. 사도들은 영적인 문제에 대해 특별한 권위를 가진 채 다른 지체들에게 대해 리더십을 행사한다. 그 교회의 성도들은 사도가 가진 특별한 권위를 인식하고 인정한다.
세 번째는 새로운 지도자 훈련(New Leadership Training)이다.
교회는 지도자를 세우는 가장 중요한 장소이다. 옛 가죽 부대는 리더십을 훈련시키기 위해 사람들을 신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새 부대는 교회내에 있는 성도를 지도자로 구비시킨다. 미국의 교회성장학자 라일 샬러는 "교회는 학문을 가르치는 기관이 아니지만, 평신도 사역자를 배출하는 주된 장소다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대형 교회가 신학교를 대신하여 지도자를 배출하는 장소가 되고 있는 흐름과 일치하며 한층 더 발전된 형태이다. 교회 밖에서 교역자를 충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교역자를 충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신사도적 교회에서 성도들을 온전케 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목회자는 모든 교인이 자신들의 영적 은사를 깨닫도록 훈련시킨다. 그리고 영적 은사를 사용할 수 있는 사역의 장을 열어준다. 대다수 신사도적 교회는 새로운 교인을 받아들이는데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신사도적 교회의 교인이 되기 위한 절차는 일단 교회에 출석하고 헌금을 하며, 양육을 받고 사역을 해야 한다.
영적 은사를 잘 사용하는 교인들은 영적으로 강해지고 성장하게 된다. 새로운 사역자를 둘 때 담임목회자는 교인들 중에 하나님의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자를 초빙한다. 교회사역자의 기준은 이미 자신의 영적 은사를 드러낸 사람을 사용한다.
교회사역자가 되기 위해 다음의 세 가지 기준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담임목회자에 대한 충성이다. 두 번째는 기존의 스탭들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는 어떤 경우 당회에서 담임목회자와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도 사역자로 두는 전통 교회와는 다르다. 부교역자는 전적으로 담임 목회자의 비전을 이루는 사람이다. 세 번째는 담임목회자에 대한 헌신이다. 신사도적 교회의 교역자는 담임목회자의 비전과 상반된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다. 신사도적 교회는 형식적인 위원회와 연구위원회를 두지 않는다. 또 신학교에 직접 가지 않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교육시킨다
네 번째는 사역의 새로운 초점(new Ministry Focus)이다
전통적인 교회는 현재로부터 과거로 움직인다. 한 마디로 과거의 전통과 유산지형적인 교회이다. 신사도적 교회는 미래로부터 현재로 움직인다. 미래지향적이며 비전지향적이다. 과거의 전통만 따르지 않고서 장래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할 것인가를 바라보는 것이다. 에드델프틑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 아무런 미래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존 맥스웰은 "패배자는 과거를 열망하고 그것에 집착하고 있다. 승리자는 과거로부터 배우나 그 과거를 흘려버린다."고 주장했다. 신사도적 교회는 갱신, 부흥이라는 단어를 상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갱신과 부흥은 모두 과거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신 사도적 교회는 미래에 대한 강력한 도전을 가지고 움직인다.
신사도적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회자에게 "당신의 교회는 셀 그룹을 가지고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그들은 일반적으로 "우리는 몇 년 후에 ***개의 셀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목회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현재 그 교회에 몇 개의 셀이 있는지가 아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수백 개의 셀을 상상이 아닌 실제로 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신사도적 교회의 사역의 초점이 현재를 발판으로 하여 미래로 나아가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다섯 번째는 새로운 예배 스타일(New Worship Style)이다.
신사도적 교회는 새로운 형태의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러한 예배는 어딘가에 "연결된" 예배이다. 신사도적 교회의 단상에는 다양한 악기나 예배 음악을 지원하는 도구에 전원이 연결되어 있다. 전통적인 교회는 파이프오르간에 연결된 단 하나의 플러그를 가지고 있다. 또 아주 오래된 찬송가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신사도적 교회는 현대 교회음악을 사용하고 있다. 예배 인도자는 찬양 인도자로, 파이프 오르간은 키보드로, 찬송가는 오버 헤드 프로젝터 가사로 대체되었다.
신사도적 교회의 예배 모습은 매우 다양하다. 어떤때는 앉아서 예배를 드리다가 어떤 때는 무릎을 꿇고, 또 어떤 때는 위를 바라보고, 어떤 때는 바닥에 엎드려 있다. 손을 높이 들기도 하다가, 눈을 지긋이 감고, 손뼉을 치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신사도적 교회의 예배 인도자는 모든 교인들이 예배의 실제적인 참여자가 되도록 하고 있다. 예배중의 박수의 갈채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표현인 것이다.
그밖에 신사도적 교회는 음향시스템뿐만 아니라, 성령 하나님과 현대적인 문화와도 연결되어 있다. 예배중에 성령님의 임재가 충만하며 복음을 전하는 방법도 현대문화에 접목시킨 형태로 추구하고 있다.
여섯 번째는 새로운 기도 형태(New Prayer Focrms)이다
신사도적 교회의 기도 형태는 전통교회와는 다르다. 예배시간에 기도의 횟수나 실제 기도시간을 합산해보면, 전통적인 교회의 기도분량을 훨씬 웃돈다. 예배 인도자들은 참된 예배는 기도와 찬양이 조화를 이루며 잘 배합 될 때 가능하다고 본다. 상당수의 신사도적 교회는 기도합주회(통성기도)를 실시하는데, 이때 모든 예배자들은 동시에 큰 소리로 통성기도를 하거나, 방언 기도를 한다, 때로는 각자 기도로 노래하고, 중세 그레고리 영창과 흡사한 크고 조화로운 소리로 기도하기도 한다.
신사도적 교회는 공동체안에서 일어나는 더 새로운 형태의 기도를 실천하고 있다. 그것은 찬양행진, 기도걷기, 기도여행, 기도원정 등이다. 여기서 기도 여행은 중보기도 특공대가 특정 지역에 가서 그 지경을 돌며 기도하는 기도원정대 등을 말한다. 그들은 영적싸움 안에서 기도를 한다.
일곱 번째는 새로운 전도사역(New Outreach)이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 전도하는 사역은 신사도적 교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지역 사회와 세상의 불신자들을 향한 복음적 발상은 신사도적 교회의 유전자들이다. 이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개인적인 축복을 구하지만 지나친 기보긴앙을 피하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전도하는 수단으로 축복을 간구한다.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신사도적 교회의 책임이다. 문제는 교회 개척을 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교회 개척을 언제, 어떻게 하느냐이다. 동일한 원리가 해외 선교에도 적용된다. 그런데 신사도적 교회는 교회 단위로 해외 선교에 참여하고 있다. 이것은 신사도적 교회가 새로운 선교단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선교에 보다 직접적이고 개별적인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부분 신사도적 교회는 가난한 자와 버림받은 자, 불우한 자와 장애자들에 대한 강한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많은 교회들이 사회봉사에 대해 말만 늘어놓지만, 신사도적 교회는 실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자들을 돕는 길을 찾고 있다.
여덟 번째는 새로운 힘의 우선순위(New Power Priorities)이다,
전통적인 교회는 말씀 선포가 하나님의 진리를 나타내는 통로를 연다고 보았다. 그러나 신사도적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이 진리를 연다고 생각한다. 말이나 이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 삶 가운데 행위로 나타나는 것을 중요시 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 말과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1, 4-5)고 말했다. 신사도적 교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은 치유, 축사, 영적 전쟁, 영적 도해, 예언사역, 거룩한 쓰러짐, 예언의 말씀 등이 있다.
아홉번째는 새로운 재정(New Financing)이다
신사도적 교회는 비교적 재정적인 문제가 없다. 상대적으로 풍부한 재정을 소유하고 있다. 여기에는 네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신사도적 교회는 헌금을 당연히 드려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대다수 성도들은 십일조를 드리고 있다. 둘째, 헌금을 자원해서 드려야 하며 그런 헌금은 성도들에게 유익이 됨을 알린다. 셋째, 헌금은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위해 필요함을 알린다. 비전과 연결시킨다.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헌금은 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사용되는 반면, 신사도적 교회는 비전을 이루는 데 사용되고 있다. 넷째, 헌금은 자발적인 기쁨이다. 따라서 신사도적 교회에서는 헌금을 드릴 때. 교인들이 즐겁게 소리치고 박수를 치며, 마치 축제간은 분위기를 창출한다.
현재 세계 도처에서 신사도적 교회(New Aporstolic Church)가 교회부흥을 주도하고 있다. 신사도적 교회는 사도적 리더십과 팀 사역, 평신도 은사활용과 셀 그룹 배가(倍加) 등으로 성장하는 교회이다. 지난 9월 3일부터 6일까지 4일간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는 피터 와그너(Peter Wagner)박사 초청 "21세기 신사도적 교회 부흥세미나"가 열렸다. 이 세미나는 21세기 교회에 새로운 도전과 부흥의 신모델을 제시해 주었다. 피너 와그너 박사의 주제강의 내용을 요약하여 2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1. 신사도적 개혁 운동(New Apostlic Reformation Movement)이란?
신사도적 개혁운동은 20세기말과 21세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이다. 이 역사는 놀랄만한 규모로 세계 도처에 있는 개신교의 형태를 바꾸어 놓고 있다. 지난 500년간 교회들은 전통적인 교단 구조 안에서 주된 기능을 해왔지만,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교회의 교회체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역 교회들관의 관계, 교회 행정, 평신도 지도자 선발과 훈련, 역동적인 예배, 초자연적인 능력과 교회 생활 등 다양한 면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 가운데 일부는 교단 안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대부분은 연합된 조직구조의 사도 네트워크의 형태를 띄고 있다. 그렇다면 신사도적 개혁운동이란 무엇인가?
'사도'(Apostle)는 헬라어 '아포스톨로스'(Apostolos)에서 유래된 말이다. 아포스톨로스는 명사이며, 이 원어에서 파생된 동사는 '보내다'를 뜻하는 '아포스텔로'이다. '보내다'를 뜻하는 또 다른 성경적인 용어로 '펨포'(pempo)가 있는데, 이 두 용어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펨포'는 단순히 보낸다는 사실을 강조한 반면, '아포스텔로'는 특별한 목적이나 구체적인 파송을 행하는 자로부터 '사명을 받고서 보냄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어는 때로 신적인 권의를 부여받고, '파송 받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아포스텔로'를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사도'는 '하나님 나라의 진리와 질서 안에서 사람들을 복음화시켜 제자로 만들기 위해 소명을 받고 파송받는 자'이다.
'신사도적'이라는 의미는 A.D.이후 300년간 교회의 사도적 특성을 새롭게 살린다는 의미이다. 1995년 9월 4일 발간된 「넷 팩스」(Net Fax) 지는 교회 역사의 범주를 세 가지 패러다임으로 구분하였다. 초대교회부터 3세기까지를 '사도적 패러다임'(Apdstolic paradigm)이라 하였으며, 4세기에서 19세기 중엽까지를 '기독교 왕국 패러다임'(Christianity Kingdom Paradigm)이라 불렀고, 20세기에서 21세기초까지를 '신사도적 패러다임'(New Apostolic Paradigm)이라 칭하였다. '새로운'(New)이란 의미는 '옛' 사도운동, 즉 초대교회 이후 300년간 지속된 사도적 패러다임과는 구분된다는 뜻이다.
도널드 밀러는 "기독교가 새 천년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두 번째 개혁을 증거하고 있다" 고 말했다. 여기서 '개혁'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개혁은 16세기 종교 개혁을 의미한다. 이것은 주로 신학적인 변화였다. 그러나 현재의 개혁, 즉 두 번째, 개혁은 신앙의 개혁(faith reformation)이 아니라 실천의 개혁(praxis reformation)이다. 중요한 차이는 16세기 개혁은 부패와 배교적인 교회에 대한 반동으로 발행했다면, 현재의 개혁은 비상관성에 대한 반대이다. 이처럼 신사도적 개혁운동은 단순히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과거 지향적인 회귀운동(past-oriented movement)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정신을 살려 실천해나가는 미래지향적인 비전운동(future-oriented movement)이다.
2. 신사도적 교회의 9가지 특징(The nine characteristics of new apostlic church)
매번 예수님께서는 역사 전반에 걸쳐 새로운 방식으로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셨고, 새로운 부대들을 마련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이 점에 대해 강조하셨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마 9:17) 본문에서 옛 가죽부대는 세례 요한을 지칭한다. 여기서 구약과 신약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세례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대표자를 의미하며, 예수 그리스도는 신약의 첫 대표자로 나타난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을 옛 가죽부대의 상징으로 말씀하셨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부어질 것이다. 이것은 교회사에서 거듭 일어났던 사례이다. 하나님께서는 지난 2천년간 교회에 새로운 역사를 일으킬 때마다 새 부대를 사용하셨다. 그러면 20세기의 새 부대는 무엇인가?
1970년대 초기에는 오순절교회가 새 부대였다. 1980년대에는 카리스마적 표적기사 운동이 새롭게 부각되었으며, 1990년대에 이르러 새로운 부대는 다음의 4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첫 번째는 아프리카 독립교회이다. 이 교회는 기존의 서구선교사가 세운 교회로부터 독립된 교회이다. 새롭게 태어난 아프리카 세대는 새로운 부대가 필요했다. 이렇게 세워진 아프리카 독립교회는 한 세기에 걸쳐 놀라운 교회성장을 이루었으며, 이는 전통교회의 성장속도를 훨씬 능가했다.
두 번째는 중국 가정교회이다. 1975년 문화혁명이후 세워진 가정교회는 지금 중국 전대륙에 걸쳐 세워지고 있으며, 중국 정부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교회성장을 이루었다. 현재 교인 수는 6천만명에서 1억 5천만명정도까지 추산되고 있다.
세 번째는 라틴 아메리카 민중 교회이다. 지난 20년간 라틴 아메리카 대도시 지경에서 시작된 대형 교회들은 주로 외국인 선교사들이나 선교부에서 주도하는 기관과는 무관한 개개인에 의해 목양되는 교회들이다. 이들 목회자들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유학한 자들이 아니며, 외국인 선교사들과는 거의 접촉이 없었던 자들로서 자국 문화권에서 성장한 자들이다. 그들 중 기업가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며 1960년대부터 민중교회 운동의 주역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부대들이 신사도적 운동의 근간이다.
또 미국의 독립적인 은사주의 운동도 마찬가지이다. 이 운동은 대다수 미국 교회로부터 무시당하고 있지만, 이전의 오순절 교회의 성장속도를 능가하고 있다.
이들 네 가지 운동의 공통적인 특징은 다음의 9가지로 요약 할 수 있다. 21세기의 새 부대는 이러한 특징을 가진 사도적 운동에 속해 있다.
첫 번째는 새로운 이름(A New Name)이다.
'신사도적 개혁운동'이라는 이름은 새로운 개념이다. 이 새로운 이름은 일반적 의미와 특수한 의미를 가진다.
그들은 '개혁'이라는 이름을 쓴다. 이말은 5백년전 개신교 종교개혁의 가죽부대보다 더 혁신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종교개혁 이래로 가장 근본적이고도 본질적인 교회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종교 개혁보다 더 위대한 개혁을 경험하고 있다. 이것은 신학적인 개혁이 아니라 신학을 교회에 적용하는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이다.
가장 근본적인 변혁가운데 하나는 사도직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이다. '신 사도적'이라는 말은 사도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의미한다. "사도"라는 말을 붙인 것은 신사도적 교회들이 전도의 중요성과 사도적 사역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New) 이란 단어의 의미는 이전에 사도적(apostolic)이란 단어를 사용했던 교회에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현재 북미에서만도 '사도적'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교회수가 30개를 넘어서고 있지만 그 교회들은 옛 가죽부대에 속한다. 위와 같은 이유로 이 새로운 교회들은 '신 사도적 개혁운동'으로 이름을 정하였다.
특수한 의미에서 신(新) 사도적 교회는 기존의 장로교회, 감리교회와는 달리 다양한 개성적인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교회의 이름을 사용하는데 무한대의 창조성을 지닌다. '수정교회'와 '기쁨의 공동체 교회'(Community Church of Joy)는 미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러한 새로운 교회들 가운데 하나이다. 영국의 '익투스교회', 필리핀의 '따뜻한 몸의 예수교회', 아르헨티나의 '사랑과 평화의 물결'(Waves of Love and Peace), 짐바브웨의 '마귀를 물리치고 천국으로 직행하는 교회'(Dodge the Devil and Go Straight to Heaven Church)등의 예를 들 수 있다.
두 번째는 새로운 권위 구조(New Authority Structure)이다.
새로운 권위 구조는 신 사도적 교회의 9가지 특징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 지난 4백년동안 교회는 교단이라는 구조 속에서 발전해 왔으나 신사도적 교회는 교단운동과는 구별된다. 새로운 권위 구조는 '성령이 각 개인에서 부여하신 영적 권위의 양'(the amount of spiritual authority delegated by the Holy Spirit to individual)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두가지 중요한 단어가 나온다. '권위'(Authority)와 '개인'(individual)이라는 단어이다. 옛 가죽 부대에는 개인보다는 집단에 권위가 있었다. 기존 교회에서 중요한 결정은 집사, 제직회, 당회, 이사회, 각 단체, 회중위원, 교구, 일반 회중 등과 같은 교회내 집단에 의해 이루어졌다. 반면에 신 사도적 교회는 하나님께서 영적 권위를 개인에게 부여하심을 인정한다. 관료적 권위에서 개인적 권위로, 법률적인 구조에서 관계적인 구조로, 지배구조에서 조정구조로 옮기게 된다. 아울러 기존교회의 합리적 지도력보다는 카리스마적 지도력에 의해 운영된다. 이 경우 카리스마는 신학적 혹은 은사적 의미가 아니라 사회학적이고, 일반적 의미에서의 지도력을 말한다(예-빈 라덴).
개교회 차원에서 볼 때 신사도적 교회에서 목회자는 지도자이지 고용자가 아니다. 목회자는 사람들에게 비전을제시하며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준다. 위원회에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 개인에 의해 비전이 제시된다. 의사결정은 위원회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인 목회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신사도적 교회는 담임 목회자를 절대적으로 신임한다. 담임 목회자와 성도간에 강한 신뢰감을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지역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사례이다.
보편적인 교회차원에서 목회자는 사도적인 은사가 사용되는 사람이다. 사도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 중 일부에게 주신 특별한 능력이다. 사도들은 영적인 문제에 대해 특별한 권위를 가진 채 다른 지체들에게 대해 리더십을 행사한다. 그 교회의 성도들은 사도가 가진 특별한 권위를 인식하고 인정한다.
세 번째는 새로운 지도자 훈련(New Leadership Training)이다.
교회는 지도자를 세우는 가장 중요한 장소이다. 옛 가죽 부대는 리더십을 훈련시키기 위해 사람들을 신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새 부대는 교회내에 있는 성도를 지도자로 구비시킨다. 미국의 교회성장학자 라일 샬러는 "교회는 학문을 가르치는 기관이 아니지만, 평신도 사역자를 배출하는 주된 장소다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대형 교회가 신학교를 대신하여 지도자를 배출하는 장소가 되고 있는 흐름과 일치하며 한층 더 발전된 형태이다. 교회 밖에서 교역자를 충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교역자를 충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신사도적 교회에서 성도들을 온전케 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목회자는 모든 교인이 자신들의 영적 은사를 깨닫도록 훈련시킨다. 그리고 영적 은사를 사용할 수 있는 사역의 장을 열어준다. 대다수 신사도적 교회는 새로운 교인을 받아들이는데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신사도적 교회의 교인이 되기 위한 절차는 일단 교회에 출석하고 헌금을 하며, 양육을 받고 사역을 해야 한다.
영적 은사를 잘 사용하는 교인들은 영적으로 강해지고 성장하게 된다. 새로운 사역자를 둘 때 담임목회자는 교인들 중에 하나님의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자를 초빙한다. 교회사역자의 기준은 이미 자신의 영적 은사를 드러낸 사람을 사용한다.
교회사역자가 되기 위해 다음의 세 가지 기준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담임목회자에 대한 충성이다. 두 번째는 기존의 스탭들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는 어떤 경우 당회에서 담임목회자와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도 사역자로 두는 전통 교회와는 다르다. 부교역자는 전적으로 담임 목회자의 비전을 이루는 사람이다. 세 번째는 담임목회자에 대한 헌신이다. 신사도적 교회의 교역자는 담임목회자의 비전과 상반된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다. 신사도적 교회는 형식적인 위원회와 연구위원회를 두지 않는다. 또 신학교에 직접 가지 않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교육시킨다
네 번째는 사역의 새로운 초점(new Ministry Focus)이다
전통적인 교회는 현재로부터 과거로 움직인다. 한 마디로 과거의 전통과 유산지형적인 교회이다. 신사도적 교회는 미래로부터 현재로 움직인다. 미래지향적이며 비전지향적이다. 과거의 전통만 따르지 않고서 장래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할 것인가를 바라보는 것이다. 에드델프틑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 아무런 미래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존 맥스웰은 "패배자는 과거를 열망하고 그것에 집착하고 있다. 승리자는 과거로부터 배우나 그 과거를 흘려버린다."고 주장했다. 신사도적 교회는 갱신, 부흥이라는 단어를 상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갱신과 부흥은 모두 과거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신 사도적 교회는 미래에 대한 강력한 도전을 가지고 움직인다.
신사도적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회자에게 "당신의 교회는 셀 그룹을 가지고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그들은 일반적으로 "우리는 몇 년 후에 ***개의 셀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목회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현재 그 교회에 몇 개의 셀이 있는지가 아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수백 개의 셀을 상상이 아닌 실제로 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신사도적 교회의 사역의 초점이 현재를 발판으로 하여 미래로 나아가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다섯 번째는 새로운 예배 스타일(New Worship Style)이다.
신사도적 교회는 새로운 형태의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러한 예배는 어딘가에 "연결된" 예배이다. 신사도적 교회의 단상에는 다양한 악기나 예배 음악을 지원하는 도구에 전원이 연결되어 있다. 전통적인 교회는 파이프오르간에 연결된 단 하나의 플러그를 가지고 있다. 또 아주 오래된 찬송가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신사도적 교회는 현대 교회음악을 사용하고 있다. 예배 인도자는 찬양 인도자로, 파이프 오르간은 키보드로, 찬송가는 오버 헤드 프로젝터 가사로 대체되었다.
신사도적 교회의 예배 모습은 매우 다양하다. 어떤때는 앉아서 예배를 드리다가 어떤 때는 무릎을 꿇고, 또 어떤 때는 위를 바라보고, 어떤 때는 바닥에 엎드려 있다. 손을 높이 들기도 하다가, 눈을 지긋이 감고, 손뼉을 치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신사도적 교회의 예배 인도자는 모든 교인들이 예배의 실제적인 참여자가 되도록 하고 있다. 예배중의 박수의 갈채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표현인 것이다.
그밖에 신사도적 교회는 음향시스템뿐만 아니라, 성령 하나님과 현대적인 문화와도 연결되어 있다. 예배중에 성령님의 임재가 충만하며 복음을 전하는 방법도 현대문화에 접목시킨 형태로 추구하고 있다.
여섯 번째는 새로운 기도 형태(New Prayer Focrms)이다
신사도적 교회의 기도 형태는 전통교회와는 다르다. 예배시간에 기도의 횟수나 실제 기도시간을 합산해보면, 전통적인 교회의 기도분량을 훨씬 웃돈다. 예배 인도자들은 참된 예배는 기도와 찬양이 조화를 이루며 잘 배합 될 때 가능하다고 본다. 상당수의 신사도적 교회는 기도합주회(통성기도)를 실시하는데, 이때 모든 예배자들은 동시에 큰 소리로 통성기도를 하거나, 방언 기도를 한다, 때로는 각자 기도로 노래하고, 중세 그레고리 영창과 흡사한 크고 조화로운 소리로 기도하기도 한다.
신사도적 교회는 공동체안에서 일어나는 더 새로운 형태의 기도를 실천하고 있다. 그것은 찬양행진, 기도걷기, 기도여행, 기도원정 등이다. 여기서 기도 여행은 중보기도 특공대가 특정 지역에 가서 그 지경을 돌며 기도하는 기도원정대 등을 말한다. 그들은 영적싸움 안에서 기도를 한다.
일곱 번째는 새로운 전도사역(New Outreach)이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 전도하는 사역은 신사도적 교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지역 사회와 세상의 불신자들을 향한 복음적 발상은 신사도적 교회의 유전자들이다. 이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개인적인 축복을 구하지만 지나친 기보긴앙을 피하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전도하는 수단으로 축복을 간구한다.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신사도적 교회의 책임이다. 문제는 교회 개척을 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교회 개척을 언제, 어떻게 하느냐이다. 동일한 원리가 해외 선교에도 적용된다. 그런데 신사도적 교회는 교회 단위로 해외 선교에 참여하고 있다. 이것은 신사도적 교회가 새로운 선교단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선교에 보다 직접적이고 개별적인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부분 신사도적 교회는 가난한 자와 버림받은 자, 불우한 자와 장애자들에 대한 강한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많은 교회들이 사회봉사에 대해 말만 늘어놓지만, 신사도적 교회는 실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자들을 돕는 길을 찾고 있다.
여덟 번째는 새로운 힘의 우선순위(New Power Priorities)이다,
전통적인 교회는 말씀 선포가 하나님의 진리를 나타내는 통로를 연다고 보았다. 그러나 신사도적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이 진리를 연다고 생각한다. 말이나 이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 삶 가운데 행위로 나타나는 것을 중요시 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 말과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1, 4-5)고 말했다. 신사도적 교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은 치유, 축사, 영적 전쟁, 영적 도해, 예언사역, 거룩한 쓰러짐, 예언의 말씀 등이 있다.
아홉번째는 새로운 재정(New Financing)이다
신사도적 교회는 비교적 재정적인 문제가 없다. 상대적으로 풍부한 재정을 소유하고 있다. 여기에는 네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신사도적 교회는 헌금을 당연히 드려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대다수 성도들은 십일조를 드리고 있다. 둘째, 헌금을 자원해서 드려야 하며 그런 헌금은 성도들에게 유익이 됨을 알린다. 셋째, 헌금은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위해 필요함을 알린다. 비전과 연결시킨다.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헌금은 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사용되는 반면, 신사도적 교회는 비전을 이루는 데 사용되고 있다. 넷째, 헌금은 자발적인 기쁨이다. 따라서 신사도적 교회에서는 헌금을 드릴 때. 교인들이 즐겁게 소리치고 박수를 치며, 마치 축제간은 분위기를 창출한다.
출처 : 전도종합/3500만명의 영혼구령카폐
글쓴이 : Moses.cane.you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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