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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알파-토크> 4.어떻게 나의 믿음을 확신할 수 있는가?

어노인팅 2007. 12. 12. 20:56
<알파-토크> 4.어떻게 나의 믿음을 확신할 수 있는가?
(How Can I Be Sure of My Faith?)
사도행전 4:13-22

홍만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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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어


섬 마을 노처녀의 맞선..... @@

섬마을 처녀에게 맞선 자리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맞선 보는 날이 되어서 그녀는 아침부터 치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용실을 찾아갔습니다. 미용실에서 한껏 멋을 부린 그녀는 시계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배 떠날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얼른 마무리를 하고 선착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배를 놓치면 그녀는 평생 후회하며 살 것 같아서 젖 먹던 힘까지 내서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어갔습니다.
아뿔싸! 그런데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벌써 배는 떠났는지 부두에서 2m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놓치면 안 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타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힐을 벗어 양손에 쥐고 배를 향해 돌진했습니다.
모래바람이 일어나고 드디어 점~프! ‘조금만 뻗으면 돼!’
죽을 힘을 다해서 팔을 뻗어 봤지만, 이미 그녀의 몸은 바다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뱃사람들이 일제히 나오더니 그녀를 보고 측은해 하며 말했습니다.
“아, 뭐가 그리 급한겨??? 10초만 기다리면 도착하는디….”
조바심을 버리고 말씀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확실한 음성을 들어 봅시다.

나 중이야

하루는 승려가 공중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했다.
한참 때를 밀다가 등을 닦아야겠는데 누구에게 때를 밀어달라고 할까 하다가 마침 학생같이 보이는, 자기처럼 머리를 빡빡 깎은 사람이 보이자 "야! 나 때 좀 밀어줘."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학생은 "야! 네가 뭔데 나보고 때를 밀어달라고 해?" 하는 것이었다.
승려는 좀 기분이 언짢았지만 머리를 깎았으니 신분을 몰라서 그러려니 하고 부탁하던 김에 ꡒ나 중이야. 좀 밀어.ꡓ하였다.
그랬더니 그 학생은 더 큰소리로 "야 이놈의 자식아! 나는 중삼이야! 건방지게 누구보고 때를 밀어달라는 거야?"하며 소리쳤다.


여는 말


가짜 있는 것은 진짜가 높은 가치는 지녔을 때 나타납니다.
중생, 거듭남, 회심, 구원의 확신 등은 신앙 생활에서 많이 듣게 되는 용어입니다. 이 단어들은 자주 듣는 만큼 귀중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이 기쁨으로 인생을 살고, 중생한 사람이 도저히 정상인으로서는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에 감사하며 삽니다. 세상 사람들과 가치관이 다릅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신앙없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1) 중생의 확실성
우리가 눈을 감든지 떠 있던든지와는 관계없이 태양은 있습니다. 내가 비록 가보지는 못했어도 독일은 엄연히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영생 또한 그것을 느끼든지 못느끼든지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이 격게되는 과정입니다.

2) 구원의 경험 순간
흐르는 눈물, 터절 것 감은 감동의 물결,

푸는 말


우리가 용서받았다는 확신,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확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은 어디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가?

1. 하나님의 말씀 (The Word of God)

1) 인간의 감정과 기분에 좌우되지 말라
그리스도인이 되는 체험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강할 수도 있고, 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동일하다 (요 1:12). 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관계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기 원하신다 (요일 5:13).

2) 예수님이 성령으로 내 안에 들어오심을 믿으라 (계 3:20)


3) 일단 들어오신 예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 (마 28:20)
부모와 갈등이 있어도 여전히 자녀이듯, 하나님과의 밀접한 교제가 줄어들고, 간혹 죄에 빠지기를 해도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4)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다 (요 10:28)


5) 믿는 자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계21:1,살전4:17,고전13:12,요일3:2)



2. 예수님의 사역 (The Work of Jesus) - 십자가의 죽으심

1) 구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일의 결과이다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자격은 우리의 바램과 노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이루신 업적에 달려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영원한 생명을 주신 보증서입니다. (예) ‘이웃사랑’ 티켓을 받고 이런 전화를 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정말 줍니까?’ 왜 관계가 없는 우리에게 주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받기 싫으면 오지 마십시오’했더니 정말 주는 것이냐며 거듭 묻고는 왔습니다. 오면 받고 의심해서 안오면 못받는 것입니다.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ꡓ

2) 구원은 예수님이 주시는 선물을 감사히 받는 것이다 (요 10:28)

<이야기>// 시골의 어느 가난한 여인이 아들을 미국으로 유학보내고 갖은 고생을 겪느라 영양실조로 쓰러져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넉넉한 생활비를 수표로 보내왔던 아들은 설마 어머니가 영양실조로 쓰러졌을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귀국해서보니 그의 어머니는 수표를 은행에서 찾아쓸 줄 몰라 종이쪽지인 줄만 알고 그냥 머리맡에 붙혀놓고 있었습니다. 고생 안해도 될 것을 그것이 돈인 줄 모르고 현금으로 바꿔서 쓸 줄 몰라서 굶어죽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같이 되기가 쉽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이미 다 성취해 놓으셨는데 믿음으로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패배의 생활을 하고 마귀에게 짓눌린 생활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주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성취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것을 내 것으로 삼으면 됩니다. 깊은 땅 속에 들어가 석탄을 파내듯이 내 노력으로 구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성취하신 것을 믿음으로 당당하게 내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선물은 회개와 믿음으로 받을 수 있다 (요 1:12)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구원받기 위해서 종교의식을 믿고 신뢰한다면 그것은 과오를 범하는 것입니다. 성찬예식이나 세례예식이 중요한 성례전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구원받는 줄 믿고 심령이 거듭나지 못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그것은 구원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활규칙대로 살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고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에 대한 완전하고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롬6:10-11)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우리의 모든 영적인 필요를 넉넉히 채울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신자의 죽음이요 예수님의 부활은 곧 신자의 부활이며 예수님의 승리는 곧 우리 신자들의 승리입니다.

4)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죄의 벽을 허무셨다(사53:6,막15:34)
(골2:14-15)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의 빚을 다 도말해주셨습니다. 빚을 질 때 써준 차용증서를 다 태워버렸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미 성취해 놓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줄 모르고 내가 내 힘으로 노력해서 구원을 성취하려고 헛수고를 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이미 성취해 놓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십시오. 그 순간 우리는 구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5) 이 예수님의 사역을 믿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사라진다 (롬 8:1)



3. 성령님의 증거 (The Witness of the Spirit)

1) 크리스챤이 될 때 하나님의 성령이 그 안에 거하신다 (롬 8:9)

2) 성령님은 우리의 속사람을 변화시키신다 (갈 5:22-23)
다른 사람들이 알아 볼수 있는 변화가 생깁니다. 일시적인 연극은 금방 탄로가 납니다. (예) 배나무에 붙여 놓은 솜으로 만든 사과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음식점 입구에 진열해 놓은 음식 견본은 모양은 아주 비슷하지만 향기가 없기 때문에 구분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 없습니다.
진정 변화된 찬송만 불러도 눈물이 나고, 십자가만 들어도 눈물이 납니다. 좋아서 울고 감사해서도 웁니다. 우는 과정이 끝나면 기쁨이 넘칩니다. 넘치는 기쁨 때문에 웬만한 고난은 그를 괴롭히지 못합니다. 거듭난 성도는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그리고 가치관도 달라집니다.
<찬송> 주 예수 내 맘에 들어 와 계신 후,

3) 성령님은 우리의 관계와 태도를 변화시키신다
벌레가 나비가 되었을 때,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자신은 잘 모릅니다. 다만, 전에는 자기 중심적인 인간으로 천박한 밑바닥 생활을 했다가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충만한 생활을 하고 높은 기준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4)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신다
(롬8:15-16)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사34:1-7)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5)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5) 성령님은 객관적 성품과 주관적 확신을 통해 증거하신다


닫는 말


1) 회심의 유형들( 메도우와 케이호(Richard D. Kaeho)의 구분에 따르면)

* 위기회심(Crisis Conversion)
제1단계//혼돈과 불안정, 혹은 갈등을 겪는 시기
제2단계//갈등과 고통으로 괴로워하던 사람이 급격하게 통찰을 자각하거나 또는 계몽된 느낌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때에는 종종 강열한 정서를 동반하게 된다.
제3단계//통합성, 평화, 안정감, 갈등으로부터 해방된 느낌을 갖게 되는 시기

* 점진적 회심(Gradual conversion)
제임스는 이러한 회심을 “의지적 회심”(volitional conversion)이라고 하였다. 진보주의적인 신앙의 범주에 속해있는 신학자들은 감정적인 요소가 어느 정도 배제되고 의식적인 통찰에 의하여 경험되는 회심인 점진적인 회심에 더 호의적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격려하고 있다.

* 무의식적 회심(Unconscious Conversion)
종교적 성장은 비교적 안정되어 있고, 평온무수한 것이 그 특징이다. 스타벜의 점진적인 발달을 가져오는 조건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어릴 때의 종교적 분위기가 안정되고 자유로웠다.
둘째로, 엄격한 교회로 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
셋째로, 모든 발달 단계에게 경험되는 욕구가 조심스럽고 건전하게 충족되었다.
넷째로, 신앙의 자유뿐만 아니라, 懷疑의 자유도 허용되는 분위기에서 생활하였다. 대부분의 종교 교육자들은 발작적이고 열광적인 회심보다는 안정되고 질서 있는 종교적 신앙 발달이 전체적인 종교적 성숙의 과정을 놓고 볼 때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 세속적 회심(Secular Conversion)
심각한 이념이나 신념의 변화를 가져오는 회심일 수도 있고, 갑작스레 음식의 맛이 변하는 정도의 간단하고도 일상적인 것도 있다. 사회참여를 하면서 분신자살을 하는 유형이 이에 속한다.

2) 확신은 교만과 다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고, 영생을 얻어 천국에 갈 것이라는 확신은
(1) 하나님의 약속 (2) 예수님의 사역 (3) 성령님의 증거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죄사함과 구원의 확신은 모든 확신의 기초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가질 수 있는 최대의 특권이다.

3) 이제 묻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구주이십니까?
●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 당신은 영원한 생명을 지녔음을 믿습니까?
● 당신은 죄를 용서받았습니까?
● 구원받은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까?
●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구원의 확신을 회복하라

고린도후서 13장 5절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확신이 회복되어지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대로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확실한 자료는 아니지만 오늘날 한국 교회 성도 중 80-90%가 구원의 확신이 없다는 통계자료가 나와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아예 구원을 받지 못했든지, 구원은 받았지만 구원의 확신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사람일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이런 마음으로 듣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됩니다. “나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들을 때 구원받지 못한 분들은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며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겐 구원의 확신이 회복되어지는 복된 은혜의 시간이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을 소유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믿음 안에 있는가 아니면 믿음 밖에 있는가, 내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해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믿음 안에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 압니다. 여러분이 믿음 안에 있는지 믿음 밖에 있는지, 그리스도안에 있는지 그리스도밖에 있는지 스스로 압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바로 믿음에 서있는지 확인해 보고 확증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확신의 증거를 가지라

요한일서 5장 10절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바른 믿음의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들은 구체적인 증거가 있습니까? 어떤 증거를 갖고 있냐고 물어보면 저마다 다 다르게 대답을 할 것입니다. 정답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찬송가에도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받은 증거 많다고 했는데 도대체 어떤 증거가 우리 안에 있습니까? 여러분이 지금 갖고 있는 증거가 확실합니까? 받은 증거가 없다면 우리의 믿음을 다시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요일 5:11). 그 증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내가 믿음 안에 있다는 것은 영생의 증거입니다. 영생의 증거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믿는 자에게는 영생을 얻은 증거, 영생의 확신이 있습니다. 영생의 확신이 있습니까? 영생의 확신은 내가 지금 이 시간 죽어도 반드시 나는 천국에 간다는 확신은 영생의 확신이요, 구원의 확신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회를 다니면서도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한 많은 성도들을 만나보게 됩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분들은 두 가지, 바로 구원을 받지 못했든지, 구원관이 바르게 정립되어 있지 않다든지 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원관이 정립되어 있지 못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성령을 받을 때는 성령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을 때는 구원 얻을 말씀을 들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치유를 받을 때는 치유의 말씀을 들을 때 치유를 받습니다. 그리고 은사를 받을 때는 은사에 관한 메시지를 들을 때 은사를 받는 것입니다. 구원 얻을 말씀을 들으므로 여러분에게 구원의 은총이 여러분 가운데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구원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사함을 받은 확실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죄사함을 받았으면서도,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관을 정립하지 못한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 전하는 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여러분 모두가 깨달으시고 올바른 구원관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구원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사람은 율법의 행위, 율법이 요구하는 행위를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구원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천국 가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돈을 잘 쓰고 구제를 많이 하면 하나님이 혹시 잘 봐 주시지 않을까?’ 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면 구원함을 받지 않을까?’ 하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행위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받는 것입니다.

또 교회를 열심히 나오고 교회생활을 오래하면 때가 되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단번에 받는 것이지만 구원의 확신은 구원 얻을 말씀을 들을 때만이 갖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내가 신앙연조가 오래 되었고, 모태신앙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내가 성경말씀을 많이 알고 있고 암송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래서 구원을 받았을 꺼야’ 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잘못된 구원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분들은 구원에 관해서는 불명확합니다. 진짜 내가 구원을 받았는지 내가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는지, 내가 천국에 지금 갈 수 있는지 없는지, 내가 의인인지 죄인인지, 도대체 자기 정체성을 모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에 대해서 전혀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구원의 감격에서 오는 내적 평안과 기쁨도 없습니다. 또 죄를 이길 수 있는 힘도 없고, 주님 뜻대로 살고 싶은 열망이 없습니다. 교회 생활은 열심히 합니다만 종교심을 만족시키는 종교생활 정도로만 합니다. 그래도 지옥에 갈 수 없으니까 일주일 한번씩 하나님 앞에 문안 인사드리고 얼굴 한 번 도장찍고 세상에 가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그러면 하나님이 잘 봐 주시겠지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기 마음과 가정이 편하기 위해,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그렇게 신앙생활하는 분들도, 죄송하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삶 속에서 자기 뜻대로 일들이 잘 되지 않으면 교회를 떠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당을 찾아가기도 하고 또 다른 종교로 가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구원의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통한 정확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자기의 행위와 열심에 의해서 만들어진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항상 흔들립니다.

죄사함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

다시 한번 또 다른 이유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지금까지 지은 죄, 회개하지 않은 죄, 어릴 때 어머니 젖꼭지 물었던 죄부터 지금까지 지은 죄를 다 기억해서 회개해야 하는데 다 기억을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나는 혹시 아직도 죄가 남았다고 생각하여 몸이 아픈 것도 회개하지 못한 죄 때문일꺼야, 내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것은 아직도 이 죄가 남아서 그럴꺼야, 과거에 지었던 죄에 대한 청산의 미확신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앞으로 살아가면서 죄 짓지 않고 살아 갈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와 미래의 죄 청산에 대한 미확신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셋째로, 변화되지 못한 자기 자신을 보고 ‘나 같은 사람은 변화되기는 틀렸어! 되는 대로 살아야지’ 하면서 자기 자신의 변화되지 못한 모습 때문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구원의 확신이 없는 이유는 죄 사함의 확신이 없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이유를 따져보면 내 죄가 어떻게 해결되는지 확신이 없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는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원죄, 본성죄, 자범죄가 우리 인간에게 있습니다. 원죄는 나와 상관없는 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은 근본적인 죄를 원죄라고 합니다. 바로 그 죄는 우리 영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본성죄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우리 혼 속에 있는 죄를 본성죄라고 말합니다. 자범죄는 육체가 지은 죄, 짓고 있는 죄를 말합니다. 이같이 세 가지 부류의 죄가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본성죄나 자범죄가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원죄, 영 속에 있는 원죄가 해결이 되는 순간에 우리가 구원받고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본성죄나 자범죄의 해결이 아니라 원죄의 문제가 해결될 때 우리의 구원의 문제, 영생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여러분의 신분이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죄를 해결하는데는 두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로, 생명 얻는 회개, 둘째로, 죄사함을 얻는 회개가 있습니다. 이 생명 얻는 회개는 원죄 해결을 말합니다. 믿으면 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의 말씀과 하신 그 일을 믿는 것입니다. 그 일을 믿는 순간에 원죄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원죄 문제가 ‘단번에, 영원히, 온전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본성죄와 자범죄는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 계속적인 회개와 돌이킴을 통해서 죄사함을 받고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순간에 ‘단번에, 영원히, 온전케’ 여러분의 생명얻는 회개가 이루어질 때, 죄의 길로 가려던 우리의 발걸음을 하나님께로 발걸음을 바꾸는 순간에 원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은 순간적으로 받는 것입니다. 성화는 주님의 나라 가는 그 날까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본성죄와 자범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죄사함 받는 회개는 자백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보면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죄를 자백하고 돌이킴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는 회개가 이루어지고 그로 말미암아 성화가 이루어집니다. 상태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신분의 변화는 단번에, 상태의 변화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신분의 변화는 하나님의 은혜로, 상태의 변화는 성령의 은혜와 여러분의 노력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본성죄와 자범죄를 지을 경우 하나님은 우리를 징계하실지언정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결코 취소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죄사함의 확신을 위해서 우리가 어떤 말씀을 붙잡아야 이 죄사함의 확신을 갖게 될까요? 로마서 3장 25절에 보면,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예수님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 제물로, 화해의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간과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간과해 주셨음을 믿는 데서부터 우리의 믿음은 시작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간과” 라는 용서는 “이유를 묻지 않고 알면서도 모르는 척 사해 주는 용서”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간과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아들처럼 하나님 앞에서 감히 용서를 구할 수도 없을 만큼 큰 죄인이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 제물이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중재를 요청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아버지, 이 사람의 죄를 제가 흘린 피를 보시고 용서해 주시옵소서” 라고 부탁하시면 하나님은 이유를 묻거나 따지지 아니하시고 나의 죄를 간과해 주십니다. 우리의 죄를 간과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보내드립시다. 이 아들이 흘리신 피의 공로로 말미암아서 나의 모든 죄가 간과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믿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속죄함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은 히브리서 10장 17절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신답니다. 하나님께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나의 죄를 기억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고 염려하고 있다면 그것은 주님의 약속을 믿지 않기 때문에 오늘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완전한 용서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전능하시기 때문에 영원히 기억하실 수 있으시고 영원히 망각하실 수도 있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늘나라의 백보좌 심판대 앞에서 그 죄를 묻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억하지 않는 용서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은 감히 이러한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에서 나오는 용서를 흉내낼 수 없습니다. 사람은 용서하면서도 기억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용서하시고 기억지도 않으십니다. 즉 한번도 죄를 짓지 않은 사람처럼 우리를 받아 주십니다. 얼마나 큰 사랑입니까? 이 사랑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말씀처럼 나의 모든 죄를 용서받았음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말씀처럼 나의 모든 죄를 완전히 용서받았음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44장 2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 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또한 우리 죄를 도말하셨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원래 우리는 여름 날 비가 오기 전 구름이 빽빽하게 낀 것처럼, 혹은 안개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낀 것처럼 죄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구속의 사랑, 용서의 사랑을 믿었더니 글쎄 구름이나 안개가 사라지고 맑고 화창한 날씨로 바뀌듯이 우리의 모든 죄를 그렇게 ‘도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랑이관대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우리에게 이러한 사랑을 줄 수 있습니까?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용서의 사랑을 주시기 위해서 엄청난 값어치를 지불하시고 이 사랑을 우리에게 주신 줄 믿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돌아오면 용서해 주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미 용서했으니 돌아오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효력은 그 사실을 믿는 사람들에게 미칩니다. 그래서 ‘내가 네 허물을…, 네 죄를 …. 도말 했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 이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해 놓으시고 우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돌아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죄를 도말하시고 우리의 죄를 간과하시고 우리의 죄를 영원토록 기억하지 아니하시기 위해서 요한복음 1장 29절을 보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에게 세상의 모든 죄를 덮어 씌우셨습니다. 모든 죄를 그에게 전가시키셨습니다.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돌아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돌아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 용서해놓으시고 기다리시는 주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여러분, 죄 있는 모습 그대로, 더러운 모습 그대로, 있는 그대로, 포장하려고 하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방법으로 해결해 놓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의 보혈로 속죄하신 주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의 죄가 사함 받은 것을 믿을 때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을 확신하라

요한복음 5장 24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앞으로 옮길 것이 아니고 이미 옮겨졌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단번에 이루어진 놀라운 사실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단번에 의인이 되었습니다. 둘째로,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자녀가 이미 되었습니다. 넷째로, 확실한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다섯째로, 죄에서 완전한 해방을 얻게 되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분명하게 말씀으로 회복이 된 사람은 그 하나님의 은혜의 감격으로 성화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율법주의가 나온 줄 아세요? 이 구원의 확신없이 하나님을 믿으려고 보니까 율법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볼까 해서 행위주의 율법주의가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구원의 확신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복음의 말씀으로 정확하게 세워졌다면 이 은혜와 감격 때문에 우리는 변화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화는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우리가 변화되는 것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여러분, 내가 구원을 받았다면 이러한 증거가 있습니다. 첫 번째 죄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해결이 있습니다. 두 번째 마음의 평안과 기쁨이 생깁니다. 세 번째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있습니다. 네 번째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다섯 번째 다른 영혼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습니다. 여섯 번째 사람의 취향이 변합니다.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좋아집니다. 일곱 번째 또 우리 맘속에 죄를 안 지으려고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여덟 번째 다른 구원받은 성도들과 교제하는 것이 그렇게 좋아집니다. 아홉 번째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듭니다. 열 번째 교회와 예배를 사랑하고 목회자를 존경하는 마음이 듭니다. 열한 번째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삽니다. 열두 번째 구원의 확신 속에 든든해집니다. 문제가 생겨도 안 생겨도 좋고요, 잘나가도 안나가도 좋구요, 범사가 행복해집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구원의 확신을 가집시다.
출처 : 행 복 충 전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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