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전쟁

[스크랩] (릭조이너)횃불과 검 부흥집회 2강

어노인팅 2007. 3. 24. 19:07
)[횃불과 검]

(부흥)횃불과 검
강사: 릭 조이너 목사/잭 디어 목사 외 사역팀
기간: 2005.8.15-8.17/주최: 순전한 나드/장소: 오륜교회당

2005. 8. 15. 제2강(오후7:30)~ 강사: 릭 조이너 목사/통역: 이선영 목사(미국 팔복교회)

(공항에서 조금전 교회 도착해서 저녁 식사를 하고 릭 조이너 목사님이 드디어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하시게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의 말씀과 기름부음을 사모하여 모인 성도들의 모습이 더욱 집중되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금년 1월부터 등록을 하고 기다렸답니다. 릭 조이너 목사님의 말씀을 빠뜨리지 않고 기록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워드 작업하며 한번더 은혜를 받습니다. 동일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김근섭집사)

수년동안 한국에 오길 소원했는데 드디어 한국에 오게 되어 감사하고 있고, 주님이 허락한 시간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이 독립한 광복6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에게 자유함은 기본적인 것입니다.

저는 미국에 특별한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물론 내 주위에 있는 많은 한국분들이 좋은 미국시민이고 저의 좋은 친구들입니다. 한국인은 열심이 일하고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것을 봅니다. 제가 만난 한국인은 열심히 기도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일 중 중요한 조건이 기도입니다. 주의 말씀이 하늘에 속하지 않고 땅에 있는 인자에 속해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기 전에는 이 땅에 하늘이 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 역사하시도록 강구하길 원합니다.

한국은 기도의 열정이 특별합니다. 그 결과 이 땅이 기독교국가로 세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이 세상에 일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땅에 잘 알려져 있어도 하늘나라에는 알려지지 않는 것이 있고 반대로 이 땅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아도 하늘나라에는 잘 알려진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권위를 얻는 것보다 하나님 나라를 얻는 것이 훨씬 귀합니다. 이 땅에 있는 큰 군대 보다 기도하는 한사람이 더 큰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큰 능력이 곧 드러날 때가 임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알려지길 구하기 보다 하나님께 알려지길 구해야 합니다.

한국 기독교인의 다수가 장로교인이라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장로교인은 아닙니다. 저는 장로교의 신앙유산을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언적 유산입니다. 특히 잭 디어 목사님이 수년동안 장로교를 조사 연구했는데 깊은 뿌리의 예언적 유산을 많이 말합니다. 그것은 은사와 능력 보다 예언적 사역을 말합니다. 진정한 예언적 사역의 토대는 타협이 없고 진리와 의를 굳게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장로교회의 유산입니다. 그리고 같은 부담을 한국 기독교인에게도 준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시대에 갈등이나 여러분이 관계하고 있는 이 시대의 위험한 현상 가운데에도 꼭 기억할 것은 기도는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이 처음 이 땅에 역사할 때 땅이 혼돈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혼돈 가운데는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있다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혼돈 가운데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영광스러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실 때 바르게 되지 않는 혼돈은 없습니다. 사람이 고칠 수 없을 때 그 때 성령님이 역사할 때입니다. 기독교인은 이런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정이 혼돈하고 교회가 혼돈할 때 그 때가 성령님이 역사할 때 입니다. 삶 속에 혼돈이 있다면 성령님이 역사하시도록 문을 열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말세가 가까울수록 혼돈과 환난이 증가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요동하지 않는 왕국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성령 하나님께서 환영 받는 것을 느낍니다. 여러분은 이곳만 아니라 더 많은 땅을 장악하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저희가 이곳에 왔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참석한 한분 한분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더 가까이 동행하기 원합니다. 더 가까이 따라가기 원합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시간 되기 바라고 그런 후에 이곳을 떠날 수 있기 바랍니다. 예언사역의 진수는 하나님과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아모스 3장7절에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친구가 되어 계시하지 않는 것은 역사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되어 말하지 않고서는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향한 소명입니다. 그분께 가까이 나가지 않고서는 역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네가지 목적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사람이 존재하는 목적이기도 합니다. 이 목적을 이루지 않고는 우리 마음에 만족이 없습니다.

첫째, 하나님과 교통하게 하기위해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독특하게 창조하셨는데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하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가까이 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통하는 것을 너무나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만질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치있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생각이 많아 매일 마다 주님의 마음을 만질 수 없습니다.

제 딸이 세살일 때 성대한 생일잔치를 해주었습니다. 그 다음날에는 외가댁에서 잔치를 해주었습니다. 선물도 많이 받고 맛있는 케이크도 많이 먹었습니다. 딸 아이는 너무 좋아했습니다. 아이 외가댁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너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무엇이었느냐”고 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딸아이 하는 말이 아빠 무릎에 앉아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인 제 마음이 너무 기뻤습니다. 많은 좋은 선물을 받고서도 아빠와 함께 있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너무 귀합니다. 우리는 그 선물에 대해 영원히 감격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동안 우리는 그분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대통령실에 매일 갈 수 있다면 매우 높은 특권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더큰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왕 중의 왕이신 그분께 매일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의 자녀가 앞으로 주님께 나아가면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것이 창조한 이유 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중요한 만큼 중요하게 지키는 것이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숙도를 측정하는 것중 하나는 그가 얼마나 하나님과 가까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둘째, 동산을 가꾸는 일 입니다.
사람은 노동하도록 창조 받았습니다. 심리적으로도 사람이 의미있는 일을 하지않으면 미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일을 성취하도록 하십니다. 그것은 창조 목적의 하나입니다.

셋째,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입니다.
의미없는 삶을 사는 것이 목적일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언가 훌륭하게 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우리 마음에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때로는 이기주의적 동기를 가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무언가 이루도록 동기를 주셨습니다.

넸재, 우리로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조된 기본적 이유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모두는 각자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찾아서 임무를 온전히 수행할 수 있도록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가족이라는 동산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영적권위를 행사할 수 있게 하십니다. 가족 누구든 씨를 받아 기르고 생산물을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열매 맺는 것을 봅니다. 열매 맺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열매없는 나무를 어떻게 하셨는지 알 것입니다. 열매없는 가지는 잘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열매 맺을 다른 가지의 영양분을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열매 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에 부르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영권의 범위를 봅니다.

첫째는 내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은 좋은 씨앗이 심겨지길 원합니다. 마음의 장소를 정리하고 세상 염려를 제거해야 합니다. 좋은 씨앗은 많은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하는 것을 우리도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보낸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셨다 하십니다.

고린도후서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강력한 무기를 주어 마귀의 진을 무너뜨린다고 하십니다. 이 땅의 어떠한 폭탄보다 강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가 이 세상의 큰 군대 보다 큰 힘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 안에서 선포된 말씀이 큰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사람의 어떤 상황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여기 있는 많은 사람이 각자가 선교지로 부름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에 많은 사역이 그런 사람의 일 입니다. 하나님의 한 말씀이 이 땅을 덮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나는 말씀을 전하려고만 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속에 있는 은사를 일으켜 세우길 원합니다. 그런 은사를 가진 분이 많음을 봅니다. 하나님은 한 말씀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모세는 80세에 포기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당시 양치기는 천한 직업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한번의 만남을 통해 열방을 일으켜 세웁니다. 하나님을 만난 한사람은 국가를 바꿀 수 있습니다.

저는 루터를 좋아합니다. 그는 수도승이었습니다. 감독이나 사제가 아니었습니다. 독일의 작은 마을에 살았습니다. 독일은 그 당시 작은나라였습니다. 보잘 것 없는 이 수도승이 하나님 말씀을 바로 세웠습니다. 믿음을 세웠습니다. 95항목을 교회문에 진리로 못 박았습니다.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로 타협하지 않은 한 수도승에 의해서 온세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떠한 정보자 보다 더 큰 일을 했습니다. 암흑에 있어 그것은 빛이었습니다. 진리를 들고 타협하지 않는 능력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언적 능력입니다.

제 주위에는 그런 예언적 체험을 하는 분이 많습니다. 성경에 명백히 기록되어있는 체험입니다. 그것은 모든 기독교인의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분입니다. 그분과 교통하려면 영적차원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 마음 속에 초자연적인 것을 동경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의와 진리로 채워야 합니다. 다른 부정한 것으로 채우지 않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 세계에 익숙하다고 표현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엘리사도 그것을 보았습니다. 큰 군대가 와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사의 하인은 그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두려워 했습니다. 하인이 하나님의 군대를 보게되자 그제사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성경에 “우리 마음의 눈을 열어주소서” 합니다. 마음으로 보는 것이 더 현실적이길 축복합니다.

우리가 진리에 굳건히 서 있을 때 권능이 임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큰 능력이 맡겨질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실족하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른다고 하십니다. 같은 이유로 교회도 실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모를 수 있고, 능력을 행하는 사람은 말씀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이 두가지를 이 시대에 접목시키고 있습니다. 교리와 진리에 단단히 선 사람이고 능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큰 교단에 있는 분들만을 위해서 성서는 쓰여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빠르게 바꾸고 있습니다. 수백만 그리스도인들이 의견을 달리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반응을 보면서 어떤 분들은 민감히 반응하고 너무 흥분하기도 합니다. 그 분을바로 아는 말씀의 토대가 필요하니다.

우리는 의의 나무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단단한 박달나무도 밖으로 뻗은 가지만큼 아래로 뿌리가 내려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크신 능력을 맡기시려면 우리가 가진 진리의 뿌리가 든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명령과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땅이 하나님 중심되도록 지속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회복해서 얻어야 합니다. 여기에 모인 많은 분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아버지를 공경해야 합니다. 경배 수준에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아닙니다. 영적 아버지를 공경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어떠한 권위로 주님의 일을 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권위가 어디에서 오는 것이냐고 바리새인들이 주님께 물을 때, 그들에게 주님은,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냐 땅에서냐” 하고 물었습니다. 주님의 물음에 이미 대답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에는 자격이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주님은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창세기에서부터 나옵니다. 모든 선지자가 그리스도가 언제 올지에 대해서 기록합니다.

이 지구 상에 예수님 만큼 자격을 가진 분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세례 요한은 주님의 길을 예비한 대표 중 한사람입니다. 우리의 모든 예언은 저분에 대한 것이라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당시 마지막 선지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를 받으시고 율법과 의를 이루십니다. 공경하는 예언적 태도 였습니다. 만일 우리가 마지막 시대에 설고있다면 성경의 마직 때에 대한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전의 어떤 역사보다도 더 큰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길을 준비한 부흥의 토대가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분들의 업적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이제 이 분을 위해 여러분에게 더 큰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하나님의 역사를 잊지않기 원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전의 세대 보다 더 낫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교한 자를 낮추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대적하는 것은 모든 사람과 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 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 합니다. 그것은 받은 은혜를 잊기 쉽게하는 방법입니다.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예언적 권세의 특징이 있습니다. 에스겔서에 나옵니다. 잘 아시는데로 마른뻐를 보며 다시 살겠느냐 하십니다. 이 뼈에 대해 예언했을 때 뼈들이 맞추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한 군대가 됩니다. 영에 예언할 때 생령이 몸에 들어갔습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언자 또는 선지자라 칭합니다. 그리고 이 뼈가 얼마나 마른가만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언적 능력은 마른 뼈를 보면서, 마른 뼈 대신 놀라운 군대를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적을 이룰 때까지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좋은 상태를 보는 것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실 목적을 바라보고 생명의 말씀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유럽에서 영적으로 말라있는 교회를 보았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그 교회들이 변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교회 위에 임하여 교회들에게 역사하였습니다. 그들이 지극히 겸손으로 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아있었기 때문에 목말라 했습니다. 마른 나무가 제일 빨리 불에 붙습니다. 그분을 위해 생명의 말씀을 구해야 합니다. 진정한 예언적 사역은 가장 어려운 곳에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언적 사역의 기본입니다.

제가 믿기로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언적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서적 입니다. 이것이 다 선지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로부터 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사모하라 하셨고 특히 예언을 사모하라 하셨습니다. 이곳을 떠나기전 하나님의 음성을 알기 원하고 더 알기 원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첫 번째 사람은 에녹입니다. 에녹이 예언했습니다. 아브라함도 예언자라 불렸습니다. 이런 이유로 주님과 동행하는 모든 기독교인은 예언자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언이라는 명칭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행하면 됩니다. 윌킨스는 ‘야베스의 기도’를 쓴 분입니다. 미국에서 전세계에 가장 많이 팔린 책 중 하나입니다. 그분의 교회적 배경인 그 교단에서는 이 시대에는 하나님이 더 이상 예언자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작년에 그분이 저에게 가장 예언적인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엇이라고 말해야할지 모른다고 하기에 그냥 예언이라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분도 예언적인 분입니다. ‘예언’이라는 단어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용어를 쓰는 것에 상관하지 않기 바랍니다. 그동안 오순절계통에서 너무 많이 종교적 언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좋은 종교성과 나쁜 종교성이 있습니다. 좋은 종교성은 과부와 가난한 자를 섬기는 것이고, 나쁜 정교성은 바리새인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은 우물가에서 종교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일상생활의 말을 그냥 했습니다. 한 여인에게 그냥 말했습니다. 이런 말씀은 사람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짧은 말이 하나님께서 나를 생각하신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신약시대의 예언은 사람들의 마음의 비밀도나타나게 합니다. 초자연적 힘으로 나타나게 합니다. 우물가 여인에게 준 한마디가 그 도시를 변화시킵니다. 작은 한마디가 여러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알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에베소서 4장에 사도와 선지자 등의 은사는 성도를 온전케하려 하신다고 합니다. 진정한 사역음 모든 성도가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은사로 사역에 임하도록 모든 성도를 훈련시켜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성도가 그런 은사를 사용한다면 어디에 사용해야 합니까? 예배시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교회 건물 밖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는 교회생활에 혁신적인 변화가 임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 이 세상의 큰 변화는 일터사역입니다. 시장에서 일하는 사역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 교회생활은 중요합니다. 모든 기독교인은 지역교회에 견고한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합니다. 건강한 기독교인에게 이것은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의 성숙도는 교회의 여러 조직으로 보지 않기를 원합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상생활을 보기 바랍니다. 우리는 24시간 교회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어떤 장소에서나 사용하길 원하십니다. 지금 이 세상은 교회를 도시에서 거리에서 사용하십니다. 기름부음 받은 강한 목자들은 이런 강단에만 서지 않으십니다. 직장동료들을 함께 양육합니다.직장 동료들도 그분에게 가르침을 받기 원합니다. 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이 문제인데, 사랑이 있으면 찾아 옵니다.

교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엠마오 길에서 두제자를 가르칩니다. 주님은 광야에서도 성경을 통해 가르치십니다. 위대한 가르치이 두사람에게 전해집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주시는 가르침은 점심식사 식탁에서 대화를 통해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진정한 교사입니다.

수년전부터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일터에서 성경적으로 사는 이런 사람들이 예언하는 성도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내에서 보다 이 세상 정복에 예언사역은 쓰일 것이라 했습니다. 이 세상 권력자들도 예언자를 찾아오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미국 고위관 한 분이 찾아와서 ‘예언사역을 신뢰한다’고 말했습니다. 구약처럼 이에 예전사역에 기독교인을 사용하십니다.

나는 주님이 주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것을 감사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은사입니다. 교회가 공격 당하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교회를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는 높은데 있어서 멀리서부터 오는 적을 분별하고 적에게 기습 받기 보다 적을 함정에 빠뜨릴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통해 이러한 일을 하실 것입니다.

왜 세상 정부가 교회 보다 더 예언사역을 믿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가 예언사역을 무시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목사입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예언하다고 하면서 저에게 저의 목회방침을 바꾸라고 합니다. 저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데, 그렇게 하지않으면 그분들은 화를 냅니다. 성숙하지 못한 모습이고 그로인해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의 모든 영적사역은 사랑을 토대로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진정한 영적권세를 주시기 원합니다. 사람들의 심령을 사랑해야 합니다.

영적권세에는 다른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가족이지 조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관계성에서 이루어집니다. 저는 수년간 예언사역을 하시는 분들과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저에게는 좋은 영적예언을 주시는 한분과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분은 여러분 저에게 전화해서 제가 꾼꿈을 저에게 먼저 얘기해주고 해석해 주셨습니다. 제가 저의 꿈을 그분에게 얘기 하지 않았는데도 그분은 그것을 아셨습니다. 제가 만나려는 사람의 이름까지 말하고 그 사람이 무엇을 말할 것인지도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이분의 예언사역에 대한 얘기만 해도 이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저는 저에게 주실 예언이 있다고 하면 경청합니다. 그런데 저와 관계가 없는 잘 모르는 사람이 예언이라고 하면서 말을 하면 저는 주의를 끌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예언사역의 기본원리 중 하나 입니다. 모든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신뢰성입니다. 사랑할 뿐 아니라 신뢰해야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신뢰가 견고할수록 더욱 비중있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년간 그분이 하는 저에게 전해주는 말씀을 믿습니다. 요즘 제 주위에 예언사역을 하는 분들이 100여명 되지만, 그분을 가장 신뢰하고 그분의 말에 큰 비중을 둡니다.

예언사역은 하나님께서 두가지 방법 중 하나는 신뢰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사무엘에게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수년간 이스라엘 백성들도 사무엘이 선포한 말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랜 기간동안 체험으로 사무엘이 선포한 말씀을 신뢰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그의 말을 믿었습니다.

예언적 권위를 세우는 다른 방법은 위대한 능력의 나타남 입니다. 엘리야를 통해 보여줍니다. 엘리야의 족보도 모르는데 사역현장에 나타납니다. 왕 앞에서 3년간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러나 날씨가 그대로 됩니다. 그 분이 영적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첫 번째 방법을 훨씬 더 선호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족이고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직과 신뢰가 쌓아져야 합니다. 예언자는 이런 과정을 거쳐 예언사역을 쌓아가야 합니다. 교회에서 목사님에게 목회방침을 바꾸라는 예언을 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그분과 나 사이의 신뢰를 먼저 고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놀라운 능력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며 나무라기도 하는데, 태도가 지극히 겸손하고 공손해야할 것입니다. 그 결과 더 쉽게 수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와 다른 예언사역자는 비행기가 충돌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FBI에 전화를 해서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들이 받아적은 후에 이 정보를 어디서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꿈을 꾸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정신이상자 취급을 했습니다. 꿈으로 온 것을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미친 자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받은 꿈을 자세히 적어서 WEBSITE에 그 글을 올렸습니다. 금요일이었는데 그 다음 주에 9.11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이 내용이 다 맞았습니다. 신문에 밝혀지길 원치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분들이 제가 이야기 하면 열심히 받아적습니다. 빠른 시일 안에 그분들과 나 사이에 신뢰의 다리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그분들이 거절하더라도 겸손히 전해야 합니다. ‘이해’는 영어로 ‘UNDERSTAND' 인데, 누구 아래 있다는 뜻입니다. 상대방 FBI를 이해 했습니다. 제 말이 그 빌딩을 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진 것을 기꺼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 이후 선뢰성 때문에 다른 많은 사람을 구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할 것은 순종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관계성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저에게 다가오고 강제로 관계성을 갖기 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를 도망가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세벨이 선지자라고 스스로 말했습니다. 이 세상 예언자 중에는 다름 사람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의무를 지키고 말씀에 충실하고자 하며, 필요한 것을 알리고 그렇지 않은 것은 하지 않아야 신뢰하게 됩니다.

어떻게 인정하게 됩니까? 요한복음 4장에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면 어떤 믿음이 있어야 하는냐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임무를 줄때 세상 사람이 무엇이라하든 상관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합니다. 사람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방해가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합니다.

우리가 권세자를 존중하는 것은 합당한 일 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사람들에게 인정 받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주어진 정원이 있고 정원 안에서 열매를 맺어야 하니다. 다른 사람이 모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그곳이 여러분의 정원입니다. 우리는 그 정원을 가꾸어야 합니다. 그곳의 사람들이 그곳에서 열매를 맺으려면 영적으로 그곳을 장악해야 합니다. 그곳의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내가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직장에서는 직장 동료를 격려할 말씀을 주십시오 하고 구하기 바랍니다. 악한 영이 오려고 하면 주님이 주신 권세를 가지고 악한 영을 쫓아 내십시오. 그리고 그곳에서 불평 불만 하는 자리에 가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기 원하십니까?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 분의 성송 들어갈 때 감사와 찬양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루의 시작을 감사로 시작하십시오. 직장의 일을 감사로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직장에서 그분의 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까? 불평과 원망 때문에 그랬습니다. 불평 원망에 관여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나아가면 하나님의 임재 성소에 들어가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정원에 우리와 매일 같이 걷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느끼는 임재와 친밀감 만큼 직장에서도 그렇게 보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감사하고 찬양하며 들어가면 임재를 느낄 것입니다. 그리할 때 주님은 모든 상황 가운데 향기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구원의 빵 만큼 향기로운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막 구워낸 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집회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구체적으로 듣는 성도들 되기 원합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 보다 더 매력적인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께 가까이 가는 사람은 사람들이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있는 모든 분이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 그분의 열정으로 전염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영향을 받게되길 원합니다. 우리의 불은 더 환하게 타올라야 합니다. 주님은 메신저의 불꽃을 뜨겁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여기 모든 분이 뜨거운 불꽃이 되어 미지근한 성도를 뜨겁게 할 것을 믿습니다.

한국 교회는 이 세상의 교회중 위대한 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향한 더 위대한 일이 있습니다. 더 큰 일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기록: 김근섭)
출처 : 대명교회(大名*大明*大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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