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치유

[스크랩] 완전한 치유(사53:1-6 )-설교

어노인팅 2007. 2. 19. 21:03

완전한 치유(사53:1-6 )


  남편이 아내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 뿐만아니라 주멱까지 휘두릅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안타까운 상담에서 목사님은 '별거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합니다.
  두아들은 부인이 맡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나름대로 상처를 받습니다. '혼자 별거해서 사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은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무래도 내가 정신병원에 가봐야 할 것같다'고 말하곤 합니다. '왜그러느냐?'고 묻는 부인의 질문에 남편은 '당신이 나에게 퍼부었던 그 끔찍한 말들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야'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 남편은 가끔 '자기가 자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부인은 남편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렇다면, 그렇게 하세요. 그래야 제가 당신의 유산을 상속받지요.'라고 매몰차게 말했습니다.

  그 남편의 상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 때마다, 편지를 보낼 때마다 깊어지더니 마침내 그는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남편은 상처를 받기만 했지 그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채 죽어갔던 것입니다.
  '미안해요, 내가 진작 알았더라면...'  부인은 심한 죄책감에 몸부림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인은 괴로움과 외로움 때문에 이 남자, 저 남자를 만나는 불결한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자녀들은 큰 상처를 받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처속에서 뒹굴던 이 여인이 어느날, 다음과 같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남편의 자살로 인한 상처, 남편과의 별거로 인하여 두 아들에게 준 상처, 그리고 그후 계속 정결치 못한 삶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준 더 큰 상처등.. 모든 저의 상처가 이제 모두 치유되었습니다.' 

  겨우 치유되어, 마치 오랜 병상생활을 했던 사람이 겨우 활동을 조금씩 하는 그러한 삶을 사는 여인이 아니라, 자기와 같이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는, 멋진 사역을 하는 여인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케이 아더'입니다. 

  그녀는 이런 책을 썼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상처를 치유하신다'(한글번역판 '영적치유')  이 책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상처를 치유했다는 단순한 간증집이 아니라, 상처받은 자들이 어떻게 치유받을 수 있는가 하는 명확한 성경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준 책입니다. 그러므로 이책은 어느 상담학자의 책보다도, 어느 카운셀러의 책보다도 더 감동적이고 설득력이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엄청난 상처를 가진 이 여인을 이렇게 치유했는가?  상처에서 피가 나지 않도록, 곪지 않도록 꿰매어서 이제는 상처가 아물어 버린 그런 정도의 치유가 아니라 그 상처에서 도리어 향기가 나도록 만든 그 완전한 치유가 도대체 어디서 왔단 말입니까?  그 치유의 장본인은 누구입니까? 
 물론, 우리는, 바로 그분은 '예수님이다.'라고 너무나 쉽게 그리고 빨리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분으로부터 이런 완전한 치유, 넘치는 치유를 받고 있습니까? 라고 다시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저는 오늘  읽은 이사야 53장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2700-2800여년전에, 벌써, 우리들의 완전한 치유가 보장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완전한 치유요, 완벽하고도, 넘치는 치유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이 완전한 치유의 증거를 본문을 통해서 살펴볼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상처을 갖고 있는 분들이 이글을 읽으실 때에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주님은 우리들의 영적인 모든 상처를 치유하셨습니다
사53:5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허물과 죄악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예, 사망이지요.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엡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허물과 죄악으로 인한 치명적이고 절망적인 우리 영혼의 상처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치유를 받은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들 가운데 아직도 영적인 상처를 부둥켜 안고 몸부림치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어떤 허물이라도 괜찮습니다. 어떤 죄악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사탄이 여러분들에게 어떤 영적인 상처를 안겨주었다 할지라도 십자가 앞에 나오기만 한다면, 그 주님의 옷가에 손을 대기만 한다면,  옷가에 손을 댈 힘조차 없는, 상처속에 있는 분들이라면 그 십자가를 그냥 바라보기만 하십시오, 그리고 '주님, 당신이 나의 이, 깊은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군요. 저를 고쳐 주세요.  이렇게 속삭이기만 하세요. 주님의 치유가 얼마나 완벽하고 넘치는 것인가를 체험하고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은 우리들의 육신적 모든 상처를 치유하셨습니다.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질고- 약한 상태, 병듦,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지고- 대신해서 걸머지셨다. 담당하셨다는 말입니다. 이제 모든 책임은 걸머진 사람에게 있습니다. '당했다'는 말도 '지고'라는 말고 같은 의미입니다.
   슬픔- 심적,육적 고통(욥33:19-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이 징계)

예수님은 우리의 질병을 대신 걸머지셨을 뿐만아니라 우리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까지도 걸머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앞에서 우리의 육신적인 질병과 그 질병으로 인한 고통까지도 치유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병의 원인은 죄때문인가?' 아니면 '연단을 시키기 위해서인가?', '시험때문인가?' 아니면 '사탄의 공격때문인가?' '이 병이 주어진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건강관리를 소홀히 해서인가?' 질병의 원인들에 대한 논쟁들과 이야기는 제가 열거한 것외에도 대단히 많은 실정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 너무 신경을 쓰고 이야기하다 보면, 크게 빠지게 될 위험한 함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책임을 누군가에게는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죄때문이라는 생각이 내 마음을 잘못 사로잡게 되면, 나는 내 스스로에게 이 병의 모든 책임을 돌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심한 절망감속에 더 깊이   빠져 들어갈 수도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연단시키기 위해서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결론에  우리의 생각이 꽉 잡히게 되면, 나중에가서는 이 질병의 원인을 하나님께로 돌리게  되는 위험성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고 믿음이 연약해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사단이 파놓고 우리가 빠지기를 기다리는 무서운 함정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병이 났을 때 병의 원인을 놓고 왈가불가 논쟁하거나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일단 우리들의 치유자가 되시는 예수님앞으로 그 질병을 갖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모든 질병의 치유를 우리에게 보장해 주셨기 때문에 그 분은 질병의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치유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만일 회개가 필요하다면 그 사람에게 죄를 깨닫게 해서 회개를 시키실 것이고, 전정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그 사실을 알도록 하실 것입니다. 연단이 원인이었다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인식하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초점을 맞추어야 할 부분은 우리의 모든 질병을, 완전하게, 그리고 넉넉하게 치유하실 수 있는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사단과 죽음과 모든 질병을 이기신 승리자 되시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가 우리를 치유하시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 이것이 질병을 갖고 있는 분들의 가장 큰 관심사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두해를 혈루증으로 앓아온 불쌍한 여인은, 자기의 병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보다는, 자기 마음에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나을 것이라는 어쩌면, 무식한 것같기도 한, 단순한 마음만을 갖고 예수님께 나아갔고, 예수님의 옷가를 만졌고, 그 고질병인 혈루증은 깨끗하게 나음을 받았던 것입니다.(마9:20-22)  예수님은 이 여자의 병을 고쳐 주시기 전에, '너의 신분이 무엇이냐?' '너의 지은 죄가 무엇 무엇이니 회개하고 오너라.' '너의 병의 원인은 이러이러하다'라고 설명하시지 않고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의 단순한 그 마음을 주님은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이여,
행여나 여러분들중에 혹은 여러분들의 가족들중에 육체적인 연약함, 질병등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분은 안계십니까?  그 병의 원인이 무엇이든지간에 상관이 없습니다. 병의 원인이 무엇일까 주저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생각나게 하실 것이요, 깨닫게 할 것이요, 알게 할 것입니다. 먼저 완전한 치유자 되시는 예수님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리고 그 분께 우리의 질병의 치유를 간구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셋째로, 주님은 우리들의 정신적인(정서적인) 모든 상처를 치유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대신 모든 정신적인 상처를 다 받으셨습니다.
   사53:3 -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히12:2 -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사53:3에 보면 예수님은 멸시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모든 조롱과 천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멸시를 받았을 때, 그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아마 찢어지는 듯이 아팠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사람에게 싫어 버린자가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같이 됩니다. 이 당시에 어떤 사람을 버렸는줄 아십니까? 사람들이 있는 곳에 얼씬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얼굴도 쳐다 보지 않음을 당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레13:45-46절을 보면 문둥병자들은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우고 부정하다 부정하다를 외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문둥병환자인즐 알고 가까이 가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문둥병자들은 진밖에서 혼자 살아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도 격리되어야 하고 친구들과도 격리되어야 하고 사회와도 격리되어야 합니다.   
 바로 예수님이 문둥병자 취급을 받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문둥병환자가 이런 취급을 받고 사는 것도 힘든 일인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런 취급을 받았다니...  보통 사람같으면 머리가 획 돌았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 했을까요?
 더군다나 우리까지도 그분을 귀히 여기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다는 하나님의 자녀들까지도 그분을 무시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원수가 무시하는 것보다 몇배나 더 정신적인 상처와 고통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분의 얼굴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깊은 주름살이 파여져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그 나이또래의 그 누구보다도 그의 얼굴은 상해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 당시의 주님의 얼굴을 바라본다면 놀라지 않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사52:14)

그 분은 많은 간고를 겪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의 정신적인 정서적인 상처들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53:3 중간부분이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53:3-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그는 이 땅에 사시면서, 그리고 십자가상에서,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당할 수 있는 모든 정신적인, 정서적인 상처를 다 당하셨습니다. 그분이 왜 당하셔야만 했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정신적, 정서적 상처를 완전하게 치유해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53:5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1) 평화, 나음- 이 속에는 육적인, 정서적인, 영적인 모든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2) 누리고, 입었도다. - 완료상태 - 앞으로 이루어질 미래의 숙제가 아니라 이미 주 님께서 우리의 치유를 보장하셨다는 말입니다. 상황 끝입니다. 더 거론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치유를 위해서 우리가 믿고 당연히 누려야 할 은총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상처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질그룻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긁히고 금가고 깨어집니다. 저는 지금까지 여러분들에게 왜 당신이 상처를 받았는가를 묻지 않았습니다.
 케이 아더를 치유하셨고, 수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신 예수님, 우리 주님을 사53장을 통해서 소개했습니다. 그 완전한 치유, 그 풍성한 치유, 그 넘치는 치유를 받아야 할 권리가 당연히 우리에게 있음을 저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제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한다면, 그 분께 나의 상처를 아뢰고 부탁하기만 한다면.. 그 어느 누구도, 한 사람도, 예외됨이 없이 치유의 은총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치유의 은총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치유자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기도운동선교회
글쓴이 : ns리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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