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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들의 사모들은 생각보다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바이블칼리지 사모대학 김정순 목사는 “사모에 대해 연구한 논문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우울증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본보가 한국가정사역연구소와 바이블칼리지 사모대학,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84명의 사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복수응답 결과)에서 사모들은 우울증 또는 스트레스 요인으로 경제적 어려움(45.2%) 남편(41.7%) 성도(38.1%) 외로움(23.8%) 자녀교육(16.7%)을 꼽았다. 이밖에 시댁과의 갈등,개인진로 등도 스트레스의 한 요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모님 왜 부업하세요=한국 교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미자립교회들의 경우 사모들이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가 많다. 본보 설문조사 응답자 중 30%도 현재 부업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서울의 한 미자립교회 김모(55) 사모의 경우 교회를 개척한지 5년이 지나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3년전부터 식당일을 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식당 봉사를 한다”고 말하며 부업 사실을 숨기고 있다. 김씨는 “식당일을 해서 3남매를 교육시켰다. 눈물을 바다만큼 흘린 것을 하나님께서 잘 아실 것”이라며 눈물을 쏟았다.
그러나 정작 부업을 하는 사모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목사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만 하면 된다고 하는데 사모님은 왜 부업을 하느냐”는 반응이다. 한 인터넷 사모카페 대표는 “집안 살리다가 결국 억울한 꼴을 보는 사람은 사모”라며 “지난해 아이들 도시락이 문제가 됐는데 점심 못 먹는 사모도 많다”고 지적했다.
◇남편과의 갈등=본보 조사에서 사모들의 51.2%가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대상으로 남편을 꼽았다. 그러나 사모들을 위해 마련된 인터넷 상담카페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남편과의 갈등 문제다. 사모들은 교회 안과 밖에서 다른 남편의 모습,일방적이고 권위적인 태도,그리고 목회에 대한 높은 기대치 등으로 남편과 갈등을 빚는다.
경기도의 한 사모는 교회에서는 충실한 남편이 가정사에 무관심하고 인터넷 게임에만 열중해 매일 싸우지만 딱히 호소할 곳이 없는 상태다. 그 사모는 “아무리 설득해도 별개의 삶”이라며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려고 사모가 됐으나 남편과의 갈등 속에 한계를 느낀다”고 털어놨다.
한 사모는 인터넷 카페에 올린 글에서 “남편은 자신이 절대로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임에 나가서도 내 생각을 말할 수가 없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또 다른 사모는 익명 게시판에서 “남편의 목회 모습을 다른 목사님과 비교하면 갈등이 생긴다. 하지만 친정과 시댁이 모두 크리스천 가정이라 이런 고민을 말할 곳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안경테 하나 바꿨을 뿐인데=김모(35) 사모는 최근 안경테를 바꿨다가 큰 낭패를 봤다. 5년만에 새 안경테를 장만했는데 성도들이 “안경테 또 바뀌셨네요”라며 곱지않은 시선을 보냈기 때문이다. 김 사모는 “다른 사모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모두 옷 하나,신발 하나 살 때도 눈치를 본다고 말했다”며 “사모가 아니었으면 받지 않을 스트레스가 매우 많다”고 말했다.
본보 조사에서 사모들은 성도들에게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로 무심한 말투와 차가운 눈길,사모에 대한 지나친 기대,험담,다른 사모와의 비교,불순종,성도들간 불화 등을 꼽았다. 성도의 눈치를 보며 스트레스를 쌓아가고 있는 셈이다. 경기도의 작은 교회에서 찬양대 활동을 하고 있는 정모(46) 사모는 “심방 때문에 찬양대 연습에 빠졌더니 교인들이 목사님 때문에 넣어줬는데 열심히 안한다고 핀잔을 줬다”며 “그뒤로는 아무리 피곤해도 작은 일 하나 빠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모라는 특성으로 인해 성도들과 마음껏 소통하지 못하는 것도 사모들에게는 큰 고민거리다. 설문에 응답한 한 사모는 “남편은 종일 교회에 있고 교인들과도 편하게 어울릴 수 없어 외롭다”고 호소했다. 그는 “혹시 교회에 누가 될까 봐 모든 것을 감춘 채 늘 웃어야 한다”고 털어놨다.
◇갈 곳 없는 사모들=이처럼 가정주부로서,사모로서 스트레스를 받지만 사모들은 고민을 호소할 곳이 없다. 대학시절 전공을 살려 부업을 하고 있는 박모(36) 사모는 “지난해 우울해서 신앙 상담 기관을 찾아갔었는데 위로를 못 받았다”고 말했다. 박 사모는 “사모가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답변을 듣고나니 솔직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고 당시 경험을 들려줬다.
학창시절 친구와의 관계도 점점 소원해진다. 친구들 역시 사모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반면 이해도는 낮기 때문이다. 신모(40) 사모는 “대학 친구들에게 상담을 해주면 나중에는 연락을 끊는 경우가 많았다”며 “아픈 모습을 보여주면 약점을 잡혔다고 생각해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사모들은 사모들끼리 모이게 된다. 실제로 사모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는 ‘이야기할 상대가 없다’ ‘나는 결함이 많은 것 같다’는 등 속내를 털어놓는 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15년간 온·오프라인을 통해 사모들을 상담하고 있는 이희녕 사모는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상황들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 사모는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사모들의 노력이 중요하겠지만 교회와 성도들도 사모 역시 성도들과 다르지 않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엄기영 김준엽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