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종말론과 21세기
백금산 / 예수가족교회 목사, 부흥과개혁사 대표
I. 종말론, 그 주체할 수 없는 인간의 호기심
종말론, 삶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
'디 엔드(The End)'라는 자막이 뜨면 영화가 끝났다는 뜻입니다. 영화가 끝나면 관객들은 하나씩 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영화관을 빠져나갑니다. 관객들은 영화 속의 가상현실에서 벗어나서 실제의 현실로 돌아갑니다. 모든 영화에 '마지막'이 있듯이 실제의 삶에도 '마지막' 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개인들은 '죽음'이라는 '최후(The End)'를 통해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죽음으로 이 세상에서의 모든 파란만장한 삶이 끝나게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종말에 대한 호기심과 깊은 관심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인간 육체의 죽음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의 진정한 '마지막'인가? 아니면 육체의 죽음이후에도 새로운 사후의 세계가 있는 것인가? 만일 있다면 사후의 세상에서의 삶은 어떤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참으로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없습니다. 또한 개인의 종말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종말에 대해서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져보게 됩니다.
"인류의 역사도 개인의 죽음처럼 '인류 최후의 종말'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인류의 역사는 후손들을 통해서 끝없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일까? 인류는 영원히 계속적인 자기발전을 통해서 이 지구 위에서, 더 나아가서는 이 우주를 개척해서 영원히 생존을 계속하게 되는 것일까?
만일 '인류 최후의 종말' 있다면 어떤 형태로 '지구의 종말', '인류 문명의 끝'이 찾아오게 되는 것일까? 인류는 핵폭탄으로 완전 멸망하는 것일까?, 생태계의 파괴로 자멸하는 것일까?, 혜성과의 충돌로 끝장나는 것일까? 아니면 우주에 지구상의 인류 외의 또 다른 외계인이 있어서 외계인의 침입으로써 지구인들의 역사는 끝나는 것일까?"
인류역사의 종말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수많은 미래공상과학 소설과 영화 등을 통해서 지금도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계속 자극하고 있습니다. 종말론(終末論)은 바로 이러한 개인과 인류 전체 역사에 있어서의 '마지막'에 대한 사건, 즉 인간의 마지막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의 문제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성경적 종말론의 내용
성경적 종말론이란 이러한 개인의 종말과 역사의 종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성경의 진리를 말합니다. 성경적 종말론의 관점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지식은 기본적으로 두 개의 영역에 걸쳐있습니다. 하나는 개인의 종말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세상의 종말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전자를 '개인종말론'이라 부르는데 주로 육체의 죽음, 영혼의 불멸성, 그리고 육체의 죽음과 육체의 부활 사이의 '중간기상태'등의 문제를 다룹니다. 그리고 후자를 '일반적 종말론'이라 부르는데 여기에서는 주로 그리스도의 재림, 죽은 자의 부활, 최후의 심판, 최후의 영원한 상태 등의 내용을 취급합니다.
본 글의 주제와 방향
그러므로 성경적인 종말론적 시각을 가지고 21세기를 살아가려고 할 때, 우리가 알아야 할 종말에 관한 성경지식은 엄청난 분량이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이러한 개인적인 종말과 일반적인 종말에 대해서 상세하게 살펴보자면 한 권이 아니라 수십 권의 분량이 되어도 부족할 것입니다. 따라서 본 글의 지면상 성경적 종말론의 모든 면을 다루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성경적 종말론 가운데서도 일반적인 종말론을, 일반적인 종말론 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사건만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더불어 인류역사의 종말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핵심개념만을 다루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종말의식을 바탕으로 교회가 21세기에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선교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II. 성경적 종말론과 성경적 역사관의 상관관계
직선적인 기독교적 역사관
성경적인 종말론이라는 주제에 접근하는데 있어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종말론이 기독교 역사관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독교 역사관의 핵심은 역사가 처음이 있고 마지막이 있는 직선적인 것이라는 점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성경이 말하는 직선적인 역사는 인간의 창조로부터 종말에 이르는 다음과 같은 뼈대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창조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타락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세주를 통하여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십니다. 따라서 인간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속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 창조-타락-구속-완성에 대한 직선적 역사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종말론은 넓은 의미에서는 성경이 말해주는 이러한 창조-타락-구속-완성에 전 영역을 다 포함하는 것인 동시에 좁은 의미에서는 이러한 구속역사의 결정적인 한 부분인 구속과 완성의 영역을 집중적으로 조명합니다.
역사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
성경이 보여주는 이러한 직선적 역사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인류역사의 전환점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인해서 타락한 인류의 회복이 결정적으로 시작되고(구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서 구원사건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중심으로 예수님이 오시기 전(B.C)과 예수님이 오시고 난 후(A.D)로 구분됩니다. 또한 예수님의 재림을 분기점으로 역사는 이제 시간과 공간을 기본으로 하는 역사시대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새로운 질서를 들어가는 영원시대로 옮겨가게 됩니다.
따라서 이 세상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중심이자 역사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적 역사관은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인 직선적 역사관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III. 성경적 종말론의 핵심
구약과 신약 종말론의 관계
신,구약 성경은 모두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의 구원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인간의 구원역사는 동전의 양면처럼 한편으로 세상 나라의 종말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기도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이러한 종말에 대한 내용들을 간추려 보면 대강 (1)장차 오실 메시야 (2)하나님의 나라 (3)새 언약 (4)이스라엘의 회복 (5)성령의 부으심 (6)여호와의 날 (7)새 하늘과 새 땅등의 용어 내지는 주제들로 압축될 수 있습니다. 주로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해서 계시된 이러한 종말론적 사건들이 언제 어떻게 어떤 순서로 성취될 것인가? 하는 것은 구약시대에는 아직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종말론적 사건들은 신약시대에 와서야 신약성경을 통해서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인 종말론
신약성경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종말론은 크게 2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신약 종말론의 첫 번째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인 종말론'이라는 점입니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종말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전 기간이 종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경적 종말론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내용입니다. 또한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만을 종말로 생각하기 쉬운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는 아주 다른 독특한 내용이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를 요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신약성경을 펼치면 사도 베드로(벧전1:20)와 바울(고전10:11)과 요한(요일2:18)은 한결같이 이미 종말이 임했다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바로 종말적인 사건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구약에서 기대했던 종말의 많은 내용이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종말론과 비교해 볼 때 신약성경이 보여주는 아주 독특한 종말론입니다. 구약은 메시야가 이 세상에 오는 시점이 바로 종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메시야가 오면 곧바로 이 세상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이 보여주는 것은 메시야가 오신 것이 종말이기는 하지만 메시야의 오심이 단 한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두 단계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즉 구약에서 일회적인 사건으로 기대되었던 메시야의 오심은 신약에서 예수님의 초림과 예수님의 재림의 두 단계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오심자체가 바로 종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오심이 초림과 재림의 두 단계에 걸쳐서 이루어지게 됨으로서 예수님의 초림은 종말의 시작이 되고 예수님의 재림은 종말의 끝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전체 기간이 종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미(already)'와 '아직 아니(not yet)'의 양면적 종말론
신약성경이 말하고 있는 종말론의 두 번째 특징은 종말이 '이미'와 '아직 아니'라고 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종말이 '이미' 임했다고 말합니다. 이런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 '실현된 종말론'이라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한편 예수님의 재림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종말은 '아직 아니'왔습니다. 즉 종말은 아직도 미래의 일입니다. 이런 측면을 강조하는 것을 '미래 종말론'이라고 합니다. 신약의 종말론을 깊이 연구한 학자들의 연구사를 살펴보면 어떤 학자들은 때로는 '실현된 종말론'만을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학자들은 '미래 종말론'만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절대다수의 학자들이 신약성경의 종말론은 '이미(실현된 종말론)'나 '아직 아니(미래 종말론)'의 어느 한 가지 측면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 종말론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즉 신약의 종말론은 '이미'와 '아직 아니'의 두 가지가 결합된 종말론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신약은 우리에게 종말이 이미 이루어졌다(실현되었다)고 말하기도 하는 한편 동시에 종말은 아직 오지 않았다(미래에 올 것이다)고 말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약의 종말의 '이미'와 '아직 아니'의 두 가지 내용을 모두 강조하는 종말론을 '시작된 종말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신약성경이 말해주는 종말론은 바로 예수님의 초림으로 종말이 '시작'되었지만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아직 종말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재 종말론(이미)'과 '미래 종말론(아직 아니)'의 이중적 구조로 신약의 종말론이 되어 있는 이유는 바로 종말의 '기독론 중심적' 특성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종말이 예수님의 오심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오심이 '초림'과 '재림'의 두 가지 단계로 이루어진다는 데서부터 이러한 신약의 종말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초림)' 오셨기 때문에 종말이 '시작'되었지만 또 한편으로 예수님은 '아직 아니(재림)' 오셨기 때문에 종말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IV. 성경적 종말론과 21세기 교회
'이미'와 '아직 아니'의 종말론적 양면성이 초래하는 교회의 긴장상황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이 기간을 우리는 교회시대라 부릅니다. 이러한 교회시대 전체가 바로 신약성경이 말하는 종말의 기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시대는 아주 독특한 시대가 됩니다. '이미' 예수님의 초림으로 인해서 종말이 '시작'된 시대인 동시에 예수님의 재림이 '아직 아니'이루어졌기 때문에 종말이 '끝'나지는 않은 시대입니다. 교회가 살아가는 이러한 종말론적 삶의 특성 때문에 교회는 언제나 세상 속에서 긴장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탄이 패배를 했지만 아직도 사탄은 완전히 '불못'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세상에 예수님의 오셔서 예수님을 믿는 교회 위에 예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은 세상은 사탄의 통치를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예수님이 재림할 때까지 사탄의 하수인으로서 세상이 교회에 가하는 핍박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내적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함에도 불구하고 외적으로는 아직 세상이 주는 고난 속에 놓여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이미 영적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한 완전한 승리는 맛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 때 받을 영광을 기다리면서 지금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시기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는 고난을 통한 영광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장차 영광이 주어질 것이지만 아직은 고난 속에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 이 종말시대의 교회가 살아야 할 삶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루시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의 구원의 축복들을 이 세상에서도 맛보기로서 미리 경험할 수도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하늘의 위로와 기쁨을 맛보기도 하는 양면성을 경험하게 됩니다. 교회는 죄로부터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완전히 구원받지는 못했습니다. 또한 반대로 생각하면 교회는 죄로부터 완전히 구원받지는 못했지만 죄로부터 구원을 받아가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미' 확보한 것과 '아직 아니' 확보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시대=선교시대
그러나 예수님의 초림으로 인한 '이미'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아직 아니'의 삶 가운데서 이러한 교회시대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교회가 예수님의 초림으로 인한 세계 복음화 사역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또한 교회는 세계복음화 사역의 달성으로 인해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교회의 이러한 세계복음화 사역의 중요성으로 교회시대는 곧 선교시대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세계복음화 사역의 중요성을 전체 종말론적인 구도속에서 살펴보면 세계선교의 의미를 더 깊이 깨닫게됩니다.
성경적인 안목으로 볼 때 이 세상의 완전한 종말인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완성은 3단계로 이루어집니다. 1단계가 예수님의 초림입니다. 그리고 2단계는 교회의 세계복음화입니다. 그리고 3단계는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세계선교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세계선교는 초림하신 예수님이 재림하시기에 앞서서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는 교회에 지상명령으로 주신 과업입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성경적 종말론의 시간동안 이 세상의 교회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사명은 바로 선교입니다.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교회의 선교를 바라보면 선교란 곧 교회가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루어진 종말을 이 세상에 선언하는 것입니다. 즉 교회는 부정적으로는 세상의 종말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긍정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선교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이 세상의 완전한 종말과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완성을 준비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선교는 이처럼 세상의 종말, 역사의 종말과 밀접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말과 선교와의 관계를 이렇게 논리적으로 도식화해 볼 수 있습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타락한 세상의 멸망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다. 이 세상이 망하고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의 재림이 선행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재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회에 의한 세계복음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세계선교는 역사의 전광판
그러므로 교회의 선교역사는 곧 주님의 재림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점이 됩니다. 세계복음화 현황이 곧 예수님의 재림을 알려주는 전광판의 시계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세계복음화의 퍼센티지(%)를 보고 종말의 시간을 우리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천국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될 때 재림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21세기 교회의 역사적 사명
사실 성경적인 종말론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사이의 전체 기간이 '종말'이기 때문에 1세기나. 10세기나 21세기나 교회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조건과 상황은 동일합니다. 교회는 1세기 때도 종말의 시기를 살았고, 또한 20세기도 종말의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21세기도 예수님의 재림이 이루어지기까지는 계속해서 종말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1세기와 21세기의 차이점이 있다면 1세기가 종말의 시작(末世之初)이라면 21세기는 종말의 종말(末世之末)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께서 21세기라는 100년 내에 재림하실 지 아니면 또 다른 천년의 시간이 지나도 예수님이 재림하지 않으실 지 아무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날과 시간은 하나님 이외에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의 날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 점점 흘러갈수록 그만큼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오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징조 가운데 가장 확실한 것은 교회의 선교상황이라는 점입니다. 선교역사를 읽어보고, 현재의 세계선교현황에 대한 소식을 읽어볼 때, 21세기의 교회는 역사상 세계복음화를 완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이 분명합니다. 21세기의 교회는 1세기의 교회가 세계선교의 장을 연 이후로 최초로 세계선교를 완성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세기를 살고 있는 교회입니다. 21세기 교회의 의미는 셰계복음화의 마무리작업을 하도록 부름받았다는 것입니다.
흥분되는 21세기의 정체는
그러므로 형제, 자매들이여! 이제 21세기입니다. 새 천년입니다. 흥분되지 않습니까? 기대가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100년에 한번 있는 한 세기를 보내고 한 세기를 맞는 시대정도가 아닙니다. 또한 천년을 보내고 천년을 맞는 1000년에 한 번 있는 시대도 아닙니다. 21세기 우리 시대의 진정한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시작된 종말의 시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수도 있는 시대라는 점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아담과 하와 이래로 인류의 타락한 역사시대가 마감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한 시대가 시작되는 것을 우리의 눈으로 목도할 수도 있는 시대라는 점 때문입니다. 우주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실 때 가졌던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계획이, 하나님의 영원한 마스트 플랜이 완성되는 것을 우리의 시대에 목도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21세기 얼마나 놀라운 시대입니까? 얼마나 놀라운 기회입니까?
세상이 기대하는 21세기의 모습
지금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면 세상은 국가마다, 기업마다, 각종 단체마다 미래연구소, 21세기 준비위원회를 만들어 21세기의 각종 청사진을 만들고 나름대로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그리고 세상이 기다리고 있는 미래의 모습을 우리는 대표적으로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즈(Times)가 1999년 12월 둘째 주에 발표한 21세기의 삶에 대한 청사진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수록된 17가지 중 몇 가지만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000년 유전공학적 기술 이용 암치료법 개발, 2010년 가사일 돌보는 애완로봇 첫 선, 2020년 1천명 탑승 시속 900Km 여객기 등장, 2030년 인공 폐, 신장, 간 등 인공장기 개발 완료와 수 십년 우주비행 위해 인간 동면기술 첫 적용, 2050년 인간수명 140세 연장. 그렇습니다. 세상은 과학기술의 폭발적인 발달에 힘입어 미래학자들이 그리는 이러한 물질적인 삶의 조건들이 어느 정도는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변화의 추세에 발맞추어 가는 길만이 적자 생존의 지름길이라 미래학자들은 외칠 것입니다.
21세기에도 바뀌지 않는 것들
그러나 교회는 어떠해야 합니까? 교회는 21세기를 맞는 세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경적인 종말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이 노래하는 21세기에 변화되어질 과학과 기술의 변화보다는 타락한 이후의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변화되지 않는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만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타락한 인간 세상의 완전한 심판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이 세상의 역사 가운데 여전히 21세기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로 인한 타락한 인류의 상태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따라서 21세기에도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미움, 시기, 질투 그리고 살인, 폭력, 음란, 거짓 등의 도덕적 부패는 계속될 것입니다. 21세기에도 전쟁과 기근과 질병은 여전히 인류를 괴롭힐 것입니다. 또한 21세기에는 환경파괴와 오염으로 인한 하늘과 땅과 바다의 재해는 더욱더 심각해 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이 타락한 결과물들이며, 또한 인간의 타락상에 대한 하나님의 현재적 심판들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라스트 30년
그러므로 다가오는 21세기, 새 천년에 세상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과 기술이 어떻게 변화된다 할지라도 세상에서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것은 바른 역사적 종말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른 역사적 종말의식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인해 이 세상의 심판이 시작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 세상은 완전한 심판으로 최후의 종말을 맞을 것이란 점입니다. 이 세상은 이런 면에서 '장망성(장차망할성)'입니다. 이것은 바로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테크노피아'를 외치는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감추어진 진리입니다. 따라서 21세기에도 교회의 사명은 여전히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21세기 교회는 세계복음화의 완성을 위해 마지막 박차를 가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21세기 새로운 천년에 주님이 재림할 날과 시간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IVF의 모든 간사들과 형제, 자매들이 마치 세상이 30년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캠퍼스의 전도와 선교에 힘을 쏟는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21세기는 어떻게 될까요? IVF 형제 자매들이여! 바야흐로 대망의 21세기를 열며 우리는 역사의 마지막 30년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라스트 30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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