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 목사직 세습! 기독교적인가?
담임목사로 오셨던 분들이 도중에 사임하셨기 때문에, 그렇지 않으면 그 교회에서 원하는 분들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자식에게 담임목사직을 맡겼다는 이야기입니다. 교회도 그 과정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더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독려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고 이들이 주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서는 담임목사직 세습이 크게 문제시 안 되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들이 심각하게 생각해야 될 것은 청빙받은 목사님들이 도중에 사임하거나, 그 교회에 오실만한 목사님들이 오지 않기로 작정했던 가장 큰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은퇴하신 목사님이 실질적으로는 은퇴하지 않고, 권한을 완전히 위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갈등으로 도중하차하게 되었고 또 그 과정을 지켜 본 청빙받은 목사들은 자기 나름대로 할 일을 가지셨기 때문에 형식만의 담임 목사직을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두 번째로 이 일은 하나님께서 교회의 소유주라는 사실을 위협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과 임재로 담임목사직이 결정되기보다 한 분의 강경한 의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식들을 교회의 헌금으로 외국에까지 가서 공부시키고 학위를 받게해 모든 조건을 구비한 다음 그 우월한 조건과 특혜로 자식을 교회의 사역자로 세우는 일입니다. 이것은 날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날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를 물어야 되는 교회가 더이상 교회로서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행위입니다. 전능하시고 엄위로우신 하나님의 교회이기 보다 공로가 많으신 목사님의 교회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게 하는, 신앙의 대상이 바뀌어지는 비극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목회자를 종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교회는 이미 종됨이 포기된 목회자, 왕으로서의 목회자, 섬김보다는 다스리는 목회자, 그러니까 성경의 말씀과 정면으로 위배된 목회자상이 만연해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들이 아무리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해도 교인들에게는 섬기는 것이 다스리는 것으로 오해되는 풍토가 전통으로 뿌리내리고 있고, 때문에 한국교회가 영적 장애 상태로 고착되어가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또 한 문제는 오늘 이 담임목사직 세습이 어떤 특정한 한 교회가 아니라 재정적으로 안정된 교회들에게서 광범위한 풍조로 형성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직접 자기 아들이나 사위를 조건을 갖추게 한 다음 후임으로 작정하든지, 또 친한 목사들끼리 서로가 서로의 자녀들을 맡아주면서 교묘한 방법으로 목사직 세습을 하려 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타락했을 때 행했던 성직매매의 모습이 변형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합니다. 심지어는 큰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선교지에서 조차 선교 프로젝트가 그 선교단체에 의해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대표의 자녀에 의해서 세습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풍조를 경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네 번째로 담임목사 세습의 가장 큰 피해자는 목사직을 물려받는 자녀입니다. 한평생 주님을 위해서 혼신을 다해 수고해서 그 많은 명성을 누려온 아버지 목사의 생애에도 비극이 될 뿐 아니라 대물림을 받은 자녀도 평생 ‘옳지 않은 방법으로 목회의 대를 이은 사람’이라는 멍에를 지게 됩니다. 아버지 대에 그 많은 고통 중에서도 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축복스러운 교회를 이루었는데 그 축복의 결론이 한국교회가 비난받는 것으로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영성도 있고 신학적 훈련도 잘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좋은 자질을 가진 젊은 목회자가 아버지의 잘못된 판단으로 평생 이 비난의 무거운 멍에를 지게 될 수 있습니다. 또 아버지 대에 고난 속에서 이룩한 영광스러운 길을 걸어 보지 못한 자녀는 마치 문제를 직접 풀어보지 않고 정답만 암기한 학생과 같은 실력으로 고정되어 있기 쉽습니다.
물론 어떤 교회는 정말로 한국교회가 목사직을 고통스럽게 여길 때, 그 아들이 아버지가 간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 온 교회가 그 아들 목사를 담임으로 청빙한 성공 사례도 있습니다. 또 가부장적인 한국의 전통 목회로서 굳어있던 교회를 외국에서 교육받고 좋은 단체에서 훈련받은 아들 목사가 바람직한 풍토로 개혁하는 긍정적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교회의 조직이나 기풍을 쇄신하면 원로목사가 세운 전통에 위배된다고 거부감을 갖는데, 아들 목사가 새롭게 교회를 일신한다면 원로 목사인 아버지의 너그러운 협조를 얻기가 비교적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는 극히 적은 특수한 몇 교회이고, 이미 안정된 목회로 쌓아놓은 부와 명예와 편안함과 풍족함 속에서 이제껏 살아온 자녀들에게 대물려지는 작금의 현상은 우려할 만한 것이고,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을 일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될 대상들에게 비난거리가 되고 비아냥거림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 근래 대형사고 때마다 교인들의 추한 모습이 계속 회자되었는데, 이 목사직 세습은 한국교회가 다시 한번 크게 타락하는데 기여할 통탄스러운 전조임이 분명합니다.
한번은 제가 중국의 유명한 도예가인 주락경 선생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작품을 자식에게 물려줄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니, 왜요?”
“왜냐하면 내 자식이 도예에 재능이 있다면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발전하고 그것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내 자식에게 재능이 없다면 내가 준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 아닙니까?” 한 예술가의 말입니다.
이 세속적인 원리가 교회 안에서까지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면 앞으로 교회는 감당할 수 없는 비극적인 사건들을 겪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바로 바라봐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하나님께서 주인되심을 선언하며 주인되시는 주님의 뜻 앞에 철저히 복종하는 겸허한 모습의 이상(理想)을 찾아가야 됩니다
*홍정길/남서울은혜교회 담임목사
홍정길
교회에 대해서 무관심하던 일반 신문, 방송 매체들이 한국교회의 담임목사직 세습에 대해서 교회 내부의 의견까지 개진하며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과연 이 세습이 왜 생겨나게 되었고, 왜 문제가 되는가를 한번 심도 있게 논의해 보아야 할 일이라 생각됩니다. 목회 세습에 있어 가장 대표적으로 손꼽힌 어떤 교회는 실제로 좋은 후임 담임목사님을 청빙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었습니다. 교회는 청빈했던 목사님들이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보며 여러 모습으로 도왔고, 또 그 분들을 차례 차례로 담임목사로 세우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들은 결국 교회를 사임하시고 대신 원로목사님의 아들이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요즘 또 가장 표면적으로 공격의 대상이 된 모 교회에서도 목회자 후임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하고 나름대로 준비를 해왔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생각하고 준비하여 청빙한 목사님들은 오시기를 거절했습니다. 이 교회의 후임이 될만한 분들을 찾고 찾아서 계속 접촉했지만 결국 그 분들은 모두 크고 영광스러운 그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사랑하는 아들에게 맡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담임목사로 오셨던 분들이 도중에 사임하셨기 때문에, 그렇지 않으면 그 교회에서 원하는 분들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자식에게 담임목사직을 맡겼다는 이야기입니다. 교회도 그 과정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더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독려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고 이들이 주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서는 담임목사직 세습이 크게 문제시 안 되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들이 심각하게 생각해야 될 것은 청빙받은 목사님들이 도중에 사임하거나, 그 교회에 오실만한 목사님들이 오지 않기로 작정했던 가장 큰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은퇴하신 목사님이 실질적으로는 은퇴하지 않고, 권한을 완전히 위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갈등으로 도중하차하게 되었고 또 그 과정을 지켜 본 청빙받은 목사들은 자기 나름대로 할 일을 가지셨기 때문에 형식만의 담임 목사직을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결국 목사 세습제는 한 목사의 장기집권의 산물입니다. 이것이 담임목사직 세습의 첫 번째 문제가 됩니다.
두 번째로 이 일은 하나님께서 교회의 소유주라는 사실을 위협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과 임재로 담임목사직이 결정되기보다 한 분의 강경한 의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식들을 교회의 헌금으로 외국에까지 가서 공부시키고 학위를 받게해 모든 조건을 구비한 다음 그 우월한 조건과 특혜로 자식을 교회의 사역자로 세우는 일입니다. 이것은 날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날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를 물어야 되는 교회가 더이상 교회로서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행위입니다. 전능하시고 엄위로우신 하나님의 교회이기 보다 공로가 많으신 목사님의 교회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게 하는, 신앙의 대상이 바뀌어지는 비극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목회자를 종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교회는 이미 종됨이 포기된 목회자, 왕으로서의 목회자, 섬김보다는 다스리는 목회자, 그러니까 성경의 말씀과 정면으로 위배된 목회자상이 만연해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들이 아무리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해도 교인들에게는 섬기는 것이 다스리는 것으로 오해되는 풍토가 전통으로 뿌리내리고 있고, 때문에 한국교회가 영적 장애 상태로 고착되어가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또 한 문제는 오늘 이 담임목사직 세습이 어떤 특정한 한 교회가 아니라 재정적으로 안정된 교회들에게서 광범위한 풍조로 형성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직접 자기 아들이나 사위를 조건을 갖추게 한 다음 후임으로 작정하든지, 또 친한 목사들끼리 서로가 서로의 자녀들을 맡아주면서 교묘한 방법으로 목사직 세습을 하려 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타락했을 때 행했던 성직매매의 모습이 변형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합니다. 심지어는 큰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선교지에서 조차 선교 프로젝트가 그 선교단체에 의해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대표의 자녀에 의해서 세습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풍조를 경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네 번째로 담임목사 세습의 가장 큰 피해자는 목사직을 물려받는 자녀입니다. 한평생 주님을 위해서 혼신을 다해 수고해서 그 많은 명성을 누려온 아버지 목사의 생애에도 비극이 될 뿐 아니라 대물림을 받은 자녀도 평생 ‘옳지 않은 방법으로 목회의 대를 이은 사람’이라는 멍에를 지게 됩니다. 아버지 대에 그 많은 고통 중에서도 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축복스러운 교회를 이루었는데 그 축복의 결론이 한국교회가 비난받는 것으로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영성도 있고 신학적 훈련도 잘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좋은 자질을 가진 젊은 목회자가 아버지의 잘못된 판단으로 평생 이 비난의 무거운 멍에를 지게 될 수 있습니다. 또 아버지 대에 고난 속에서 이룩한 영광스러운 길을 걸어 보지 못한 자녀는 마치 문제를 직접 풀어보지 않고 정답만 암기한 학생과 같은 실력으로 고정되어 있기 쉽습니다.
물론 어떤 교회는 정말로 한국교회가 목사직을 고통스럽게 여길 때, 그 아들이 아버지가 간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 온 교회가 그 아들 목사를 담임으로 청빙한 성공 사례도 있습니다. 또 가부장적인 한국의 전통 목회로서 굳어있던 교회를 외국에서 교육받고 좋은 단체에서 훈련받은 아들 목사가 바람직한 풍토로 개혁하는 긍정적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교회의 조직이나 기풍을 쇄신하면 원로목사가 세운 전통에 위배된다고 거부감을 갖는데, 아들 목사가 새롭게 교회를 일신한다면 원로 목사인 아버지의 너그러운 협조를 얻기가 비교적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는 극히 적은 특수한 몇 교회이고, 이미 안정된 목회로 쌓아놓은 부와 명예와 편안함과 풍족함 속에서 이제껏 살아온 자녀들에게 대물려지는 작금의 현상은 우려할 만한 것이고,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을 일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될 대상들에게 비난거리가 되고 비아냥거림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 근래 대형사고 때마다 교인들의 추한 모습이 계속 회자되었는데, 이 목사직 세습은 한국교회가 다시 한번 크게 타락하는데 기여할 통탄스러운 전조임이 분명합니다.
한번은 제가 중국의 유명한 도예가인 주락경 선생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작품을 자식에게 물려줄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니, 왜요?”
“왜냐하면 내 자식이 도예에 재능이 있다면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발전하고 그것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내 자식에게 재능이 없다면 내가 준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 아닙니까?” 한 예술가의 말입니다.
이 세속적인 원리가 교회 안에서까지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면 앞으로 교회는 감당할 수 없는 비극적인 사건들을 겪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바로 바라봐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하나님께서 주인되심을 선언하며 주인되시는 주님의 뜻 앞에 철저히 복종하는 겸허한 모습의 이상(理想)을 찾아가야 됩니다
*홍정길/남서울은혜교회 담임목사
출처 :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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