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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교(儒敎)란 무엇인가]

어노인팅 2006. 11. 17. 12:33
[유교(儒敎)란 무엇인가]

徐正淇 (東洋文化硏究所 所長)

사람답게 사는 길을 밝히고, 인간본래의 의미를 찾아서 행복이 넘치는 대동세계를 건설하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유교의 진리는 공자(孔子)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공자는 인간의 본성이 어질다는 인(仁) 사상을 기초로 하여 인도주의를 주장하였다. 인은 사랑의 원리요, 착한 마음씨로서 모든 사람이 본디 타고난 고유한 인간성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늘 땅 사이의 만물 가운데서 가장 신령한 존재이고, 가정과 나라 및 세계를 경영하는 중심체이다.

인간다운 삶은 바로 이 인간성을 밝혀서 지혜롭고 착하고 용기있는 인격을 갖추어 자연법칙에 투철한 하늘 땅의 도덕을 지키고, 사회질서에 철저한 인생의 윤리를 실천하여 행복한 가정, 밝은 사회,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는데서 인간의 본의(本義)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유교는 이와 같이 완전한 인격을 추구하므로 한 평생 배우기를 좋아하고 예절을 즐겨 찾는다. 유교의 경전을 4서5경이라고 하는데 그 학문범위가 대단히 넓은 것은 인간의 지식을 넓혀서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아름다운 문화사회를 경영하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게 하기 위함이다.

'논어' '대학''중용''맹자'를 사서(四書)라고 하는데 모든 유교인의 기본자질을 기르는 정치 도덕 사회 문화의 준칙을 설파한 내용이며, '주역''서전''시전''예기''춘추'를 오경(五經)이라고 하는데 공자가 직접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교육과목이다.

'주역(周易)'은 사물의 본질과 구조를 밝히는 철학서요, '서전(書傳)'은 이상정치의 대도를 밝힌 정치서요, '시전(詩傳)'은 인생의 정서를 순화하는 문학서요, '예기(禮記)'는 국가의 제도와 가정의례를 밝힌 예법서요, '춘추(春秋)'는 사실을 정직하게 기록하고 엄정하게 비판하는 역사서이다.

이러한 유교의 경전내용은 그 분야가 대단히 넓고, 그 깊이가 지극히 깊어서 간단히 요약하여 말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러나 그 요체를 정리하면 대개 다음과 같이 분류하여 논할 수 있다.

우주론

유교의 우주론은 천지개벽의 창조론과 만물생성의 진화론을 아울러 포섭하고 있다. 우주에는 대통일의 이치가 상대세계의 만물을 통일하여 주관한다. 우주는 하나의 기(氣)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생성변화작용에 의하여 하늘 땅과 만물이 생겨나왔는데 현상만물의 유전변화 속에는 태극(太極)의 원리가 있다. 따라서 물질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이 있으므로(有物有則) 자연법칙은 천리(天理)로 존중하여 순리로 하면 생존하고 역리로 하면 멸망한다는 논리를 정리하였다.

인생론

유교의 인생론은 우주만물을 주체적으로 경영하여 가장 보람있는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는 삶이다. 인간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즉 사랑, 정의, 예절, 지혜, 믿음의 아름다운 인간성을 개발하여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며,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어른과 어린이가 질서를 지키며, 벗을 믿어 의리를 지킨다. 사람이 더불어 삶에 있어서 성실성과 정직성 그리고 정확성은 공동의 선으로서 인간이 끝까지 지켜야할 중요한 가치이다.

정치론

유교정치는 공도정치(公道政治)를 추구한다. 그리하여 성왕(聖王)이 대통(大統)을 이어가는 화평세계를 이상으로 한다. 국민은 나라의 근본이요, 정치는 민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최선의 길이다. 가장 훌륭한 어진이를 나라의 지도자로 추대하고, 능력자를 관료로 등용하여 도덕으로 다스리고, 민심을 받들어서 행정하는 것이다. 식량정책, 국방정책, 교육정책은 최우선으로 추진하고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오복(五福)을 누리게 하는 문명사회를 개척하는 것이 유교의 정치 이상이다.

교육론

유교의 교육론은 인간성을 함양하여 인격을 완성하는 것을 그 이념으로 한다. 옥돌도 다듬지 않으면 그릇을 만들지 못하고, 사람도 배우지 않으면 도리를 알지 못한다. 태교(胎敎)를 비롯하여 유아교육, 소학교육, 대학교육에 이르기까지 지, 덕, 체(知德體)를 골고루 발달시켜서 원만한 인격과 탁월한 능력을 배양하는 교육을 매우 중시한다. 스승은 어버이처럼 존경하고 학생은 제자로 삼아 너그럽게 사랑하여 차별없이 가르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역사론

유교의 역사론은 도덕적 사관으로 인류의 발전을 지향한다. 인류는 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발전한다. 따라서 과거의 역사는 오늘의 거울이며 미래를 개척하는 원동력이다. 춘추대의(春秋大義)는 역사가의 양심에 의한 정직한 필법(筆法)을 생명으로 하여 도덕정치를 높이고 무력통치를 낮추며, 문화사회를 중심으로 하고 야만사회를 변두리로 하며, 선행을 표창하고 악행을 징계하여 인류역사의 영원한 발전을 추구하는 대원칙을 밝히는 것이다.

이상에서 논한 분야 이외에도 유교의 진리는 대단히 많이 있는데 가령 사생관(死生觀)이라든가 절의정신(節義精神) 또는 관혼상제(冠婚喪祭-가정의례 사이트를 보세요)의 통과의례와 같은 것도 유교의 중요한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유교의 사생관은 순리적으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다는 생각이다. 이승과 저승이 결국 하나의 세계이므로 살아서는 조상을 섬기고, 죽어서는 자손으로부터 제사를 받으며 명복(冥福)을 누리는 것이다. 따라서 유교인은 죽음을 자기집에 돌아가는 것(視死如歸)처럼 가볍게 여기면서 오히려 살아서 꿋꿋하게 절의를 지켜서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 것을 더욱 중대하게 여긴다.

결국 유교의 진리는 인간 완성의 길을 현실 속에서 찾아 가장 참되고 착하고 아름답게 자기인생을 개척하여 이승에서의 삶에 한을 남기지 않는데 있다.

오늘날 유도문명(儒道文明)의 원형은 오직 우리나라에만 남아 있으니 그것은 일찍이 우리 선현들이 사문동래(斯文東來)의 위대한 역사를 창조했던 노력의 산물이다.

유도문명의 원형은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에 있어서 천하의 정의(正義)를 스스로 주체하여 문명의 중심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학(儒學)을 전공한 학자나 정치인은 도덕적으로 인류의 사표(師表)가 되고, 정치적으로 세계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동양은 상고로부터 요(堯), 순(舜)의 윤집궐중(允執厥中)으로 비롯하는 도통(道統)과 협화만방(協和萬邦)으로 시작하는 대통(大統)의 이념이 홍범9주(洪範九疇)의 황극(皇極)사상으로 정립되어 우(禹), 탕(湯), 문무(文武)로 계승발전되면서 위대한 도덕정치의 문화전통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춘추시대(B.C. 722~481)에 이르러 윤리도덕을 숭상하는 왕도(王道 : 王은 大의 뜻임) 정치가 무너지고, 무력과 술수를 앞세운 패권(覇權)정치가 발흥하여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진 까닭에 대통이 단절되었으나 도통(道統)만은 춘추(春秋)를 편수하여 당시의 정의를 밝힌 공자(孔子)가 계승하였다.

공자가 계승한 도통은 춘추대의(春秋大義)를 통해 계승했으니 그것은 천하의 대의(大義)를 자임(自任)한 것이다. 본래 천하의 대의는 천자(天子)가 자임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통을 계승한 천자가 천하대의를 자임해서 도통까지 아울러 계승해야만 황극(皇極)을 건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춘추시대의 천자들이 천하의 정의를 외면하므로 부득이 공자가 천하대의를 자임하고 역사를 심판하면서 말하기를 "나를 아는 것도 오직 춘추요, 나를 죄 줄 것도 오직 춘추이다."라고 하였다.

맹자(孟子)는 공자의 춘추정신을 계승하여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역설하고 인류를 해치는 이단사설(異端邪說)을 깨끗이 물리쳤으며 정자(程子)는 춘추전(春秋傳)을 지어서 무력(武力)과 술수로 다스렸던 진(秦), 한(漢), 당(唐)의 타락한 정치사를 고발하고 의리학(義理學)을 고취했으며 주자(朱子)는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엮어서 천하의 대통을 뚜렷하게 밝히고 외적의 침략에 비타협적 복수론을 주장하였다.

우리나라 송자(宋子 : 尤庵 송시열)는 청(淸)나라가 명(明)나라를 멸망시키고 도덕문화를 말살하는 도통단절의 위기에 분연히 일어나 천하정의를 자임하여 공자의 춘추대의를 선양하고 주자의 강목(綱目)정신을 고취하면서 효종(孝宗)에게 북벌(北伐)을 권하여 청나라를 멸망시켜서 복수설치(復讐雪恥)함과 동시에 명나라를 광복하여 천하문명을 다시 복원할 것을 주장하였다.

청나라의 침입으로 중원에 대통과 도통이 모두 단절된 시기에 송자는 조선왕조에서 천하대의를 밝혀 의리학을 크게 진작하였으니 이것은 조선의 유학이 세계의 중심적 위치를 점유한 역사로 중국유학의 도통이 처음으로 해외로 건너간 커다란 사건이었다.

도통을 계승한 조선의 유학은 효종원년(서기 1650년)부터 천하정의의 주체로 등장하여 대단한 활력으로 약진한다. 개인의 수신(脩身)공부를 천하도덕의 문제와 연결하고 국내의 정치현실을 국제적 시각에서 해결하려는 고도의 문명사조가 크게 일어났다. 이것은 중국유학의 지류(支流)로서 면면히 이어왔던 조선의 학풍이 천하유도(天下儒道)의 본류(本流)로 변하면서 학문적 자신감과 도덕적 긍지가 충만했다.

이러한 춘추학(春秋學)이 한 번 일어나자 이 땅의 학자들은 질직홍의(質直弘毅)한 기상과 실천력행(實踐力行)하는 정신을 갖추어 그 재능과 도량이 모두 천하를 경영할만 하고 그 기풍과 절조는 모두 세상을 감동시킬만 하였다.

도덕의 힘으로 역사의 정통성을 수호하고 천하통일로 국가의 주체성을 확립하려는 조선조의 도통자임(道統自任) 정신은 근세 300년 동안 인문주의적 지성을 고도로 계발하여 의례, 제도, 문장에 있어서 천하의 보편적 규범을 완연히 갖춤으로써 유도문명의 원형을 현대에 전해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것은 세계 속의 한국문화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며 근세 유교의 종주국(宗主國)으로서의 사명을 완수한 것이니 우리나라의 유림에게는 이와같이 위대한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야 할 책무가 있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 앞으로 천하도덕을 자임하는 기걸찬 정신이 일어나야만 천하정의의 주체로 다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산림학자양반(山林學者兩班)의 가정문화를 재건하자]

徐正淇

조선은 양반(兩班)의 나라라고 할 때에 양반은 관료(官僚) 양반을 지칭한 것이 아니고, 산림학자(山林學者) 양반을 지칭한 것임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관료양반은 문관(文官)의 동반(東班)과 무관(武官)의 서반(西班)을 합친 관료계급을 지칭한 말이었으나 조선왕조 중엽인 병자호란 이후에 관료계급과는 상관없이 향촌에서 훌륭한 유림(儒林)의 가문을 지칭한 말로 그 의미가 전화(轉化)하였는데 이른바 갈력근사군친왈양(竭力勤事君親曰兩)이요, 진심절지충효왈반(盡心切志忠孝曰班)이라는 우리나라의 독창적인 양반개념이다.

이것은 있는 힘을 다하여 부지런히 임금과 어버이를 섬기는 것을 두 가지 행실이라고 하며, 마음을 다하여 절실하게 충과 효를 지향하는 것을 똑같이 분명하게 한다는 의미였으니 나라에 충성하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것을 지상명제로 여기는 춘추정신(春秋精神)의 산물이다.

병자호란에 인조(仁祖)가 삼전도(三田渡)에서 오랑캐 추장에게 항복하자 사림(士林)세력이 청나라에 종속한 굴욕을 피하여 산림(山林)으로 숨어 버리니 이후 사림세력은 산림세력으로 발전하여 오로지 윤리도덕을 지키고 학문예술을 연마하면서 춘추대의(春秋大義)를 선양하며 예의염치(禮義廉恥)를 고취하고 충효절의(忠孝節義)를 숭상하여 동방예의를 수호하는 세력으로 부활하였다.

이 후 관료양반인 사대부(士大夫)계급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급격히 떨어져 버렸고, 산림학자에 대한 존모감(尊慕感)이 맹렬하게 일어났기 때문에 일반대중의 학문적 관심도 과거(科擧)를 위한 공거문자(公車文字)에서 수신(修身)을 위한 윤리도덕으로 옮겨가게 되었으므로 지식인의 행동거지가 매우 단정하여 사회의 모범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도덕학풍이 이미 과거제도가 완전히 폐지된 왜정시대까지도 구학(舊學)으로 남아서 이어졌으니 향촌의 산림에서 벼슬을 단념하고 오로지 평생을 인격수양에 전념하면서 가문의 명예를 지켜온 세월이 장장 300여년 이었다. 그리하여 향촌마다 자연적으로 양반가(兩班家)라는 이름이 전파하여 외세에 종속한 현실정치 참여자를 호로(胡虜)라고 지칭하면서 구별하였으니 관료양반의 대칭은 상민(常民)이었지만 산림학자양반의 대칭은 호로이었는데 민족을 배반하고 오랑캐의 포로가 되었다는 뜻이다.

오랑캐의 지배하에 국가개혁이 길이 막히자 산림학자양반은 가정개혁을 통한 사회개혁의 길을 추구하였으니 향촌에 서원(書院)을 창건하고 서당을 열어서 훈장이나 접장(接長)을 자임하여 서민의 자제를 교육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창(社倉)을 만들고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하여 대중과 더불어 살면서 이풍역속(移風易俗)에 심혈을 기울여 가정윤리를 강조하고 국풍(國風) 쇄신을 선도하였기 때문에 향토문화 발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리하여 부귀권세(富貴權勢)를 외면하고 청풍고절(淸風高節)을 지키는 조선 학자양반 집안의 명예로운 가풍은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으므로 유교의 윤리도덕으로 가정을 개혁하는 신풍조가 일어났다.

국가가 외세에 종속된 어려운 시대에 가정이 부귀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잘 사는 가정보다 바르게 사는 가정을 경영하여 오로지 수신제가(修身齊家)에 힘쓰면서 효제(孝悌)의 가정윤리를 세우고 관혼상제(冠婚喪祭)의 가례(家禮)를 지키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였으니 집안에 사치와 방탕을 엄금하고 검소질박한 생활속에서 단아한 선비의 행실이나 고결한 군자의 품격을 갖추려고 노력하였으며 그러한 노력의 결실은 결국 모범가정으로 드러나서 도덕학문이 크게 흥행하여 동방예의의 나라로 발전하는 모태가 되었다.

집에서는 처자와 형제를 단속하여 불효불목을 경계하고, 나라에서는 현실과 타협해서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것을 엄금하여 불충불의를 징계하였으니 정치적으로 국가의 정통성과 주체성을 수호하고, 사회적으로 인간의 신뢰관계를 공고히 하여 도덕국가를 건설하려는 높은 열망이 충일하므로써 산림학자양반의 정신문화가 시대를 초월하여 흠모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니 오늘날도 신분에 관계없이 행실이 있는 사람을 양반이라고 부르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군유(群儒)를 집대성한 송자학(宋子學)]

徐正淇

공자(孔子)는 군성(群聖)의 도덕을 집대성(集大成)했고, 주자(朱子)는 군현(群賢)의 사상을 집대성했고, 송자(宋子)는 군유(群儒)의 학설을 집대성했으니 주자학(朱子學)은 공자의 학문으로 들어가는 바른 길이요, 송자학(宋子學)은 주자의 학문으로 들어가는 바른 길이다.  

나는 일찍이 송자대전(宋子大全)을 읽고 그 학문의 조예가 깊음과 그 의리의 체계가 엄밀함과 그 도덕을 자임하는 사상의 철저함과 그 천하의 정의를 주체하는 호연한 정신에 감격하여 시를 지어서 노래하였으니 다음과 같다. 



하늘 땅 아득히 활짝 열린 뒤, 세월은 흘러 억만년을 돌았네,

맑은 얼 힘찬 넋 한데 엉기어, 오묘하게 펼친 그림 아름다워라.

아침 햇살 고운 땅 길이 빛나, 신령한 기운 자욱히 피어나니,

하느님이 그윽히 점지하여, 이 강산에 한 사람 빼어 낳도다.



우주의 진리를 한 마음에 다 갖추고, 사람의 정신 온누리에 밝혔네,

성인의 도덕 오직 홀로 이었거니, 바른 학문 이에 다시 높혔도다.

태극이 번쩍 음과 양을 가르니, 음양은 도리어 태극을 경영하네,

만물의 현상 모두 그러하거니, 사람이 하는 일 이에 위대하여라.



생각은 찬이슬 맺힌 밤에 모으고, 책은 밝은 창 아래 길이 읽었네,

한 치의 지식이 점점 많아지나니, 의심 절로 풀리어 아주 뚜렷한 것을,

백년의 삶 속에 얻고 잃음 없나니, 천년의 마음 위에 기뻐하고 성냈도다.

난초가 불쌍하여 곧은 절개 지키고, 성인이 부끄러워서 장엄한 길 걸었네,



오랑캐 날뛰어 해와 달이 희미할제, 복수설치의 깃발 높이 세웠도다.

북벌의 큰 계획 귀신도 울었거늘, 한 번 떠난 임은 어이 다시 못오시나.

은밀한 곳에서 빈집 도적 뉘 막으며, 어지러운 때에 공경심을 어이 지키리,

휘몰아치는 태풍은 동서남북 없나니, 뛰노는 철부지 부엌에 불난 줄 몰라라.



취하여 살다가 꿈 속에 죽는 이들, 무지개 잡으려고 애태우도다,

흥하고 망하는 기회 바삐 엿보지만, 모두 허무하여 함께 뉘우칠 것을,

부지런히 헤매는 벌은 봄날 한 철이요, 천리마는 늙어도 만리 밖을 생각하네,

바람 달 있는 산에 신선이 모이고, 비단 구슬 걸린 집에 도깨비가 드는 것을,



높은 하늘 넓은 땅, 활달하게 사는 길, 원망과 허물이 아예 없는 법,

한 마리 말타고 푸른 산에 들고, 외로운 조각배로 바다물결 헤쳐 갔도다.

세상 일이야 정해진 운수 있거니, 옛사람 가던길 눈 앞에 있도다.

영화도 오욕도 모두 끊어진 자리에서, 고요히 눈감고 빙그레 웃는 모습이여,



사람의 형벌 저 세상에는 못 따라가니, 태연히 앉아서 사약을 마셨네,

꿋꿋한 정신 쇠와 돌을 꿰뚫으니, 높은 기상 우러러 하늘을 찔렀도다.

위대한 스승을 오래 찾지 않으니, 빛나는 말씀이 먼지 속에 묻혔도다.

새 세상에 그 누가, 푸른 하늘에 태양처럼 밝은 그 마음 헤아리리.



송자(宋子)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이다. 선조40년 11월 12일 충북 옥천군 구룡촌에서 탄생하여 숙종 15년 6월 8일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서거하시니 향년이 83세였다. 송자의 학문은 주자학을 정통으로 계승하여 우리나라의 철학사에 새로운 인생론을 정립하므로써 사람이 곧 우주를 경영하는 주체임을 밝혔고, 그 사업은 효종대왕과 함께 병자호란에 대한 복수설치(復讐雪恥)를 위하여 청나라를 정벌하고 명나라를 재건하는 것이었으나 김자점(金自點)의 밀고로 청나라의 탄압을 받아 좌절되고 또한 효종의 갑작스런 승하로 북벌(北伐)의 대계(大計)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멸청복명(滅淸復明)의 대의가 뚜렷이 밝혀져서 우리 민족의 주체사상이 확립되고 우리나라의 독립정신이 크게 일어났으니 이후 300여년간 이어온 배청항일(排淸抗日)투쟁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송자대전(宋子大全)은 215권에 이르는 바 우리나라 유학사에 있어서 춘추대의(春秋大義)와 의리사상의 징표로 받들어 왔던 것이나 왜적치하에 송자학 말살정책으로 인하여 심하게 굴절왜곡 되었으니 이 땅에 천하의 도덕을 걱정하는 정의로운 선비가 사라지고, 시류에 영합하여 개인 영달에만 급급한 부유곡사(腐儒曲士)가 쏟아져 나온 한심한 세태로 전락한 곡절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남아 있는지? 송자대전은 읽어 보지도 않고 앵무새처럼 도청도설(途聽途說)만 일삼는 사이비 지식인의 무식이 가련하다.
(내용출처: http://my.netian.com/~bookac/ )
출처 :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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