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스크랩] 유대인의 눈으로 읽는 성서

어노인팅 2006. 10. 18. 14:34

유대인의 눈으로 읽는 성서 


 
 이진희목사

"예수는 어릴 때부터 주일마다 교회에 잘 다녔던 기독교인이었다."

이 글은 예수에 대한 한 주일학교 학생의 이미지이다. 예수는 회당이 아니라 교회를 다녔다는 것이다.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을 지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는 유대인이 아니라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이니까 그렇게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많은 기독교인들의 의식 속에 막연하게나마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사실상 2천여년동안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기독교는 헬라화되어 왔다. 서구인들에 의해 그려진 예수는 유대인 예수가 아니라 백인 예수였다. 성서는 유대인의 책이 아니라 서구인들의 책이 되었으며, 그들의 관점에서 읽혀지고 해석되어 왔다. 기독교는 서양의 종교가 되어 버린 것이다.

기독교는 유대교와 같은 유산을 이어받고 있다. 기독교의 뿌리는 바울이 말한대로 유대주의이다. 유대교는 참감람나무이다. 여기에 돌감람나무인 기독교가 접붙여진 것이다. 기독교는 헬라 종교가 아니라 유대 종교에 뿌리를 박고 있다(롬 11:17-24). 그러나 기독교는 그 뿌리를 상실하거나 아니면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바울이 우려한대로 말이다. 기독교는 고향이 아덴이 아니라 예루살렘이다(Marvin Wilson, 기독교와 히브리 유산, 22-26). 그러나 기독교는 2천년 동안 헬라화되었다. 기독교는 2천여년동안 유대교와의 반목으로 인하여 스스로 보금자리를 떠났고, 스스로 뿌리 (유대교)로부터 자신을 잘라버림으로 바울이 경고한 바가 무색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본래의 색깔이 변색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 예수를 논하고 예수의 유대성과 성서의 유대적 배경을 말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되어버렸다. 헬라화된 기독교 안에서 유대인 예수는 이방인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기독교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한다. 헬라적인 안경을 벗어버리고 유대적인 안경을 껴야 한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예수와 유대주의와의 관계를 인정하고 예수의 유대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예수는 다른 유대인들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유대인이거나 아니면 유대교와 결별한 사람이었다고 가르쳐왔다. 이러한 배경에는 2천여년동안의 기독교와 유대교의 반목과 갈등의 역사가 자리잡고 있다. 기독교는 초대 교회 이후로 2천여년동안 반-셈족주의 (anti-semitism)를 견지해왔다. 그래서 신약 성서도 그런 입장에서 보아왔던 것이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있는 한 신약 학자가 학생들에게 "훌륭한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여러분 안에 있는 유대인을 죽여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즉 모든 유대적인 것들을 다 버려야 좋은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교수님, 예수를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예수의 종교는 유대교였다. 예수는 신실한 유대인이었다. 예수는 한번도 동족을 배반하신 일이 없다. 자신을 그들로부터 분리시키신 일이 없다. 유대교와 상반된 가르침을 주신 일도 없다.  유대주의를 부정하신 일이 없다. 좋은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유대교적인 것을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유대교적인 것을 부정하는 것은 곧 예수를 부인하는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예수를 만나는 사람은 유대주의를 만난다고 했다(1980, 4, 28). 그러나 브래드 영이 말한대로 "기독교는 유대주의를 배척함으로서 예수를 잃어버리게 되었다"(The Jewish Theologian, xviii).신학자들은 성서를 교회에 의해서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씌어진 기독교 문헌(유대인들 책이 아니라!)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신학적 입장에서 읽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들을 1세기 유대 청중들의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예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기독교의 뿌리를 다시 회복하고, 기독교의 본래의 색깔을 다시 찾고, 성서의 본래의 메시지를 다시 듣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의 유대성과 성서의 유대적 배경을 이해해야 하며, 성서를 유대적인 관점에서(반유대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읽어야 할 것이다.

예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가 1세기 유대인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역사적 예수 연구의 선구자인 슈바이쩌는 예수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의 유대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캐제만이나 보른캄, 버메스(Vermes), 플루써(Flusser) 같은 학자들은 우리가 역사적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는 양식 비평을 통해서보다도 1세기 유대적 배경에서 예수를 보아야 한다는 데 일치하고 있다. 독일의 성서 신학자 Franz Mussner는 하나님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이나,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 창조, 죄사함, 언약, 종말론 등 주요 사상에 있어서 유대주의와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예수를 통하여 유대인들의 위대한 유산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믿는다(Tractate on the Jews, 113). 말틴 부버가 예수를 "the central Jew"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Pinchas Lapide, The Sermon on the Mount, 8).

예수가 1세기 유대인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는 1세기 유대 땅을 거닐었던 분이며, 유대적 환경에서 자라시고 활동하셨다. 그는 유대의 가르침을 받으셨으며, 유대 사상에 익숙해 있던 분이다. 그는 다른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으시고 안식일을 지키시고 유대 절기들을 준수하셨다. 그는 성전과 회당을 출입했으며, 히브리 성서에 익숙해 있었다. 그의 종교는 유대교였던 것이다. 그의 제자들도 유대인들이었으며, 그를 따르던 사람들도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예수가 아시던 세계는 바로 유대인들의 세계였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를 1세기 유대주의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예수는 결코 시공을 초월해서 활동하신 분이 아니다.

이러한 예수의 생애와 사상을 기록한 복음서도 유대주의로 가득차 있음을 알 수 있다. 복음서는 유대인 저자들에 의하여 기록되어졌다(누가를 유대교로 개종한 유대인으로 보기도 하지만!). 성공회의 스퐁 주교(John Shelby Spong)은 최근의 그의 저서 "Liberating the Gosples"에서 복음서는 유대인들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23-37). 그가 그렇게 하고 있는 이유는, 이러한 사실을 인식할 때 비로소 우리는 복음서를 유대인들의 눈으로 보게 되며, 그래야 복음서를 바로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유대적인 컨텍스트를 무시하거나 유대인들의 사고방식, 유대의 관용어귀, 그리고 더 나아가서 유대인들의 역사를 이해하지 않고는, 유대인들의 작품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복음서가 그러한 책인 것이다.

스퐁은 특별히 복음서들이 유대인들이 저술하는 방식으로, 즉 미드라쉬(midrash) 형태로 예수의 생애와 메시지를 기록했으며, 연대기적으로가 아니라 예수의 생애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들을 유대인들의 절기와 통과제의의 주기에 따라 기록한 것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대인들의 책을 헬라적인 관점에서 또는 서구적인 관점에서 읽다 보니 이해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즉 역사적 정확성의 문제나 서로 모순되는 기록들--이 생기게 되는 것이라고 하는 그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32-33). 스퐁이 지적한대로 불행하게도 이러한 유대인들의 작품이 이방인들의 "포로"가 되었으며, 2천여년동안 가장 오해되어온 책이 되고 만 것은 사실이다(39-55). 이렇게 2천여년동안 이방인들에게 "포로"가 되어 잘못 이해되어온 "유대인들의 책"인 복음서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복음서를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유대인들의 눈으로 읽어야 한다.

최근 40여년동안 예수를 유대주의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들이 많이 있어왔다.

그 중에 대표적인 학자들로는 사해사본과 유대 문헌의 전문가인 유대인 랍비 게자 버메스(Geza Vermes)와 1세기 유대적 배경에서 복음서와 바울 서신을 연구해온 개신교 신학자 샌더스(E. P. Sanders)가 있다. Vermes는 그의 책 "Jesus the Jew"와 "The Gosple of Jesus the Jew"에서 예수가 어떤 유대인이었는가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예수를 당시의 호니(Honi)나 하니나(Hanina b. Dosa)와 같은 기적과 이적을 행하는 경건한 하시딤에 속하는 카리스마적인 인물이었으며(Jesus the Jew, 58-82), 개인적으로 아버지로 인식하면서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와 회개의 메시지를 전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The Gospel of Jesus the Jew).

샌더스는 유대적 배경에 대한 고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Jesus and Judaism"에서 주로 예수의 죽음에 대한 객관적인 이유를 찾는데 대부분 지면을 할애하였다. 그는 예수를 종말론적인 예언자(eschatological prophet)로 보았으며, 특별히 예수의 성전 정화 사건을 하늘로부터의 새 성전의 도래, 즉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가르치기 위한 상징적인 행위였다고 본다(61-76). 그는 예수의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은 성전 정화 사건이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종말론적인 새로운 시대(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상징적인 행위이었으나, 유대인들에게는 성전 파괴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결국 예수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294-318).

히브리 대학의 복음서 연구 전문가인 플루써 교수의 제자로서, 예수의 가르침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예수의 비유의 유대적 배경을 연구한 브래드 영(Brad Young)은 "Jesus and His Jewish Parables"을 펴냈다. 그는 예수의 비유들이 제 2차 성전 기간동안의 유대인들의 종교적 유산, 문화, 언어, 농민적 생활, 그리고 사회적 관심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특별히 랍비들의 비유들이 예수의 비유의 보다 깊은 의미를 발견하는 열쇠라고 주장한다.

예레미아스는 예수가 최초로 비유를 통해 가르친 유대인이었다고 생각하나(Jeremias, The Parables of Jesus, 12), 당시의 랍비들은 가르침의 수단으로서 비유들을 사용하였다. 이 저서에서 영은 랍비들의 비유와 연관시키면서 예수의 비유의 본래의 메시지와 비유의 보다 깊은 의미를 찾아내고 있다. 한편 "Jesus: The Jewish Theologian"이라는 저서에서 영은 예수를 "신학자"로 보면서, 예수의 가르침 속에 나타난 신학은 유대교(유대주의)에 그 기반을 두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예수께서 한번도 그의 문화적 유산이나 종교적 유산을 거부하신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한편 예수를 연구하는 유대인 학자들의 경향을 보면, 그들은 복음서 가운데 반-유대적이거나 비-유대적인 요소들은 초대 교회의 산물로 간주한다. 한 예로, 예수의 죽음의 책임은 로마인들에게 있지 결코 유대인들에게 없다고 한다. 가룟 유다에 관한 이야기나 예수의 죽음에 관련된 유대인들의 이야기는 유대교와 반목의 관계를 갖고 있던 초대 교회의 산물이라는 식으로 주장한다(Cf. Spong, 257-276). 그들은 또한 예수의 가르침들은 모두 랍비들의 가르침 가운데서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Clude G. Montefiore는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 좋은 것은 다 그 기원이 유대교에 있으나, 예수에게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것들은 다 좋지 않은 것들이라고 하는 유명한 말을 했다(Jewish Conceptions of Christianity, 249). 그는 산상 설교 가운데 4/5가 완전히 유대적인 가르침이며(The Jewish Sources, 266), 바리새파의 가르침이 복음서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The Jewish Sources, 214). 한편 벨하우젠에 따르면, 예수의 가르침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산상설교의 가르침들은 모두 다 탈무드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들이라고 한다. 랍비 Pincahs Lapide는 산상 수훈을 유대적 배경에서 연구하면서 예수의 가르침들 가운데 유대주의와 반대되거나 유대주의에서 발견할 수 없는 것들이 하나도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The Sermon on the Mount).

이와는 정반대의 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기독교인들로서, 예수는 보통 유대인들과는 다른 특별한 독특한 유대인이었으며, 예수의 가르침은 유대교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예수께서 율법(유대주의)을 폐기하셨다고 주장한다(Charlotte Kleindms은 Anti-Judaism in Christian Society에서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37명의 저명한 신학자들의 명단을 나열하고 있다). "신약 신학 사전"에서 키텔은 반-셈족주의적인 입장에서 성서를 해석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주로 복음서의 비유대적인 요소들에 관심을 갖는다. 이들이 복음서 자료들의 신빙성 여부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그것이 유대적인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어떤 자료가 유대적인 것이 아닐 때, 그것은 확실하게 예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N. Perrin, Rediscovering the Teaching of Jesus). 이것은 예수를 "out of context"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유대교인이나 기독교인 모두 변증적인 목적과 호교적인 목적으로 복음서와 랍비 문헌(1세기 유대주의)를 비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신약 성서의 배경이 되고 있는 1세기는 유대교에 있어서 새로운 종교의 출발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우리는 랍비 유대교(Rabbinic Judaism)라고 부른다.

이 기간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은 랍비들에 의하여 끊임없이 새롭게 재해석되었으며, 예수나 그의 청중들도 랍비들의 가르침에 익숙해 있었다. 예수의 청중들 가운데는 예수를 랍비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러한 랍비들의 가르침은 구전으로 계속 전해내려왔으며, 이를 우리는 이른바 "구전법"(Oral Law)이라고 부른다. 이 구전법들이 후대에 편집되었는데, 이를 "미쉬나"(Mishnah)고 부른다. 미쉬나는 대략 B.C. 150년경부터 전승되어 오던 것들을 A.D. 200년 경에 편집한 것이다.

이 미쉬나에 설명을 덧붙인 것이 바로 잘 알려져있는 탈무드(Talmud) 이다. 이 탈무드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히브리 성서와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갖고 있는 중요한 문헌이다. 탈무드에는 바빌론 탈무드와 예루살렘 탈무드, 두 종류가 있다. 바빌론 탈무드가 훨씬 방대하나, 역사적인 신빙성은 예루살렘 탈무드가 더 있다. 보통 탈무드하면, 바빌론 탈무드를 일컫는다. 바빌론 탈무드는 550년경에 집대성되었다. 그러나 오랜동안 전승되어 오던 것들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그 내용이 반드시 복음서보다 후대의 것만은 아니다. 또한 이 문헌들은 예수보다 후대의 랍비들의 가르침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그들의 가르침이 후대의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유대 랍비들은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가르침들이라고 할지라도 그 가르침의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서 유명한 랍비들의 이름을 거기에 붙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탈무드가 삶의 지혜를 담고있는 정도의 책으로만 소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러나 복음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복음서나 바울 서신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큰 도움을 주는 것이 또 하나 있는데, 신구약 중간기 문헌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는 외경과 위경이 포함된다. 이 문헌들은 B.C. 300년부터 A.D. 100년까지의 상황과 종교를 잘 반영해주고 있기 때문에 신약성서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문헌이다. 이외에도 금세기 최대의 발굴물이라 할 수 있는 사해사본도 연구 결과가 발표됨에 따라서 신약 성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구약 성서의 아람어 역인 탈굼(Targum)도 예수 당시의 사람들이 어떻게 구약 성서를 이해하고 읽었는가를 잘 보여주기 때문에 신약 성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문헌들이 1세기의 유대적 배경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학자들은 1세기의 유대교가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문헌들이 발굴되고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면 할수록 1세기 유대주의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복잡한 상황이었음을 깨닫게 해준다고 한다. 

출처 : 예수중심 JESUS CENTERED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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