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

[스크랩]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

어노인팅 2006. 7. 29. 13:08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시록 3:20)
듣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매우 소중한 기술입니다. 듣는 것은 말하는 사람을 인정해주고 수용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데 혼자 말하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바보가 된 느낌이 들고 무시당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말하기는 좋아해도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는 못합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다가도 다른 생각을 하기 일쑤이며 상대방의 이야기에서 자신과 연관된 화제를 발견하기라도 하면 우리는 그 생각에 몰두해 제대로 듣지 못합니다. 오히려 듣기는커녕 상대방이 채 끝내기도 전에 가로채서 자기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말하는 것은 자신과 연관되어 있고 듣는 것은 남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즉, 우리의 이기적인 성향으로 인해 듣기를 소홀히 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할수록 남의 이야기를 경청해서 공감하기보다 자신의 이야기에 심취하게 되며 자기 생각에 몰두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남과 깊은 관계를 맺기 힘들고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분노하게 됩니다.
남의 이야기를 잘 못듣는 습관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인간관계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필요한데, 이 관계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목표이자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기중심적인 성향으로 인해 듣기를 소홀히 하기 때문에 기도할 때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던가 하나님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 경향을 보이며 자신이 어려워졌을 때 왜 나를 미워하냐고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발견하게 되고 죄가 무엇인지 발견해서 죄로부터 돌이킬 수 있으며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시고 고난 중에 위로하시는 놀라운 위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문제는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나'일 겁니다. 아브라함, 야곱, 모세, 사무엘 등등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던 사람처럼 우리도 들을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때처럼 하나님께서 특별한 때에 나타나셔서 어떤 계시를 보여주실 필요가 없는데 그 이유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침묵하고 들을 준비가 되어있으면 우리는 언제나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속에 개입하셔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 음성을 잘 듣고 따른다면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한 생활을 누릴 수 있지만 그 음성에 반대하고 우리 생각을 고집한다면 하나님과의 교제는 단절되고 앞으로도 성령의 음성을 들을 기회는 적어집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 주변의 소리(예를 들면, 게임, 친구와의 약속, TV, 만화, 공부, 해야 할 일)를 끄세요.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려면 시끄러운 장소나 주위가 산만한 장소는 피하듯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주변의 소리를 꺼야 합니다.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분주해 있으면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둘째, 듣는 자세를 갖추세요. 듣는 자세란 몸의 자세가 아니라 마음의 자세를 의미하는데,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실 지 기대하는 자세(삼상 3:10),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서 고치려는 자세,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자세,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배우려는 자세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세가 결여되어 있다면 성경을 통해 말씀하셔도 무슨 소린지 깨닫지 못하거나 아예 무시해 버리게 됩니다.
예수님 시대에 예수님의 말씀을 배척하며 대적하는 무리들이 있었는데, 당시 종교적 지도자였던 바리새인과 제사장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죄를 지적하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장본인입니다. 하지만, 종교지도자였던 이들이 왜 하나님의 아들을 몰라봤을까요?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제사를 수행하던 이들은 스스로 하나님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을 텐데, 왜 예수님을 죽였을까요? 그 이유는 이들에게 들으려는 자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종교적인 활동을 통해 하나님을 잘 안다고 스스로 자만에 빠져있어서 정작 하나님의 음성은 듣지 못했고 예수님께서 이들의 위선을 지적하셨을 때 이들은 듣기 싫어했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에 가장 큰 적은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을 버리기 싫어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데, 만약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거부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물론이고 아무리 열심히 교회생활을 해도 형식적인 생활에 그치고 말 것이며 점점 죄악으로 빠져들어가 죄로 인해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 살아가기로 선택했을 때 우리는 함께 하셔서 우리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맛볼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해야 합니다. 민감하다는 말은 집중하는 자세와 적극적인 자세를 의미하는데, 성령님께서 말씀하실 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깨닫고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말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성경, 양심, 영적 지도자, 친구, 가족 등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우리의 잘못을 깨닫게 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인도하시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도록 도와주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사역에 민감해지려면 언제나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 잘못된 점은 없나 살펴봐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활 모든 부분을 성령께서 다스리시도록 내어드려야 합니다. 즉, 이건 내 영역 하면서 자신의 것을 고집하지 않고 주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식을 깨닫고 배워서 그대로 살아가겠다는 결단과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만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민감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구할 것만 쭉 이야기하고 자리털고 일어서서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지 못하면 우리는 여전히 죄속에서 생활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우리의 기도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이사야 59:2)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음성에 귀기울여 듣고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무엇을 가르쳐주시는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어떻게 해야 하나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듣기를 원하는가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알려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우리는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받으소서'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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