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04년 4월 27일 몽골 화요모임
장소: 몽골 울란바토르 진리의 말씀교회
설교자: 권기호
롬3-복음은능력입니다!
(로마서 1:16-17)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장 16-17절 말씀은 로마서의 주제가 되는 말씀입니다. 로마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단어는 복음입니다. 1장에서 복음이라는 단어가 6번 나옵니다. 1절에서 자신은 이 하나님의 복음을 때문에 택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9절에서는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증인이라고 고백합니다.
14-15절에서는 이 복음 때문에 자신은 빚진 자가 되었고 복음 때문에 로마에 가고자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6절에서는 자신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복음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 된다고 확신 있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그럼 로마서에 핵심이 되는 이 복음의 능력은 무엇일까요.
1. 복음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아가기는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아직도 성경책을 들고 교회에 가는 것을 부끄러워해서 성경책을 숨겨서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들에게 조차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몽골 안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적고 예수님을 믿는 다고 말할 때 불이익을 당할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몽골에 사람들이 말하는기를 복음은 자본주의에 아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자본주의자들이 전해주는 아편이 아닙니다. 복음을 모든 사람이 들어야 하는 가장 자랑스러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 우리의 어깨를 펴집니다. 가슴을 열고 당당하게 살아 갈수 있습니다. 숨어서 믿는 예수가 아니라 누구를 만나든지 떳떳하고 멋있게 전해 주어야 하는 복음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갑시다. 왜냐하면 복음을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도 복음이 없이는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여러분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초대교회에도 복음은 가난한 자들의 복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로마 사람들의 복음이 아니라 이방 유대인들의 복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도 유대교 이단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고 가장 높은 학문을 가지고 있던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바울의 많은 학문이 바울을 미치게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미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증거를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합시다.
2. 복음은 능력입니다.
복음은 땅의 능력이 아니요. 하늘의 능력입니다.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외적인 능력이 아니라 내적인 능력입니다. 한마디로 복음의 능력은 구원을 얻게 하는 능력입니다.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에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이렇게 물으면 대개는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구원이 뭐죠? 하고 질문을 하면 죽어서 천당 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런 대답이 틀린 대답은 아닙니다. 구원은 17절 말씀처럼 의와 동일한 말씀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났다. 는 말로 바꾸어 볼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구원은 단순하게 천국에 가고 안가고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을 말미암아 하나님께 의인이라는 인정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이신 칭의 (以信 稱義)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이란 무엇입니까?
첫째는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본문 안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복음과 능력은 같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곧 능력이라는 말입니다. 이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신다고 합니다.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하지 못하시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으면 천국이 너무 비좁아서 어떻게 다 살수 있을까 걱정을 합니다. 절대 그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인류가 구원 받기를 원하시며 모든 인류가 살 수 있도록 하시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힘과 능력이 부족해서 우리가 전도하고 선교해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능력이 부족해서 우리에게 전도하라 선교하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충분히 모든 인류를 한순간에 구원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계시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통해서 일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쓰임 받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우리의 모든 죄에서 용서하실 수 있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정말 우리를 죄에서 구원 할 수 있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죄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용서 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하나님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지만 정말 하나님이 나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주님은 복음과 함께 성령의 능력을 약속하셨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복음으로 이 악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단의 세력을 무찌르고 승리하며 살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성령의 권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이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은 곧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3:6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에게 말씀했지요.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바로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앞에서는 귀신도 떠나가고 죄도 달아납니다. 마귀도 예수님의 이름 앞에 벌벌 떠는 것입니다.
3. 구원의 대상은 제한이 없습니다.
16절에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구원은 제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구원을 더는 것은 동일합니다. 남자나 여자도 동일합니다. 어린아이들이나 어른에게도 동일합니다.
한국에 있을 때 이런 광고를 보았습니다. 크레용 3개가 있었습니다. 한개는 흰색, 두 번째는 검은색, 세 번째는 노란색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색일까요. 예! 정답은 살색입니다. 백인 흑인 황인종 모두 피부색깔은 다른지만 복음을 얻는 것은 동일합니다. 옛날 사람들이나 현대인이나 시대를 초월하여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원은 자신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즘도 그런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구원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구원 받는 것을 썩 좋아 하지 않습니다. 자신만 구원 받고 자신만 잘되고 자신만 천국 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모든 민족 모든 백성 모든 열방이 들어야 할 복된 소식입니다.
4.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만 살아갑니다.
순수한 복음 보다 복음에 다른 것을 첨가하려고 합니다. 초대 교회 안에서는 할례율법주의가 첨가 되었습니다. 유대인의 정통을 복음에 첨가하려는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요즘에 많은 사람들은 복음에 행위를 추가 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하지만 착하게 살아야 구원을 얻는 다는 생각들입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오늘 바울은 본문 안에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는 어떤 행위나 다른 것이 아니라 복음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이해할 때 16절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음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은 사람이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노력해서, 구제해서, 착한 일을 해서, 교회에 열심히 나와서, 헌금 열심히 해서 얻는 구원이 어느 정도나 안전하겠습니다. 불안한 것입니다. 그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믿으면서도 동시에 내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라는 이중적인 생각을 합니다.
고전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구원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얻어 집니다. 의로운 사람은 구원이 필요가 없습니다. 잘난 사람에게도 구원이 필요 없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는 것입니다. 의사가 필요한 사람은 환자입니다. 마찬가지로 죄도 없고 똑똑하고 잘 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구원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죄인이라고 느끼는 사람.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필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주게 하신 것입니다. 나에게 구원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공짜로 주신 것입니다. 구원을 값으로 계산될 수 없습니다.
엡2:8-9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7절 말씀에 두 가지 믿음이라는 단어가 쓰여 졌습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말은 영어로 말씀드리면 From과 To입니다. From은 믿음의 출처를 말합니다. 믿음은 복음에서 시작합니다. 복음 안에는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을 때만 믿음으로 얻는 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돈 때문에 믿음을 팔아 버립니다. 애인 때문에 믿음을 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의 좋을 것들을 얻기 위해 믿음을 저버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진정한 구원 얻은 자들은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으로 살아가면 믿음으로 끝내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다른 것으로 믿음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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