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의 공동체 - 세례는 언약공동체 입문의식
글=정일웅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실천신학)
그리스도 통치영역의 새 지체로 소속…은혜로운 잔치돼야 유아세례로 신앙 기초교육…입교의식 통해 구성원 인정 서약 현재 한국 교회는 세례의식에 대한 신학적이며, 목회실천적인 이해가 분명하지 못한 것 같다. 그 때문에 세례 실제는 역시 교회의 의식 중의 하나라는 이해에 한정되어 지극히 관습적이며, 형식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교회는 왜 세례를 베푸는가?
세례란 과연 무엇이며, 그 신학적인 의의와 중요성이 어디에 있는가? 이러한 물음들과 함께 우리는 세례의식에 대한 가치를 확인해 보기로 한다. 세례는 성경적으로 세례요한의 물로 세례 줌과 예수님의 세례명령(마28:19;막16:16)에 근거하여 시행하는 교회의 예식 중에 하나이다. 초기 교회는 원래 세례요한의 세례의식에서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그 의미를 더 발전시켰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것은 세례의 실제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현재화 되어 세례가 종말론적인 구원의 사건으로 이해된 것 등에서이다(행8:16;19:5;고전1:13.15;갈3:27;롬6:3;마28:19). 그리고 세례는 또한 성령의 은혜와 결부된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것은 세례요한의 세례와 구분하여, 예수의 세례를 강조한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막1:8;행1:5;8:14-25; 9:17-18;고전6:11;12:13;고후1:21이하). 그리고 성령의 능력은 역시 세례를 통하여 종말론적인 구원의 언약공동체(교회)에 새로운 영입을 보증하는 그리스도의 사건으로 이해되었다. 즉 세례 받은 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죄의 권세로부터 벗어나며(행2:38;22:6;롬3:25;히10:22), 그리스도의 몸에 지체의 관계로 통일성을 이루며(고전12:13), 동시에 도래하는 천국에 속한 자로의 인을 치심, 또는 보증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고후1:22;5:5;롬8:23).
이러한 의미를 전제한 교회의 세례의식은 8-9세기 로마가톨릭교회에서 ‘귀신축출행위’ (Exorzismus)로 발전하였다. 그것은 예수 믿기 이전의 삶은 사탄과 악마의 영에 사로 잡혀 있었으며, 이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롭게 되는 종교의식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중세 로마가톨릭교회는 세례의식을 통하여 새로운 신자가 교회에 입문(Initiatio)하는 의식으로 이해하였고, 7가지 성례의 첫 번째에 자리 잡게 되었다. 물론 종교개혁자들에 의하여 5가지 성례는 거절되었지만, 세례의 중요성은 그대로 이어졌으며, 특히 칼빈에게서 세례는 ‘새 신자가 하나님의 교회로 들어가는 것’과 ‘하나님을 알지 못한 자를 그의 집에 가족으로 받아드리는 영접의 행위’(제네바 신앙문답 323)로 해석되었다. 그리고 성경말씀의 전제하에서 세례는 성찬과 함께 성령께서 은혜를 베푸는 수단으로서 교회의 성례(Sacrament)로 불리게 되었다.
이러한 세례이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역시 세례의식은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교회의 입문의식이라는 점이다. 세례자는 세례를 받음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통치영역으로 옮겨지게 되며, 천국의 시민임과 동시에 교회공동체에 새로운 지체로서 그리스도에게 속하게 되는 소속권을 가지게 된다. 그런 뜻에서 세례의식은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과 새사람으로의 거듭남, 그리스도와의 연합, 그리고 그의 몸 된 교회의 언약공동체에 지체의 관계로 속하게 됨을 표하고, 인치는 영적인 의식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엄격하게 말해서 교회가 베푸는 세례를 받을 때부터이며, 세례를 받지 아니하면 10년, 20년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에 참여한다할지라도 그리스도의 교회, 즉 언약공동체와는 무관한 자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세례의식은 실체(實體)를 상징적 관계에서 의식(ritus)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성령과 관련하여 세례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세례의식을 성령의 개입과는 별 관계없는 하나의 의식으로만 인지하는 경향이다. 그 때문에 지금도 교회의 세례의식은 세례요한의 물세례 정도로 이해하고, 성령세례와는 무관한 것으로 세례의식의 가치를 격하시키는 오해가 상존한다. 더욱이 세례의 침수하는 방식과 관련하여 오래전부터 세례의식은 논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례자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그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그리고 하나님, 그리스도와 성령에 대한 실체는 언제나 상징적 관계에서 의식으로 표현하지 않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 때문에 교회는 처음부터 은혜의 수단이란 점에서 의식을 예전의 행위에다 적용했던 것이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의식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요구된다. 여기서 인식해야 할 중요한 신학적 전제는 세례의식이 교회의 다른 예(배)전의 의식과 마찬가지로 성령(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행하는 교회의 일이라는 점이다.
세례가 의식으로 진행될 때, 성령께서는 그 곳에 함께 할 수도 있고, 세례이전에 벌써 세례자에게 경험되어 있을 수도 있으며, 분명한 성령의 함께 하심을 아직 충분히 감지하지 못했지만 세례 후에도 그와 같은 경험은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 때문에 세례의식은 성 삼위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행하는 하나님의 일임을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구원의 주인이신 성령은 세례의 의식이나, 방식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그의 기쁘신 뜻대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의 함께 하심의 실체는 이러한 의식적 행위를 통하지 않고는 표현할 길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세례의식은 수세자가 성령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되심을 믿고, 그의 은혜 아래 살기를 결심한 천국의 백성임을 교회공동체가 확인하고, 그리스도인 됨(공동체의 일원 됨)을 표하며, 인치는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역시 교회가 행하는 유아세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중요한 의식이다. 아직도 자신의 신앙고백을 분명히 할 수 없는 유아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은 강요된 행위로 역사에서 항상 논쟁되었다. 그러나 교회는 아이들의 구원을 생각하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언약에 근거하여 세례를 유아들에게도 적용한 것이다. 중요한 전제는 부모의 신앙에 의존하여 자녀가 구원의 은혜 아래서 성장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교회는 유아세례자들이 청소년 초기(만14세)에 이를 때에 기독교 신앙의 기본진리를 가르치고(요리문답교육) 교회공동체는 그들의 신앙을 확인하며, 기존공동체에 일원으로 영입하는 과정을 거치게 하였다. 교회공동체는 오래전부터 이러한 행사를 의식으로 표현하여 견신례(堅信禮), 또는 ‘입교예식’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방식은 유대교(할례-입교)에서 배워온 것이며, 초대교회에서부터 도입되어 성장세대(유아세례자)의 그리스도인 만들기 방법으로 적용하였다. 물론 유대교의 입교예식은 할례를 받은 아이들이 성장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토라를 배우고, 그 말씀대로 일생을 야외 하나님을 섬기며 살겠다는 신앙서약의 의미를 가지며, 또한 유대교의 일원으로서 환영하며, 종교적 성인으로 인정하는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도 유아세례와 입교예식의 이러한 의의를 더욱 확대 적용하기를 바란다. 유대교의 자녀들이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듯, 우리 그리스도인 가정의 아이들을 산모의 건강회복과 함께 언제든지 주일 공 예배에 나아와 하나님의 아이로 세례 받게 해야 하며, 청소년 나이에 이르는 과정에서 공적으로 기독교신앙의 기초교육을 받게 하고, 입교예식을 통하여 공동체의 일원으로 영입하고 인정하는 종교적 서약이 되도록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신앙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격을 부여하는 성인식과 같은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구미지역의 교회들은 이러한 견신례(입교예식)의 행사를 교회공동체의 새 회원을 영입하는 환영식으로 승화시켜 교회의 축하행사로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공동체의 미래회원을 확보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이제 한국 교회도 세례의식의 의의를 새롭게 인지하고, 교회공동체의 새로운 회원 영입을 위한 환영식과 축하행위의 의미를 효율적으로 잘 적용하면 좋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매 주일 공 예배에 출석한 새 신자 환영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며, 확실히 기존신자의 수평이동으로 인한 교인확보다도 훨씬 건강하고, 바람직한 하나님이 허락하신 교회성장법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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