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도적교회

[스크랩] 신부들의 단장[릭조이너]

어노인팅 2011. 3. 2. 14:44

2007년 8월 예언회보(Prophetic Bulletin)

『가장 무거운 물질』(The Weightiest Matter)

by 릭 조이너


 (이것은 부천 열방추수교회의 담임목사이시고 유명한 번역가인 김주성 목사님이 오늘 제게 이메일로 보내 준 것입니다. 그런데 매우 값지고 중요한 내용이라서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변승우 목사-)



 2007년 6월 6일, 나는 하늘이 열리고 별똥 같은 불덩어리가 나를 향해 똑바로 다가오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 내가 그것을 피하려고 몸을 움직이자, 그것은 즉각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나의 가슴을 때렸을 때, 비록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지만 불이 나의 안과 밖을 온통 휘감았다. 불이 타올랐지만 물리적으로 타오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몸이 아니라 영 안에서 느껴지는 영적인 불이었다. 뿐만 아니라 나는 그 불로 인해 기분이 상쾌해지고 새로워졌으며 활력을 얻게 되었다.

그때 나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신부의 드레스가 내 위에 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다른 세계(내세)에 속한 재료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은 가장 깨끗한 하얀 색이었지만 가장 아름다운 푸른빛과 금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나는 그보다 더 아름다운 드레스가 만들어진 적이 있었는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나의 신부가 이 옷을 입도록 도와주겠느냐?” 그런 다음 환상이 끝이 났다.

그 다음 날, 나는 하늘이 다시 열리는 것을 보았으며 또 다시 불덩어리를 보게 되었다. 내가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깨달음이 나에게 전해졌다. 그 불덩어리는 깊은 우주 속을 여행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신선하고 새로웠기 때문에 나는 그 불덩어리가 천지창조의 시작 시점에 있는 것임을 알았다. 또한 우주 안에도 아름다운 봄날 아침과 같은 큰 기쁨과 아름다움이 있었다. 모든 것이 순수한 아름다움과 기쁨과 신선함을 발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불덩어리를 계속 바라보다가 그 속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또 다른 덩어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푸른색이면서도 금색으로 된 금속이었다. 그것이 바로 불을 만들어내는 중심 핵이었다. 거기서 나오는 불은 마치 속에 있는 그 덩어리에서부터 핵반응이 진행되는 것 같았다. 그 덩어리는 가장 밀도가 높고 가장 무거운 물질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 중요한 의미를 갖는 가장 무거운 물질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곧 ‘신부를 향한 그분 자신의 갈망’(His desire for His bride)이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내가 신부의 드레스를 보기 전에 불덩어리가 나를 때렸던 것이다. 하나님의 주된 불, 즉 하나님의 주된 열정은 자신의 신부를 향한 것이다.

그 불덩어리가 창조의 시작 시점에 있는 모습이 내게 보여진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실 때 마음속에 품고 계셨던 주된 관심사였음을 내가 이해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분의 주된 관심사는 바로 그분의 영원한 동반자가 될 그분의 신부였다. 나는 그 불이 오랜 세월동안 아무런 변함없이 존재해왔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부를 취하시려는 그분의 인내와 결의를 이해하는 것이 나에게 허락되었음을 알았다. 이것이 바로 그분이 우주를 창조하신 주된 이유이며 그것이 바로 우주가 존재하는 주된 이유이다.

하나님은 영계와 자연계 모두를 포함하여 그분 자신의 피조세계를 사랑하신다. 그분은 모든 천사와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질 때도 주목하여 보신다. 그럴지라도, 그분의 첫 사랑은 자신의 신부를 향한 것이다. 그분이 땅과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시긴 하지만, 그분이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 올라가실 때 마음속에 품고 계셨던 것은 다름 아닌 그분의 신부였다.

계속해서 그 불덩어리를 지켜보고 있을 때, 나는 그것이 왜 나의 육신이 아니라 영을 불타오르게 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 불은 영적인 근원을 가진 것이기에 물질을 태우지 않는다. 그것은 심령의 불(heart fire)인 것이다. 즉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타고 있는 불이다. 그것이 바로 생명을 주는 것이며 생명의 근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은 그분을 아는 것이며, 그분을 아는 것은 곧 그분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떨기나무 가운데서 말씀하실 때 타고 있던 불이었다. 자기 백성을 향해 하나님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불이 모세에게 전이된 것이었다. 영원 전부터 타올랐던 그 불에는 엄청난 생명력이 들어 있다. 그것이 모세에게 엄청난 생명력을 부여해 주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120세에 그를 취하셨을 때 그의 육체의 기력이 쇠하지 않았었다. 그것은 또한 참된 성령세례에 동반되는 불이기도 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알고자 하는 열정이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속박을 벗어버리고 자유케 되어 그들의 기업인 약속의 땅으로 건너가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 불이 다시 땅에 임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마음을 움직여 갈대아 우르의 익숙한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목적을 좇아가려는 비전을 준 것도 역시 그 불이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을 인치실 때 아브라함이 보았던 풀무불 속의 불도 바로 그 불이었다. 그들의 마음속에 있던 그 불이 그들에게 너무나 강력한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기 때문에 사라는 90세가 되었어도 여전히 신체적으로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녀를 아내로 취하려고 하는 왕에게 죽임당할까 두려워할 지경이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 마음속에서 타고 있는 불에 접촉될 만큼 그분께 충분히 가까이 갈 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하는 생명이 부어진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사도 요한도 그렇게 오래 산 것이다. 즉 그가 하나님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어 그분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요한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너무나 가까웠기 때문에, 하나님의 불멸의 생명이 그에게 스며들어온 것이다.

모세가 활력을 얻은 것은 단순히 떨기나무 불꽃을 보았거나 그것에 가까이 갔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자신의 마음속에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건대, 그것은 심령의 불이며 영적인 불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물리적으로 그 불을 본다거나 그 불에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마음속에 있는 것과 연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속에 타고 있는 불은 영원 전부터 존재해온 것으로 결코 소멸되지 않는 불멸의 불이다. 우리가 그분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우리 마음에 받아들일 때, 그와 동일한 불멸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알고, 그분 마음속에 있는 깊은 것들을 알며, 그분의 궁극적인 목적에 참여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어떤 예언적 체험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하나님을 찾는 자가 되기만 하면 된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고 진정으로 그분과 가까운 자들은 그 무엇으로도 끌 수 없는 불로 타오르게 될 것이다. 그들은 결코 미지근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는 것과 연합하는 것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으며, 그것보다 더 많은 물질이나 에너지, 능력, 혹은 생명을 담고 있는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그분과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궁극적인 추구이다. 시편 103편 7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해 행하신 가장 위대한 기적들에 해당하는 몇 가지 기적들을 행하도록 쓰임 받았다. 하지만 모세는 단순히 하나님의 행사들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ways)를 알기 원했다. 그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만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알아 그분과 연합하기 원했다. 이런 그의 갈망이 출애굽기 33:12-16에도 나온다: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나더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컨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이것은 교회가 자신의 충만한 목적과 키(stature)에 도달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회복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진리들 중 하나이다. 그 충만한 목적은 그리스도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순결하고 흠 없는 신부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선한 일(good works)을 위해서도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에 프로그램들과 선한 일들도 고귀한 노력이 될 수 있지만 그것들이 주된 것은 아니다. 주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며 그분이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부르심은 그분을 닮는 것과 그분이 하신 일을 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봄으로 그분을 닮아간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일은 그분의 성품에서 나온다. 그분은 우리가 무조건 병자를 치유하는 일에만 쓰임받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이 그들을 치유하신 것과 동일한 이유로 그들을 치유하는 일에 쓰임받기 원하신다. 즉 그분은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치유하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합당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다.

사랑에 빠진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라도 단념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 있다. 헌신과 의무, 명예, 선한 일에 대한 애착, 그리고 진리에 대한 헌신은 모두 좋은 것들이고 우리가 생명의 길을 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궁극적인 시험이 오면 오직 사랑하는 자들만이 굳게 설 것이며 오직 사랑하는 자들만이 끝까지 버틸 것이다.

하나님의 가장 큰 열정, 즉 그분의 마음속에 타고 있는 불은 그분의 신부인 교회를 향한 것이다. 그 불이 다시 한 번 땅을 덮칠 것이며 그분의 사자(使者, messengers)들은 그 열정(불)으로 타오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신부가 자신을 단장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그 열정으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지금 새로운 유형의 사역이 위임명령을 받고 있다. 그들은 참된 신랑의 친구들이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영적 내시들이 될 것이다. 내시는 신부에 대한 욕망을 품거나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신부를 이용할 수 없다. 오히려 그의 전적인 만족은 왕이 신부로 인해 만족하시는 모습을 보는 데서 온다. 바로 이것이 그들의 열정이 될 것이다. 그 새로운 유형의 사역은 신부를 강간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전적인 목적은 신부가 왕을 위해 자신을 단장하도록 돕는 것이 될 것이다.

그 새로운 유형의 사역은 자신의 사역을 세우기 위해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세우기 위해 자신의 사역을 사용할 것이다. 그것이 교회 안에 혁명을 가져올 것이다. 이기적인 야망은 교회의 사역에서 쫓겨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사랑하며 사랑으로 섬기기 시작할 것이다. 그 결과 세상을 놀라게 하고 세상에 참된 빛이 될 성도들의 단체가 생겨날 것이다.

시대를 이해하는 자들은 마귀가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주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 시대의 마지막이 다가왔다는 가장 큰 징조는 신부가 자신의 부르심대로 영광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 될 것이다. 주님은 신부가 준비될 때까지는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와 신부의 연합은 모든 사건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건이 될 것이며 그것을 위한 신부의 예비는 이 시대의 마지막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신부의 드레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신부의 드레스는 아름다움에 있어서 내가 지금까지 보아 온 어떤 옷보다 더 뛰어난 것이었다. 그것은 다른 세계(내세)에 속한 재료로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다른 세계(내세)에 속한 재능을 가진 예술가들에 의해 제조된 것이었다. 그것 또한 중요한 메시지이다. 신부를 준비시키는 것을 돕도록 그 재능들이 지금 교회에 부어지고 있다.

구약에서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영이 어떤 사람에게 임했다는 표현을 발견한다. 예를 들면, 역대하 15:1이나 역대하 24:20 등이다. 그렇지만 성경에서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케” 되었다고 언급된 첫 번째 사람은 다름 아닌 브살렐(Bezalel)이었다. 그 내용은 출애굽기 31:1-5에 언급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공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겨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고



이것을 한 번 생각해 보라: 제사장이나 왕이나 선지자가 아니라 예술가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첫 번째 사람이었다. 이것으로 미루어, 우리는 주님께서 예술에 굉장한 중요성을 부여하셨다는 분명한 느낌을 가져야 한다. 그분의 처소인 성막은 “손으로 만들지 않은 처소”인 교회의 청사진이나 모델로서, 모든 예술가들 중 가장 뛰어난 예술가에 의해 지어져야만 했다. 예술에는 일반적으로 교회가 지금까지 수 세기 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능력이 있다. 그것은 회복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의 집에 속한 예술가들에게 예술을 통해 예언할 수 있는 전례 없는 능력을 부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연이나 일몰, 혹은 눈송이를 살펴볼 때, 하나님 같은 예술가가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이 그분의 본성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보는 그 모든 아름다움은 인간을 향한 그분의 사랑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것은 선물이다. 그 사랑이 그분의 예술의 동기가 되었다. 만약 당신이 일몰이나 혹은 굉장히 아름다운 무언가를 보면서 그것이 특별히 당신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면, 그것은 사실이다. 바로 당신을 위해 만들어졌다. 하나님의 예술은 자기 백성을 위한 것이다. 이제 그 역이 성립되기 일보 직전에 와 있다. 즉 인간이 만드는 최상의 예술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 비롯되게 될 것이다.

모세의 성막을 짓기 위해 브살렐에게 부어졌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기름부음이 예술가들 위에 임하고 있다. 브살렐에게 임한 기름부음은 모형에 불과한 것이었고 지금 임하고 있는 기름부음이 바로 그것의 성취이다. 새 언약의 영광은 이번보다 훨씬 더 놀라운 큰 것이다. 따라서 신부 단장을 돕도록 부어지는 것은 모형 단장을 돕도록 임한 것보다 더 클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역사속의 위대한 거장들을 돌아보지 않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시대의 가장 큰 거장들이 지금 이 시대에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으로부터 나와, 이제 곧 예술가들 위에 임하려고 하는 기름부음이 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예술의 동기가 될 것이다. 이 예술이 전에는 인간에게 한 번도 주어지지 않은 강력한 예언적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사랑이 더욱 더 순수해질수록 예술도 더욱 더 순수해지고 강력해질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신부에게 주시는 재능으로서, 신부의 마음을 그분께로 이끌기 위해 그 마음 깊은 곳을 만지게 될 것이며 동시에 그분을 향한 신부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사용될 것이다.

가장 진실한 예술은 항상 최상의 예배에서 나오게 될 것이며 또한 그 자체가 숭고한 예배가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의 마지막에 세상이 목도하게 될 가장 창조적인 재능들은 교회로부터 나오게 될 것이다. 이것이 신부가 입게 될 옷의 일부가 될 것이며 그녀가 입는 옷은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반사해낼 것이다. 신부는 그분의 영광을 볼 것이다. 그 결과 그분의 영광을 반사해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에서 영광을 결실할 것이다. 영광이 신부의 옷이 될 것이며 신부의 뒤를 따르는 옷자락과 같이 될 것이다.

‘영광’(glory)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문자적으로 “무게”(weight)를 의미하는 ‘카보드’(kabowd)이다. 신부의 궁극적인 영광은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무거운 것으로서, 곧 주님께서 신부를 향해 품고 계시는 사랑이다. 신부의 참된 영광은 그녀가 맨 처음부터 그분의 마음속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은 결코 바뀌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신부는 하나님의 열정이다. 이것 때문에 다가올 혼인잔치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계시가 있게 될 것이다. 피조물의 가장 큰 기쁨은 신부를 바라보시며 느끼시는 창조주의 기쁨을 보는 것이 될 것이다. 바로 이런 기쁨이 새로운 유형의 사역에 동기를 부여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역 가운데 몇몇은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장인들(artisans)이 될 것이며 그들은 진실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게 될 것이다.

내가 언급하고 있는 대상은 단순히 예술계통의 화가들이나 조각가들, 혹은 음악가들만이 아니라 참된 사도들과 선지자들, 복음전도자들, 목사들과 교사들까지 포함된다. 그들은 우리가 부르심에 합당한 교회가 되도록 하기 위해 성도들을 무장시키는 일에 보내심 받은 자들이다. 그들은 사역에 있어서 너무나 놀라운 창조성을 발휘하게 될 것이며 그 결과 사역이 가장 강력한 매력을 지닌 것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메시지에 담긴 정교한 말들이 너무나 창조적인 능력으로 전달된 나머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언변에 끌리게 될 것이다. 그 모든 것의 핵심은 오락(entertainment)이 아니라 말의 기술에 임하는 기름부음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기교 넘치는 말들로 치장되기에 합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복되신 창조주의 기본적 본성인 창조성(Creativity)이 그분의 교회를 통해 빛나게 될 것이며, 그로 인해 그분의 본성이 아름답게 증거 될 것이다. 교회의 마음이 창조주와 너무나 놀랍게 연합된 나머지 교회가 행하는 모든 일에서 창조성이 흘러나올 것이다. 가장 위대한 음악과 가장 위대한 예술이 교회로부터 나와 주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될 것이다. 그 재능은 또한 왕 되신 주님과의 연합이라는 최상의 목적에 도달하도록 교회를 이끌고 무장시키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열방이 잔치로 나아오기 시작할 것이다.



요 약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그 예언적 경험을 한 지 몇 주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어서 그것이 아직도 내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그 경험으로 인해 몇 가지 기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나의 이해까지도 재조정되었다. 신앙생활 초창기부터 나는 교회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으며 건강한 교회생활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성숙에 얼마나 필수적인 것인지를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건강한 교회생활이 땅에서 우리의 목적을 성취할 준비를 갖추게 하는 데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깨닫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항상 내가 하는 모든 일에서 지역교회를 세우려고 애를 써왔으며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향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럴지라도, 예전에 나는 교회를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 즉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길을 준비시키는 수단으로 보아왔었다. 물론 그것이 교회의 부르심인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의 주된 목적은 아니다. 나는 하나님 나라를 더 높은 목적으로 보았지만 지금은 그 순서가 바뀌었다. 교회가 더 높은 목적이다.

이것은 분간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나의 헌신과 방향뿐 아니라 나의 가르침 가운데 어떤 것도 바꿔놓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지금 전에는 갖지 못했던 교회에 대한 불을 내속에 가지고 있다. 나는 교회가 부르심에 합당한 온전한 모습으로 변화되고 우리 왕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신부로 단장되는 것을 보기 원하는 불타는 갈망을 느낀다.

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를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을 뛰어넘어 결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 나라는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전파하신 메시지였다. 그리고 이 시대의 마지막이 오기 전에 전파되어야 하는 것 역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길을 가장 잘 예비할 수 있는 방법은 교회가 부르심에 합당한 모습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주님은 그분의 신부가 그분께 합당한 모습으로 준비되어 하나님 나라에서 그분과 함께 다스리고 통치할 준비가 될 때까지는 그의 나라를 세우러 돌아오시지 않을 것이다.

주님은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신다. 그분은 진정한 낙원으로서 땅의 원래 목적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하지만 그분의 심장을 더 빨리 두근거리게 만드는 것은 바로 신부이며, 창조의 주된 이유도 신부와 함께 피조물을 즐거워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가 이것을 깨닫게 되면 마음이 교만해지고 이기적인 모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세상에는 교회를 겸손하게 하는 일에 헌신된 세력들이 충분히 존재한다. 교회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기 시작하려면 자신의 높은 목적을 깨달아야 한다. 교회로 연합된 그리스도인들은 땅에 존재하는 진정한 왕족이다. 따라서 교회는 자신의 지극히 고귀한 혈통의 위엄과 존엄성을 몸에 지니기 시작해야 한다. 물론 그것은 섬김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한 것이며 자신이 부여받은 모든 권위를 가지고 그 일을 행하기 위함이다.

이 때문에,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그의 교회 안에서 우리의 위치를 발견하여 교회를 그분께 합당한 모습으로 준비시키는 데 기여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참된 신랑의 친구들은 신랑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 실망이나 낙담에도 불구하고 그 목적을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은 훌륭한 신부를 취하실 것이며,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분이 훌륭한 신부를 취하시기까지는 결코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유형의 사역이다.

이 계시를 받고 나서 며칠 후에, 나는 그것을 밥 존스와 나눴다. 그는 즉시 그것을 내가 알지 못하는 천문학적인 발견과 관련지었다. 그것은 최근에 “모든 초신성(超新星, supernova, 격렬하게 폭발한 뒤 밝기가 평상시에 비해 수십만에서 수억 배까지 순식간에 증가하는 별-역자 주)들의 아버지”가 발견된 것이다. 하늘은 징조를 위해 주어진 것이다(창세기 1:14; 시편 19편을 보라). 이것은 커다란 징조이며 시기적절한 것이다. 초신성의 중심부에는 너무나 밀도가 높고 무거운 물질이 있어서 눈물 한 방울만큼의 양이라도 지구상의 모든 인간을 합친 것보다 더 무거울 것이라고 믿어진다. 그 물질은 너무 무거워서 아주 강력한 중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결과 “블랙홀”(black holes, 블랙홀의 표면은 통칭 ‘사건의 지평선’이라 불리는데, 외부에서는 물질이나 빛이 자유롭게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내부에서는 빛조차도 밖으로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음-역자 주)을 만들어내는데, 그 이유는 그 거대한 중력이 심지어 빛까지도 벗어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초신성은 전에 발견된 그 어떤 별보다 더 큰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이 가장 큰 것이라면, 피조물 가운데 가장 무거운 물질이 그 중심부에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불덩어리 한 가운데서 본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우주 가운데 가장 무거운 물질이다.

그 발견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그 시기는 예언적이다. 나는 참 하늘을 들여다보는 자들은 그와 같이 가장 무거운 이 물질, 곧 ‘신부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발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신성들이 우주에서 가장 큰 폭발을 일으킨 다음, 강도 높은 중력에 의해 “블랙홀”이 되기 전에 우주에서 가장 거대한 빛을 발산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나는 전에 풀려났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능력의 폭발이 있을 것이며 또한 전에 보여졌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빛이 교회를 통해 비춰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로써, 교회는 아주 빠른 속도로 부르심에 합당한 온전한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다.

지구는 광활한 우주 가운데서 거의 먼지 한 점에 해당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지구가 왜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는가? 다윗 왕이 시편 8편에서 묵상했던 것처럼, 사람이 무엇이관대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각해주시겠는가? 그분은 피조세계를 함께 누리고 영원을 함께 보낼 신부와 동반자를 찾고 계신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부르심이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그분의 신부인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보다 더 높은 부르심은 없다. 교회는 마지막에 그분과 함께 보좌에 앉아 그분의 권위에 참여하여 심지어 천사까지 심판하게 될 것이다. 그분께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리는 그 부르심 가운데 행하기 시작할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우리가 지구를 돕기 위해 영원토록 계속적으로 할 수 있는 주된 일은, 교회가 부르심에 합당한 모습으로 변화되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그분을 더욱 알아가며 그분 안에 거하면서 교회의 관심을 그분 자신께로 돌리는 것이다. 물론 교회는 자신의 부르심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절박하게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변화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아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그분이 누구신지 아는 것을 통해서이다. 우리는 주님의 성전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의 주님을 예배하기 원한다. 그럴지라도, 신부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으로 인해 신부가 그분께 합당한 모습으로 준비되도록 돕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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